progressive Rock이란?

사전적인 의미는 '복잡한 프레이징과 즉흥이 가미된 전위적인 록 음악'을 뜻합니다
롤링스톤지의 Rock&Roll 백과사전에서는'프로그래시브 록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프로그래시브라는 것은 유럽의 클래식을 모티브로 오케스트레이션과 전형적인 확장된 형식, 그리고 복잡하고 난해한 여러 조곡형식을 취하고 있는 일렉트릭 악기류를 사용하고 있는 록의 한 부류를 뜻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프로그래시브 록은 종종 아트록(Art Rock)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progressive Rock특징

프로그래시브 록의 음악 특징은 크게 몇가지로 정리할수 있습니다

첫째, 상업적인 측면을 배제한 예술성을 강조한 음악입니다.
영리보다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음악적 추구를 우선합니다.
탈상업주의-비영리주의를 고수, 양보다는 질적(예술적인측면에서 음반자체에 쏟아 붙는 열정)면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프로그래시브 록의 앨범은 마치 클래식의 교향곡을 모티브로 조곡형식을 갖추거나 하나의 주제 테마를 지닌 컨셉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둘째, 프로그래시브 록은 실험정신을 들 수 있습니다. 전기, 전자 음악의 사용과 녹음 방식 등 음악을 만드는 과정이 일반 장르의 음악과는 다릅니다

종합해보면 '프로그래시브 록은 젊음의 록음악에 기존의 고전적인 요소, 민속, 민족적인 요소, 여기에 재즈의 전위적인 요소들을 융합시켜 악기의 다양화와 고급화를 통한 기술혁신으로 이루어진 것이 여타 장르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progressive Rock의 종류

프로그래시브 록은 크게 세가지의 서브로 나뉩니다

1. 클래식에 모티브를 둔 일반적인 프로그래시브인 progressive Rock입니다
클래식의 형식과 록의 화음과 선율에 리듬이 더해져 깊이 있고, 풍요로운 사운드를 들려주었습니다.
대표적인 그룹으로는 비틀즈,프로콜 하럼, 킹 크림슨, 예스, 제스로 툴, 에머슨 레이크&팔머,무디블루스 등을 꼽을수 있습니다.

2. 프리재즈의 전위적인 색체를 받아들인 아방가르드 프로그래시브입니다
재즈의 복잡한 프레이징과 즉흥이 가미돼, 어려운 사운드를 들려주었습니다
대표적인 그룹으로는 장 미셀자르, 아트 베어스, 닥터 너브, 유니버스 버브 등이 있습니다.

3. 네오 프로그래시브입니다.
1980년대 초 영국에서 등장한 서브 장르로 깊이 있으면서 새로운 사운드를 받아들여 프로그래시브 록의 예술적인 측면을 보다 더 강조했습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그룹으로는 제네시스, 캐멀, 핑크플로이드가 대표적인 밴드입니다.


progressive Rock의 유래


프로그래시브 록의 태동은 영국에서 시작됐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류의 음악형태가 언제, 누구에 의하여 등장하게 되었는지 또한 과연 그것들의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정확히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동안 이러한 주제를 시원하게 다루었던 평론가나 문헌이 전혀 없었기떄문입니다.
종주국인 영국마저도 이러한 주제를 놓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불모지인 미국의 경우는 언급할 필요 없이 전무후무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기록에 의하면 1967년 7월, 비틀즈와 프로콜 하럼에 의해 프로그래시브 록이 시작됐다는 것을 유추할수 있습니다.
비틀즈의 명반<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에 수록된'She's Leaving Home'과 프로콜 하럼의 데뷔앨범 <Procol Harum>에서 수록된 'A Winter shade Of Pale)'을 손꼽습니다.
이들은 이곡에서 진보적인 형태의 사운드와 음악으로 록음악계의 주목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혁명적인 사운드를 가리켜 '프로그래시브 록'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프로그래시브록을 완성시키는데 일조한 팀은 다름아닌 킹 크림슨(king crimson)이었습니다. 이들은 1969년 말에 발표한 앨범<In The Court The Crimson King>으로 영국 차트 5위를 차지하는 선풍을 일으켰습니다.
한편의 클래식을 연상시키는 킹 크림슨의 곡 '묘비명(Epitaph)'은 1970년대 국내의 음악다방
전성기 시절을 수 놓으며 널리 사랑 받았습니다. 이들의 음악은 한마디로 록의 함성에 클래시컬한 기타 연주를 혼합한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음악은 웅장하며 신비로웠습니다.
바로 뒤를 이어 킹 크림슨의 맴버 그렉 레이크, 클래식으로 단련된 건반주자 키스 에머슨 그리고 드러머 칼 파머가 모인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Emerson Lake and Palmer)도 클래식 모티브로 가득한 첫 앨범을 발표하며 시선을 장악했습니다.이듬해인 1971년 이들은 놀랍게도 아예 무소로그스키의 명작 '전람회의 그림(Pictures At An Exhibition)'를 라이브로 연주한 앨범을 선보였으며 나중에도 바흐의 '토카타'와 아론 코플랜드의 '로데오'의 멜로디를 끌어낸 대곡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프로그래시브 록은 젠틀 자이언트(Gentle Giant), 제네시스(Genesis) 그리고 포커스(Focus)로 확산되며 1970년대 초 중반의 음악 경향을 대변했습니다.
그리고 등장한 팀이 바로 위대한 프로그래시브 록으로 평가받았던 영국그룹 '핑크플로이드(Pink Floyd)였습니다. 이들의 등장은 프로그래시브 록을 록의 주류로 끌어올렸으며, 70년대 록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그래서 프로그래시브 록의 시작과 끝은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통해 확인 할수 있다고 평론가들은 말합니다.


progressive Rock의 의의


프로그래시브 록은 70년대 록 음악의 다양화를 주도했던 대표적인 장르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예술적인 측면이 강조돼, 대중음악을 클래식과 비교될 정도로 격상시켰습니다
프로그래시브 록은 록의 범위에서 벗어나 클래식, 재즈, 현대 음악 등의 장점을 받아들여, 대중음악의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록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을 때, 새로운 시도를 통해 70년대 록의 부흥을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진보적인 사운드와 깊이 있는 음악 세계로 6,70년대 록의 르네상스를 열었던 프로그래시브 록... 90년대 힘합, R&B의 인기 떄문에, 비주류 장르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대중음악도 클래식의 예술성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Posted by 겨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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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hnc197.com BlogIcon 남현 2007.04.22 0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핑크 플로이드가 니오 프로그레시브 록이라뇨! 말도 안됩니다. 핑크 플로이드야 말로 프로그레시브 록의 '원조'격의 밴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7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에는 퀸이나 일렉트릭 라잇 오커스트라와 같은 그룹도 포함됩니다.

  2. Favicon of https://aquajewelmusic.tistory.com BlogIcon 겨울초 2007.04.22 12: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들러주시고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위에글은 방송에서 나온 멘트를 문서상으로 옮긴것인데 저도 깊이 있게 아는사람이 못되서요
    남현님 때문에 좋은걸 또 알게되서 고맙습니다

  3. Favicon of http://hotwomens-2008.com/hot/dbz-gifs BlogIcon dbz gifs 2008.03.13 0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대하고 유용한 위치!

월간팝송 1984년 10월호,  프로그레시브 황금기 Trilogy (제3부 1973 - 1974)

Felona and Sorona. Imagined planets millions of light years apart. Felona radiant with light, peace, and love. Sorona an unhappy speck in eternal darkness, a place of withered life and beings like vegetables ; burdened and unsmiling ghosts, clinging to faith...hope.
  The Supreme Being, rejected source of all happiness, rolls his gaze to sad Sorona, and from those eyes pour a cascade of light. Skeletal life and smudged flora warms and blooms in the awaited miracle of light. Darkness, fear, silence, are gone.
 For an instant, the sister planets Felona and Sorona are alike in their happiness, It lasts only the space of smile. With the magic enhantment, their equilibrium shatters and vanishes. Felona and Sorona capsize. In the imponderable game, they annihilate each other.

Le Orme

Venice, 1973


Photos of Ghosts

Black roses laced with silver
By a broken moon.
Ten million stars
And the whispered harmonies of leaves.
We were these.

Beside a dried up fountain
Lie five dusty tomes
With faded pasted pictures
Of love's reverie
Across each cover is written,
"Herein are Photos of Ghosts"
Of ghost, of ghosts,
Of the days we ran and the days we sang

by Pete Sinfield

"나는 Greg Lake가 마련한 만찬에서 이태리의 프로모터인 Francesco Snevio라는 사나이를 만났다. 그는 유명한 프로모터로서 EL&P, King Crimson, Black Sabbath, Ten Years After등 수퍼 그룹들의 대규모 이태리 공연을 담당했던 사람이다. 그와 대화하던 중에 우연히 이태리의 록 그룹인 P.F.M.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곧 나는 흥분하고 말았다. 이태리 음악 하면 Canzone가 연상됐던 나에게는 커다란 호기심이 일고 있었다. 다음날 나는 테입으로 그들이 연주하는 것을 들었으며 그것을 듣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전체적으로 모든 곡들이 아름다웠으며 독창적인 사운드였다. EL&P와 King Crimson을 합한 것과 같은....
 그 테입에는 그들의 두번째 LP의 곡들이 담겨져 있었다. 나는 그들을 만나면서 지금까지 만났었던 사람들 중에 최고의 젊은이들임을 알게 되었다."
 위 글은 킹 크림슨의 초창기 멤버이자 작시자였던 Pete Sinfield의 인터뷰 내용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 후, Pete Sinfield 는 P.F.M.의 두번째 앨범인 "Per Un Amico"의 가사를 영어화해서 세계 시장에 내 놓았으며 P.F.M은 세계적인 그룹으로 발돋움했다
 여러 유럽 국가들의 훌륭한 무명 그룹들이 서서히 세계시장에 진출하던 1974년, 당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 인터뷰이기에 여기에 적어본 것이다.

성시완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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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1973년 미국의 록계는 서든 록(Southern Rock)과 개성이 매우 강한 마이너 레이블들이
이끌어 갔다. Sound of South, Carpricorn, Asylum, Shelter등의 마이너 레이블들이 회사
 위주의 음악 제작에서 탈피, 아티스트 본위의 앨범 제작을 할 수 있었으며 뮤지션의
수준도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또한 우드스탁 훼스티발이 행해졌던 이래로 대규모의 콘서트가 7월에 뉴욕주에서
"Summer Jam"이라는 타이틀로 개최 되었다. 이콘서트에는 3개의 그룹 -
 Allman Brothers Band, The Band, Gratefal Dead가 참가 했는데 60만
인파가 모였던 대행사 였다. 프로그레시브 계열에서는 1970년에 John과
Chuck Panzo 형제에 의해 시카고에서 결성 되었던 Styx가 "Styx 2"(두번째 LP)와
"The Serpent Is Rising"(세번째 앨범)을 발표해서 사막의 미국 프로그레시브 록계에
오아시스가 되어 주었다. (Styx 가 유일하게 한 해에 두장의 LP를발표한 해는 그들의
음악적 향상기인 1973년 이었다.)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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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wbs의 "Bursting At the Seams", <Tear & Pavan> 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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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Canterbury Family에서 분파된 심포닉 (symphonic) 그룹 Carav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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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eissance의 두번째 앨범 "Ashes Are B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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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wkwind의 더블 라이브 앨범 "Space Ritval"

영국의 언더그라운드 계열과 프로그레시브계열은 1960년대 말 ~ 1970년대 초에 탄생한
수많은 수퍼 그룹들에 의해 주도되어 가고 있었다.
새해 첫날인 1월 1일 Strawbs는 "Bursting At The Seams"를발표해서 포크 그룹에서 완전 탈피했고, 그 다음 앨범인"Hero & Heroine"으로 수퍼 록그룹으로 전혀 손색이 없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5옥타브를 낼 수 있는 여성 보컬리스트 Annie Haslam이 소속된 Renaissance는
비록 데뷔앨범은 실패 했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두번쨰 앨범 "Ashe Are Burning"으로
상업적인면에서 크게 성공했다
.Peter Bardens가 이끄는 Camel은 영국 프로그레시브계에 신선함을 불러일으켜 주었으며 대망의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1974년에 다시 활동을 재개함)
 수퍼 그룹의 활동을 보면 EL&P가 싱글 <Brain Salad Surgery>, 그리고 같은 타이틀
앨범을 연이어 발표했고 Yes는 1972년도 미국공연을 담은 더블 LP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를 발표했다.
스페이스 뮤직(Space Music)의 대표적인 그룹인 hawkwind도 1972년 12월에 Liverpool Stadium과 Brixton Sundown에 이어 런던에서 가졌던 실황을 담은 더블 라이브앨범 "Space Ritual"을 발표했다.
Pink Floyd는대중적으로 커다란 성과를 올린"The Dark side of the Moon"(9번째 앨범)을
발표해서 더많은 팬들을 확보 했고 Jethro Tull은 인상적인 재킷의 "A Passion Play"
(7번째 LP)를 과감하게 내놓았지만 반응은 그리 좋지 못했다.
Manfred Mann의 Earth Band에게 있어서 1973년은 가장 바쁜 한해였다.
그들은 "Messin"(3번째 LP) 과 "Get Your Rocks Off"(4번째 LP) 그리고 최고 걸작으로 알려진 "Solar Fire" 등 세장의 앨범을 만들어 냈다. Arthur Brown이 이끄는 Kingdom Come도 "Kingdom Come"(두번째 LP)과 "The Journey"(스페이스 사운드의 명작; 세번째 LP이며 최후의 앨범)을 발표했다.
 특히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계의 큰 수확은 Mike Oldfield의 등장 이었다. 5월에
발매된 "Turbular Bells"는 경이적인 작품으로 놀라운 판매고를 올렸으며 한명의
아티스트가 여러 악기를 다루어도 전혀 그룹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케이스 였다.
 또한 Virgin레이블을 통해 Henry Cow라는 실험적인 재즈 록 그룹이 "Legend"라는
앨범으로 데뷔해서 신생 레이블인 Virgin을 영국 최고의  Avant Garde, Progressive Label로서 인정 받게 했다.이 외에도 수많은 그룹들이 서로 다투어 앨범을 내놓았지만
킹 크림슨 만큼은 Pete Sinfield, Mel Collins,Boz Burrel의 탈퇴로 해산 상태였으며,
Yes의 Bill Bruford와 Family의 John Wetton, 매우 돋보이는 전위 타악기 주자
Jamie Muir를 멤버로 하여 "Larks' Tongues In Aspic" (6번째 앨범)을 가까스로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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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fred Mann's Earth Band의 명반 Solar Fire(5번째 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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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fred Mann's Earth Band의 세번째 앨범 "Messin", (Chapter III 당시의 라이브 곡을 앨범 타이틀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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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사자들 Kingdom Come


 이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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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D.G.G의 리더 Peter Hammil이 영어로 번안했던 이태리의 베테랑 그룹 Le Orme의 "Feloma & Sor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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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phataurus의 유일한 앨범 "Adrian no Marangoni"의 상직적 커버 아트 ("N.T. Atomic System"처럼 6페이지의 재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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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 Sinfield에 의해 세계시장에 알려지게된 P.F.M의 세번째 앨범 "Photos of Ghosts"

1973년은 이태리 프로그레시브 록계의 세계진출이란 커다란 의미를 지닌 한해였다.
 Pete Sinfield에 의해 비로서 P.F.M에 세계 음악시장에 알려졌고, 또한 V.D.G.G.의
리더 Peter Hammill이 Le Orme의 5번째 앨범인 "Felona A Sorona"를 영어화해서
Charisma 레이블을 통해 "Night On The Bare Mountain"이란 타이틀로 발표 됐고
(미수록곡 한 곡 더 첨가), EL&P 스타일의 Triad는 영어가사로 된 유일한 앨범을 남겼다.
 Alna Sorrenti의 두번째 작품은 Francis Monkman(Curved Air의 멤버 였으며 후에 Sky의
창단 멤버) 과 Dave Jackson(V.D.G.G.의 색소폰 담당)등과 함께 런던에서 녹음이 되었다.
 5인조 록그룹 Acqua Fragile는 P.F.M과 Clandio Fabi의 제작으로 데뷔 앨범을 발표했고,
 제노바를 본거지로 한 (Studio G로부터 설립됐던)Magma레이블로 부터는 그룹명을
EL&P의 "Tarkus"에서 따온 Alphataurus가 유일한 앨범을 내놓았다. 역시 5인조 그룹
Area가 대중을 향해 "Arbeit Macht trei"라는 데뷔앨범을 펼쳤고 로마 출신의
Banco Del Mutuo Soccorso는 정연한 인상을 주는 3번째 앨범"Io Sono Nato Libero"를
발표했다.
 하드 록풍의 Canpo Di Marte는 이태리에 있는 Mars(신화상의 군신명)광장을 그룹명으로
영국인을 한명 포함한 동명(同名) 타이틀의유일한 앨범을 발표했다. 그리이스 고대 전설을
기반으로 Melos의 이야기를 담았던 Cerello의 유일한 앨범 "Melos"가 발표되었고 P.F.M.의
Mauro Pagani에게 발탁된 Claudio Rocci는 Matia Bazar이 재적했던 Ariston 레코드사를
통해 데뷔 했다.
 RCA의 세션맨으로 이루어진 그룹으로 피아노를 기반으로 한 Festa Mobile이 재즈와
프로그레시브 록의 경이적인 앨범을 남겼다.
 Formula 3가 "La Grande Casa"라는 최후의 앨범(4번째 LP)을 남겼고, Jumbo도 최후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Latte E Miele는 두번째 앨범인 "Papillon"(영화 "Papillon"과
같은 내용을 담았던 앨범이었다)을 내놓았다. 그외에 EL&P의 영향을 받은
L'uovo Di Colombo Banco 스타일 의 Metamor - Fosi, 니이체의 철학서사시 Zarathustra를
테마로 했던 Museo Rosenbach, Rocky's Fiji (4인조 아방 가르드 록 그룹),
Semiramics(고대 바빌로니아 여왕을 그룹명으로 한 전설적인 그룹), 오케스트라와 코러스를
동원한 시적인 앨범을 만든 Tito Schipa Jr.(유명한 오페라 가수의 아들) 등이 각각 유일한
앨범을 Italian Progressive의 황금기인 1973년에 발표했다.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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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n Düül II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네번째 LP "Wolf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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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재즈를 기반으로 하는 프로그레시브 그룹 Message. 리더 Tommy McGuigun의 보컬은 매력적이며 환상적이다.

 1973년, 독일에서는 하드록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Alkatraz, Friedhof, Hairy
Coter, Nosferatu, Sphinx, Tush, Weed등의 비교적 기술적 수준이 낮은 그룹들이 대부분
이었으나 그들 나름대로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사이키델릭 사운드가 서서히
사라지고 Electronics Sound가 최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Tangerine Dream은
"Atem"(4번쨰 LP)을 발표했고 영국 BBC 방송의 유능한 DJ John Peel에 의해 세계
시장 진출이 가능하게  되었다.
 명반 "Wolf City"를 성공시킨 Amon Düül II는 세차례의 영국공연을 비롯해서
앨범제작보다는 순회공연에 열의를 더했던 한해였으며 "Vive la Trance"(6번째 LP)를
발매 했다.
 Hosianna Mantra는 최고로 감동적인 레코드라는 찬사를 Musik Express지로부터 받았다.
그리고 Musik Market지는 Popol Vuh를 최고로 성공하고, 최고로 주목받는 독일그룹의
하나라고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Popol Vuh는 4번째 앨범인 "Seling Preisung"을
발표했는데 이작품은 지금까지 전승되어온 종교와 교회의 전통을 초월한 Florian Fricke의
 매혹적인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 윤씨는 이 앨범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Can은 60일 동안에 걸쳐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순회공연을 가졌고
"Future Days"(5번째 LP)를 발표했다. 보컬을 담당했던 일본인 Kenji 'Damo' Suzuki는
결혼을 이유로 그룹을 탈퇴했다.) Guru Guru는 그룹명의 앨범 "Guru Guru"(4번째 LP)를
내놓았고 "German Rock Concert" (5월 19일) 와 "german Rock Festival" (9월16일),
그리고 "RAIS 방송 독일 록 제전" (11월 29일)에 Main Group으로 참가했다. 그 외에도
 Klaus Schulze가 두번째 솔로앨범 "Cyborg"를 만들어내서 "외면적으로 단조로운
Monotone이나, 내면적으로는 깊이가 있는 음악 - 일종의 Electronic Yoga"라는 평을 받았다.
 Manuel Göttsching이 이끄는 Ash Ra Temple은 1972sus "The Bern Festival"의 실황을
담은 "Seven Up" 과 개방적인 자유를 나타내는 "Starring Rogi"를 만들어 냈다. 후에
멤버교체가 극심했던 두 그룹 A.R 과 Between 중에 Achim Reichel이 이끌던 A.R은
"A.R.3"(5번째 LP)와 "A.R.IV"(6번째 LP)를, Between은 "And The Waters Opend"(두번째
LP)를 발표했다. 크로스오버 재즈에 가까운 7인조 그룹 Creative Rock이 프로그레시브
레이블인 Brain을 통해 "Gorilla"라는 앨범을, 하드록 스타일의 4인조 그룹 Curly Curve가
데뷔를 했다. 또한 1973년도는 Embryo의 해라고 할만큼 Embryo는 3장의 앨범 -
"Rocksession"(4번째 LP), "SteigAus"(5번째 LP), "We Keep On"(6번째 LP)을 발표 했다.
 6인조 그룹 Emergency는 멤버를 재정비, CBC에서 Brain으로 이적해서 두번째 앨범
"Get Out To The Country"를 만들어 냈다. 베테랑 그룹 Eberhard Schoener는 독일에서의
 마지막 앨범 "Music For Meditation" (4번쨰 LP)을, Faust는 테입에 수록됐던 미발표곡을
모아 "Tapes"(3번째 LP)를 발표했다.
 Gila는 리더 Conny Veit를 제외하고 모두 멤버교체되어 두번째 앨범을 만들었고,
재즈 록 그룹 Kollektiv Message (4인조 Mary Stewart의 "The Crystal Cave"라는 책에서
착안한 그룹)가 데뷔를 했다. 재즈와 클래식을 혼합한 Thirsty Moon은 Brain을 통해
스케일이 큰 2장의 앨범을 만들어 냈다.
 Grobshnitt (북부 독일에서 1970년에 결성된 그룹)는 72년도에 이어 73년에도
German Rock 역사상 길이 남을 우주적이며 대작인 앨범 "Ballerman" (두번째 LP)을,
Wallenstein은 Jerry Berkers 대신에 Dieter Meier로 교체하고 새로운 멤버인
바이얼리스트 Jöachim Reiser를 받아들여 "Cosmic Centry"(3번째 LP)를 만들어 냈다.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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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eo Rosenbach의 앨범 재킷 뒷면의 그림이 매우 상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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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h Ra Tempel의 리더 Mannel Götts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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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ng의 6번째 앨범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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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도 라이브 앨범의 명반 "Greasy Truckers" United Artists 레코드사의 앨범으로 Gong, Henry Cow, Camel등의 멋진 라이브 곡이 수록되어 있다.

Daevid Allen이 이끄는 Gong은 "Radio Gnome Invisible" ("Angel's Egg", "You"에
계속 파트별로 수록된 곡)을 첫곡으로 담은 "Flying Teapot"(네번째 LP)을 발표 했다.
이 앨범은 Tim Blake의 키보드, Steve Hillage의 우주적 기타 사운드에다 Magma의
게스트였던 Francis Mose가 베이스 주자로 참가해서 독자적인 작품을 형성하고 있다.
키보드주자 Alain Goraguer는 여성 Scat을 담은 사운드트랙 앨범 "La Planete Sauvge" 를
, Ange는 "Le Cimetiere Des Arlequins"(두번째 LP, 그러나 이 앨범은 세계시장에서는
데뷔 앨범이다.)를 발표했다.
 또한 Gilbert Artman (drum, piano, vibe)이 이끄는 Project 형식의 그룹LardFree가
출범했다
그리고 음악 평론가들에게 대단한 호평을 받았던 Sandrose가 유일한 앨범이며 세계적인
희귀앨범 "Sandrose"를 남겼다. 또한 Magma 출신의 Jeff "Yochko" Seffer(sax vocal)와
Franc, OisCàhen(keyboards)가 이끄는 그룹Zao가 재즈 록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해였다.
그밖의 나라는 뚜렷한 활동이 거의 없었으므로 지면 관계상 생략하기로 한다


1973
 

미국

 결성 10주년을 맞은 Jefferson Air plane은 74년에 들어서면서 그룹명을
Jefferson Startship으로 개병하고 그룹의 건재함을 보여주었으나 Grateful Dead는
일시 활동을 정지함으로써 샌프란시스코 뮤직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감을 느끼게 한다.
프로그레시브 영역에서 보면 1974년 말 Kansas가 Don Kirshner가 설립한 Kirshner
레이블의 오디션에 합격함으로써 프로그레시브 록의 불모지인 미국땅에 또하나의 유능한
그룹이 빛을 바라게 되었다,
 Styx는 신비의 마법사를 재킷에 담은 클래식과 록을 혼합시킨 네번째 앨범이며
Wooden Nickel 레코드사에서의 마지막 앨범인 "Man of Mircles"를 발표했다.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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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ugee의 유일한 앨범 "Refug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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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wbs의 걸작 "Hero And Heroine" 타이틀곡과 "Autumn"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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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이스가 낳은 키보드의 천재 Vangelis의 데뷔 앨범 "The Drgon" 1971년에 발표했던 이 앨범은 1978년에 재발매 되었다

당시 영국의 록계는 수입의 85 ~ 95%를 세금으로 부과시키는 당국에 불만을 품은
대중적인 아티스트들이 미국을 비롯한 여러나라로 이주하는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Beatles 멤버들의 미국 이주를 들 수 있다.) 프로그레시브
계열에서도 Pink Floyd와 Yes EL&P 등의 수퍼그룹들은 영국의 중과세에 골머리를
앓으면서 미국 이주를 위해서 한해에 수차례의 미국 공연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EL&P를 겨냥해서 결성됐던 Refugee는 Nice의 재편성을 기획하던 Lee Jackson과
Brian Davision에 의해 결성된 그룹으로 스위스 출신의 키보드 주자 Patrick Moraz의
사운드를 기반으로 해서 Keyboard Music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결성 이래 40 차례의
공연과 단 한장의 앨범을 남긴 Refugee는 Patrick Moraz의 Yes 참가로 말미암아 활동을
정지함으로써 화려했지만 짧은 역사로 그치고 말았다.
 King Crimson도 해산 위기에 돌입, 타악기를 맡았던 Janie Muir가 탈퇴한 후 4인조로서
 "Starless And Bible Black"을 발표했다. 그후 King crimson은 새로운 앫범 "Red"의
리허설 중에 멤버간의 극심한 트러블로 해산을 발표하게 된다.
("King crimson은 죽었다!" - 1974년 9월 26일) King Crimson의 해산 발표후 그들의
공식적인 최후의 스튜디오 앨범 "Red"(데뷔앨범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던 8번째 LP)를
발표했다.
 Yes는 미국공연에 한창 열의를 올리고 있었던 한해였다. 연초부터 미국 순회공연을
행했던 Yes는 너무 극심한 연속적인 공연의 피로로 그룹 내부에 불화가 일기 시작했다.
 Rick Wakeman은 결국Yes를 떠났고 그룹은 후임 키보드 주자의 선택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Vangelis가 잠시 참가) 또한 "Ashes Are Burning"으로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Renaissance는 "Turn of The Cards"(3번째 LP)를 발표해 앞으로 다가올 세계 순회공연의
기틀을 마련했다.
 Genessis는 최초의 더블앨범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7번째 LP)를 발표 했다.
사운드가 강화 되었던 앨범이었으며 뉴욕의 맨해턴을 무대로 "Rael"이라는 불량 소년을
주인공으로 했던 이색적인 앨범이었다.
Strawbs는  1973년 11월에 코펜하겐에서 녹음했던 "Hero & Heroine을 발표했다.
이 앨범은 본국인 영국에서는 한때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사운드는 매우 훌륭했다.
대체적으로 1974년 영국의 수퍼 록그룹들의 음악들은 그룹의 존속 여부와 깊이 관련되면서
사운드가 대중적으로 흘러가는 양상을 띠었고 프로그레시브의 영역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시기였다.


 

이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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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 Sinfield가 제작해준 P.F.M.의 5번째 앨범 "The World Became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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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Trolls의 공식적인 라이브 LP "Tempi Disp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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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IS이 두번째 LP "IBIS". "Ritrovarci Qui"가 수록 되어 있다.

Pete Sinfield로 인해 세계시장에 진출한 이태리의 수퍼그룹 P.F.M.은 자연의 존속을
걱정하는 (사회성이 가득 담긴) 내용의 "The World Became The World"(5번째 LP)를
발표했다.
 수퍼그룹 New Trolls는 Genova의 Alcione극장에서 녹음한 실황앨범 "Tempi Dispari"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Free jazz를 바탕으로 한 두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Concerto Grosso Per I"의
 Adagio와 Candenza를 실황에 맞게 편곡해서 재즈 록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재즈 록의 연주가 돋보이는 6인조 그룹 Arti + Mestieri가 "Tilt"라는 앨범으로
데뷔했고 이태리 Heavy SymphonicRock의 극치를 보여주는 Biglietto  Per L'inferono가
데뷔 했다.
 Formula3의 해산 후 드러머 Tony Cicco가 Cicco라는 자신의 이름을 그룹명으로
"Notte"라는 데뷔 앨범을 냈고, 환상적인 틀래식 록을 들려주는 키보드 위주의 그룹
E.A.Poe가 "Generazioni"라는 앨범을 발표했다.
 1972년 당시 New Trolls가 두개로 분열되면서 네명의 멤버가 그룹을 떠났을때 그중
Nico Di Palo(vocal, guitar)와 Maurizio Salvi(keyboards)가 결성한 그룹 IBIS는
세계시장을 겨냥한 데뷔앨범 "Sun Supreme"을 만들었다. 그리고 Formula3 출신의
Alberto Radius(vocal,Guitar)와 Gabriele Lorenzi(key boards)가 결성한 6인조 수퍼
록 그룹 II Volo가 데뷔했으며 이태리의 베테랑 그룹 Le Orme는 "In Concerto"
(6번째 LP)와 3장의 걸작 중 하나인 "Contrappunti" (7번째 LP)를 발표 했고,
"Io Sono Murple"(나는 펭귄이다)라는 제목을 가진 Murple의 앨범의 키보드 위주의
사운드로 장식됐다.
 서정성이 깃든 6인조 그룹 Quella Vecchia Locanda는 두명의 멤버를 교체한 후 2년만에
"II Tempo Della Giola"(2번째 LP)를 발표 했다. Twin Keyboards 중심의 Sensations Fix가
 "Patable Madness"를 , 프랑스 혁명때의 인물 Saint Just가 최후의 앨범
"La Casa Del Lago"(2번째 LP)를 내고 해산했다.
 Osanna  출신의 세 멤버 Elio Da'nna(Flute, Sax), Danilo Rustici(Vocal,Guitar,
Keyboard), Enzo Vallicelli(Drum)가 결성한 Uno가 유일한 앨범을 남겼다.
(이태리에서 발매된 앨범은 영어와 이태리어가 혼용되고 있고, 독일에서 발매된
앨범은 전부 영어로 되어 있으며 독일판은 Hipgnosis가 표지 디자인을 해 주었다.)
 5인조 그룹 UT는 긴장감이 도는 "Homo"라는 앨범을 발표했다.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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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거물 뮤지션들이 대거 참가한 세션 앨범 "Galatic Super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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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의 유일한 앨범 "Life After Death" 1974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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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에 결성, 1975년에 스위스 Montreux 재즈 훼스티발에서 데뷔했던 그룹 Argora의 "Live In Montreux". 이들의 그룹명은 그리이스 평화의 광장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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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gerine Dream의 세계진출 앨범 "Phaed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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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lenstein의 네번째 LP "Stories, Songs & Symphonies"

1974년 독일의 록계는 활짝 꽃이 피는 최전성기를 맞았다. 수처그룹들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세션그룹, 무명그룹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앨범들을 많이 발표했고, 그들의
독특한 음악성을 세계시장에 인정 받았던 뜻깊은 한해이기도 했다. 1974년은 Tagerine
Dream의 해라 할 만큼 Tangerine Dream은 행운을 가득 안았다. "Phaedra"가 영국 Virgin
레이블에서 발매되어(1월20일) 발매와 동시에 영국차트 10위에 올랐고, 리더
Edgar Froese는 첫번째 솔로 앨범 "Aqua"(6월24일)를 발매 했다. 그 후 베를린에서의
20차례 공연과 유럽 전역에 걸친 순회공연을 가졌고, Rheims 성당공연에서는 2천석의
공연장에 6천여 인파가 몰려 Tangerine Dream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그룹 Can은 1월2번과2월, 3차례의 영국 방문 공연에서 Melody Maker지로부터 "최고의
성과를 올린 만족된 공연"이라고 호평을 받았으며 2개월 후 그들의 초고의 수준작인
"Soon Over Babaluma"(7번째 LP)를 발표 했다. "Headphone을 착용하거나 안하거나
관계없이 같은 양의 음악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납니다." 라는 글귀를 Label
상징 마크 아래 새겨 놓는 이색적인 Delta-Acustic레코드사로 부터 3인조 그룹 Code III가
 Electronics Effect효과와 공간적인 음향, 이슬람풍의 여성 코러스가 어울린 현대음악에
가까운 작품 "Planet of Man"을 발표했다.
 1973년에 발족했던 Kosnishe Musik 레코드사로부터 8장의 수퍼 세션앨범이 쏟아져
나왔고 이외에도 5장의 "Galactic Supermaket" 앨범이 추가 되었다. 멤버로는
Wallenstein의 리더 Jürgen Dollase, 드러머 Harald Grosskopf, Ash Ra Tempel의 리더
Manuel Güttsching, Haus Schalze, 엔지니어이며 키보드도 담당하는 Dieter Dierks,
제작자 Gille Leftmann과 그의 콤비  Rosi가 참가 했다.Popol Vuh는 Florian과 우리나라
여성 정윰, 훌륫주자 Olf Kübler와 함께트리오 형태로 5번째 앨범인 Einjäger &
Siebenjäger"를 발표했고, 뮨헨 필하모니 관현악 단원중 한명을 받아들여 이태리 공연을
 치루었는데 그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외에도 수많은 그룹들이 작품을 내놓았는데
 Embroyo는 재즈와 중동쪽의 민속음악을 융합 시킨 "We Keep On"(6번째 LP)이란 앨범을,
30종류의 악기를 다루는 베일에 가려진 그룹 Floh De Cologne(초창기 4인조 그룹->5인조
->6인조로 증원됨)이 "Geyer-Symphonie"(5번째 LP)를 발표 했다.
 1970년에 5인조로 출범해서 지금까지 9매의 앨범과 1장의 Best를 남기고 있는
Lucifer's Friend (영국 하드록에 기초를 둔 그룹)가 "Banquest"라는 의욕적인 네번째
앨범을 내놓았다.
 Wallestein은 음악 스타일을 대중적으로 변화시킨 "Stories, Songs & Symphobies"를
만들어냈다. Popol Vuh처럼 동양의 종교적 감상을 그대로 반영한 4인조 그룹 Yatha
Shidhra(남부 독일-스위스 계통그룹)가 세션 앨범적인 성격을 지닌 "A Meditation Mass"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독일 프로그레시브의 홍수에도 불구하고 Guru Guru는 "Dance of the
Flames"를 내놓고 임시해산을 선언했으며 KlausSchulze는 Agitation Free의 리더
Michel Hönig(Guitar,Keyboards)  와 "공동 작업"이라는 뜻을 가진 합성어 Timewind라는
그룹을 조직하려 했으나 자신의 솔로 근성으로 그룹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독일의 록은
기계문명과 동화되어가는 것을 긍정하는 동시에 자연으로의 귀로, 동양적 신비주의에 대한
 동경이 매우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1974년은 이러한 독일 록이 본격적으로
세계음악시장에 진출하는 해였으며 그들만이 만들 수 있는 독특하고 우수한 작품이 많이
 쏟아져 나왔던 한해였다

프랑스

 중후한 키보드와 서정적인 키타연주를 지닌 수퍼그룹 Ange가 "Au- Delà D`u Délire"
(3번째 LP)를 발표했다. 중량감과 실험적인 요소를 품부하게 지닌 수퍼그룹 Magma도
"Köhntarkösz"(4번째 LP)를 만들어 냈으며 또한 리더인 ChristianVander는 "Tristan
Et Yseult"라는 영화의 사운드 트랙 앨범을 발표했다.


네덜란드

 Focus의 기타리스트 Jan Akkerman이 다른 솔로 앨범보다 더욱 재즈에 가까운
"Tabernakel" (3번째 솔로 LP)을 발표했다.(게스트로 Vanilla Fudge 출신의
Tim Bogert와 Carmine Appice가 참가) 클래식의 명곡을 전문적으로 편곡하는 그룹으로
관현악까지 동원하는 스케일 큰 그룹 Ekseption이 "Bingo"(Best LP를 제외한 7번째 LP)를
발표했다. 또한 두대의 만돌린과 목관악기, 베이스, 드럼, 보컬 편성의 Galaxy-Lim이
결성 됐다.
 그리고 Sweet Okay Supersister는 각종 효과음 등을 전기 처리했던  "Spiral Staircase"
(5번째 LP)를 발표하고 해산 했다

스페인

 1960년대 말에 Bautista에 의해 결성된 Los Canarios는 음악적 결핍으로 일시 해산됐다가
재결성, 스페인 록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남을 명반 "Cycles"를 발표했다. (8년에 걸친
기간동안 Vivaldi의 "사계(四季)" 를 기반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작품). 4인조 그룹
Fusioon은 Avant Garde와 클래식에 가까운 키보드 연주가 담뿍 담긴 "Fusioon"
(두번째 LP)을 발표 했다.

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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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를 대표하는 프로그레시브 그룹 Cos

벨기에의 프로그레시브 영역에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Cos가 "Jazz Rock
Pastaeolian Train Robbery"라는 앨범으로 데뷔했다.
 
======= 맺음말=======

3개월에 걸쳐 프로그레시브 황금기 Trilogy를 엮으면서 우리들이 그 동안 얼마나
프로그레시브 록에 무관심해왔는가를 같이 공감해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여기에
소개해왔던 그룹들은 대체로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그룹들이긴 하지만
모두가 프로그레시브 영역에서는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그룹들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1969~1974년 동안에 활약했던 일부 그룹들만이 소개되었지만 그당시 뿐만
아니라 1975년 이후에도 매우 훌륭한 그룹들이 존재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신생 그룹들이 탄생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우리가 접해볼만한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리라 기대 된다. 이 글을 쓰는데 참고가 된 서적은
무척 많았으나 주로 Euro-Rock 전문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프로그레시브 앨범들,
세계각국의 음악 평론가들의 평론이 큰 도움이 되었음을 밝히고 싶다.

 
 
 
 
출처:http://gpr2425.hihome.com

Posted by 겨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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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etpinkdreams.com/czn/power-point-clicker BlogIcon power point clicker 2007.10.18 0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의 친구는 너의 위치의 현재 팬이 되었다!

  2. Favicon of http://wetnredsex.com/view/free-woman-nudity BlogIcon free woman nudity 2007.10.18 14: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심을 끌. 너가 동일할 좋을 지점을 다시 배치할 것 을 나는 희망한다.

  3. Favicon of http://hotgirls2008.net/go/tiny-penis-photo BlogIcon tiny penis photo 2008.03.13 0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재미있는 지점. 감사.

  4. Favicon of http://celebblowsbar.net/czn/make-how-lingerie BlogIcon make how lingerie 2008.05.23 04: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에서 유사한 역사는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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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플로이드의 81 Collection Of Great Dance Song앨범재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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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k Floyd - Wish you were here


대부분의 아트락 매니어들이 그렇지만, 나 역시 핑크 플로이드를 통해 아트락을 접했고, 좋아하게 됐다. 중3때로 기억한다. Pink Floyd Best Collection 이라고 적힌 하얀색 테입(해적판이었을 듯)을 동네 레코드 가게에서 샀다. 그당시 나는 친구가 녹음해준 비틀즈 히트곡 모음집 테입에 푹 빠져 있었고, 6,70년대 락그룹들의 베스트 테입을 몽땅 사모으던 시절이었다.(그때 사모은 테입들은 90년대 초반 불어 닥친 마귀음악 열풍 덕에 친구와 함께 단호히 불로 태웠지만.. ^^;) 귀에 쏙쏙 들어오던 비틀즈의 음악과는 달리 낯설게만 느껴지는 곡들이었지만 그 중 나의 가슴을 적시는 한곡이 있었으니 그 곡이 바로 'wish you were here' 였다. 비틀즈의 곡들에서는 느끼지 못한.. 어둡고 슬픈 감정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그 후에 알 게 됐지만 'wish you were here'란 곡은 핑크 플로이드의 초기 리더였던 시드 바렛을 그리며 쓴 로저 워터스의 곡이었고 동명의 앨범 역시 핑크 플로이드의 대표적인 명반이었다. 핑크 플로이드를 대표하는 곡이라 할 수 있는 'Shine on you crazy diamond'를 비롯해 'wish you were here', 'have a cigar'등의 명곡들이 담겨 있는 프로그레시브 락 최고의 명반이라 할 수 있다. 이 앨범외에 핑크 플로이드 3대 명반으로 불리는 'Dark side of the moon','The Wall' 등의 앨범은 반드시 들어 보실 것을 권한다. 그후에 Animal,Meddle,Division Bell을 들어 보시고 어느정도 아트락에 익숙해 지신 분들은 Atom Heart Mother, Ummagumma, A Saucerful of Secret 같은 초기 작품들을 들어 보시기를...그야말로 아트락의 참맛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이다.





자료출처:http://myhome.hitel.net/~pulsar/frame3.htm

Posted by 겨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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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malcom-ish.tistory.com BlogIcon 욕심M 2007.01.31 22: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보기엔 비틀즈 음악이랑 크게 다르지 않은것 같아요.
    가사 뜻을 이해 못해서 인걸까요?

  2. Favicon of https://aquajewelmusic.tistory.com BlogIcon 겨울초 2007.01.31 23: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비슷해요
    가사도 문제가 있겠지만 중요한건 예술이 가미되었냐는거죠
    실험적인 부분들...
    그리고 아트락 하는 그룹들이 나는 아트락그룹이다라고 우겼습니다 ㅎㅎ
    프로그래시브락은 락을 기반으로 주제를 가지고 예술을 가미했다는게 틀릴뿐이에요
    이해가 살짝 되셨을라나 몰라 ㅋㅋ

Art Rock 입문을 위한 앨범 가이드

 

 

 

 

 

 보통의 사람들에게 아트락을 들려 주면 '이게 모야 ??', '기괴 허군..이런 음악도 있었나?' 라는 반응을 보인다. '뭔가 다르긴 한데 좀 어렵군..' 음악을 웬만큼 좋아한다는 사람들의 반응도 이럴 정도니, 아트락이란 것이 그렇게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음악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아트락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진지한 감상 태도로서 접근한다면, 결코 아트락은 어렵고 괴상하기 만한 음악이 아니다. 60년대 말에 시작되어 70년대까지 아트락은 당당히 대중음악의 주류 위치에 있었고 비틀즈나 레드 제플린에 열광하던 사람들이 아트락 그룹들에도 똑같이 열광했었다. 80년대로 올라오면서 찬란하던 아트락 황금기도 몰락해 갔지만, 지금도 많은 뛰어난 아티스트(라디오 헤드, 소닉유스, 드림 씨어터등)들이 선배 아트락 뮤지션들이 개척한 새로운 음악의 영향아래 진보적인 음악세계를 펼쳐 나가고 있으며, 6,70 년대 아트락 그룹들의 음악을 그대로 계승, 그들만의 개성과 현대적인 감각으로 합하여 아트락 전성기 못지 않은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는 그룹들 또한 적지 않다.(스웨덴 3인방이나 영국의 포큐파인 트리, 동유럽이나 일본의 그룹 등등) 이로 미루어 볼 때 아트락은 결코 과거의 흘러가 버린 음악이 아니며, 인간에게 있어 미지의 세계를 향한 지적호기심과 진보, 실험의 정신이 사라지지 않는한 아트락은 영원할 것이라 믿는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지금 소개드리는 앨범들은 아트락을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사람들이라도 쉽게 아트락과 친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 앨범들이다. 나도 아트락이 무엇인지 모르고, 귀에 들어오지 않던 시기가 있었고, PC통신등에 소개된 추천 앨범 목록을 노트에 적어가며 기록했다가 하나둘 사서 들으면서 아트락의 참된 매력을 느껴 갈 수 있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아래소개된 앨범들의 음악을 통해 아트락의 참맛을 느끼고, 여러분의 삶이 좋은 음악을 듣는 감동과 기쁨으로 풍성해 질 수 있기를 바란다.

 

 Pink Floyd - Wish you were here

 

대부분의 아트락 매니어들이 그렇지만, 나 역시 핑크 플로이드를 통해 아트락을 접했고, 좋아하게 됐다. 중3때로 기억한다. Pink Floyd Best Collection 이라고 적힌 하얀색 테입(해적판이었을 듯)을 동네 레코드 가게에서 샀다. 그당시 나는 친구가 녹음해준 비틀즈 히트곡 모음집 테입에 푹 빠져 있었고, 6,70년대 락그룹들의 베스트 테입을 몽땅 사모으던 시절이었다.(그때 사모은 테입들은 90년대 초반 불어 닥친 마귀음악 열풍 덕에 친구와 함께 단호히 불로 태웠지만.. ^^;) 귀에 쏙쏙 들어오던 비틀즈의 음악과는 달리 낯설게만 느껴지는 곡들이었지만 그 중 나의 가슴을 적시는 한곡이 있었으니 그 곡이 바로 'wish you were here' 였다. 비틀즈의 곡들에서는 느끼지 못한.. 어둡고 슬픈 감정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그 후에 알 게 됐지만 'wish you were here'란 곡은 핑크 플로이드의 초기 리더였던 시드 바렛을 그리며 쓴 로저 워터스의 곡이었고 동명의 앨범 역시 핑크 플로이드의 대표적인 명반이었다. 핑크 플로이드를 대표하는 곡이라 할 수 있는 'Shine on you crazy diamond'를 비롯해 'wish you were here', 'have a cigar'등의 명곡들이 담겨 있는 프로그레시브 락 최고의 명반이라 할 수 있다. 이 앨범외에 핑크 플로이드 3대 명반으로 불리는 'Dark side of the moon','The Wall' 등의 앨범은 반드시 들어 보실 것을 권한다. 그후에 Animal,Meddle,Division Bell을 들어 보시고 어느정도 아트락에 익숙해 지신 분들은 Atom Heart Mother, Ummagumma, A Saucerful of Secret 같은 초기 작품들을 들어 보시기를...그야말로 아트락의 참맛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이다.

 

 King Crimson -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핑크 플로이드와 함께 아트락을 대표하는 그룹인 킹크림슨의 69년 데뷔 앨범이다. 이 앨범은 여러모로 역사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최초의 완벽한 아트락 작품이라 평가되며, 비를즈의 공식적인 마지막 앨범 'Abbey Road'를 빌보드 앨범 차트 2위로 끌어 내리고 1위로 등극한 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너무나도 유명한 'Epitaph'을 비롯,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곡중 하나인 'Talk to the wind', '21st century schizoid man' 등 아트락 입문자들은 반드시 거쳐가야할 아트락의 교과서라 할 만한 작품이다. 이 외에

킹 크림슨 3대 명반으로 일컫는 'Red', 'Lark's tongues in aspic' 등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추천하고 싶은 작품들이고, 국내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Islnad'나 'Lizard' 90년대 발표한 'Thrakk'등도 꼭 들어 보시기를...


Emerson Lake & Palmer - Emerson Lake & Palmer

 

클래식과 락을 가장 성공적으로 접목시켰던 그룹중 하나인 ELP의 동명 데뷔앨범이다. 최고의 뮤지션들이 뭉친 슈퍼 그룹인만큼 화려하고 정교하기 그지없는 연주로 펼친 깊이있는 음악과 철학적인 가사는 그들을 당대 최고의 아트락 그룹으로 불리게 했다. 킹크림슨 1집에서도 보컬을 맡았던 그렉 레이크의 보컬이 담긴'Take a pebble', 'Lucky Man'을 비롯해 'The Three Fate'등에서 보여준 키스 에머슨의 환상적인 연주는 아트락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2집인 Tarkus와 보통 그들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Trilogy 같은 작품들도 필청을 권하고 싶고, 무소그르스키의 작품을 재해석한 '전람회의 그림', 'Brain Salad Surgery' 등도 추천하고 싶은 작품들이다.

 

 Yes - Fragile

 

 아트락 최고의 테크니션들로 이루어진 예스의 4번째 작품이다. 천상의 보컬 '존 앤더슨', 기타의 장인 '스티브 하우' 영국 로열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릭 웨이크먼'을 비롯해 '크리스 스콰이어', '빌 브르포드' 의 최강의 라인업으로 제작된 'Fragile'은 'Roundabout',' Heart of the sunrise'등 아트락을 대표할만한 명곡들을 담고 있고, 최상급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앨범이다. 예스 양대 명반으로 꼽히는 5집 'Close to the Edge'와 함께 아트락 필청 앨범 목록에 빠지지 않는 작품이다.

 

 Genesis - Trespass

 

 제네시스는 필 콜린스의 팝그룹으로도 유명하지만, 사실 피터 가브리엘이 이끌었던 1기 제네시스는 씨어트리컬 락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던 아트락 그룹이었다. 그들의 두 번째 작품인 'Trespass'에서부터 제네시스는 본격적인 아트락을 시도하였고 이후 발표된 'nursery cryime', 'foxtrot','selling england by the pound','lamb lies down on broadway' 등은 제네시스만의 독창성을 느낄 수 있는 씨어트리컬 락의 걸작들이다. 제네시스의 본작은 내가 핑크 플로이드 다음으로 들었던 아트락 테입이기도 한데, 듣게된 계기는 엉뚱하게도 팝그룹 제네시스인줄 알고 샀다가(물론 같은 그룹이기는 하지만 ^^;) 괴상하기 그지없는 보컬과 음악들에 어리둥절했었던 기억이 난다. 몇 번 더 듣고 난 후부터는 가장 즐겨 듣는 테입이 되었지만...(중딩 시절, 마르고 닳도록.. 가장 많이 들었던 테입일 것이다. 물론 마귀음악 화형식때 사라졌지만 ^^;;)

 

 Camel - Stationary Traveller

 

 영국 그룹 앨범 소개는 위의 5대 브리티쉬 아트락 그룹에서 끝낼까 하다가, 그러면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그룹 Camel 이 섭섭해 할 것 같아(^^;) 추가한다. 낙타의 본작은 아트락 팬이 아니더라도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는 앨범일 것이다. 라디오 방송에서도 종종 흘러나오는 'Long Goodbye'를 비롯해 팝적인 감각의 곡들이기 때문에, 아트락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도 부담없이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부디 'Stationary Traveller'가 주는 감동을 느껴 보시기를.. 이 앨범과 비슷한 분위기의 'Nude', 초중기 낙타의 클래시컬하면서도 서정적인 음악을 들을 수 있는 'Snow Goose', 'Mirage', 'Moonmadness'등의 앨범들도 강추다.

 

 New Trolls - Concerto Grosso Per.1

 

 핑크 플로이드와 함께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아트락 그룹이 뉴트롤스일 것이다. (모 드라마에 삽입되 큰 인기를 누렸던 Adagio'의힘이 컷겠지만)  뉴트롤스는 영국과 함께, 아트락 강국인 이태리 출신이다. 이태리의 아트락은 거의가 클래시컬한 심포닉락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본 앨범도 클래식과 락의 접목을 시도한 앨범이다. 20분이 넘는 대곡'Cadenza...Andante Con Moto', 지미 헨드릭스의 기타 연주가 담긴 'Allegro(Shadows)'등 뉴트롤스의 멋진 음악과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이 앨범 외에 'UT','Concerto Grosso Per.2', 등의 앨범도 추천하고 싶다. (재즈락 좋아하시는 분은 'Tempi Dispari' 앨범도 들어보시기를)

 

 Premiata Forneria Marconi(PFM) - Per Un Amico

 

 국내 아트락 매니어 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PFM의 두 번째 앨범이다. 정교하고 짜임새 있으면서도 장대한 스케일의 음악은 수준높은 아트락을 느낄 수 있게끔 한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Appena Un Paco',를 비롯해 'Per Un Amico'등 한곡 빠짐없이 좋은 곡들로 차있다. 이 앨범과 함께 1집인 'Storia Di Un Minuto'도 반드시 들어 볼 만한 걸작이다.

 

 Osanna - Palepoli

 

 갈채라는 뜻의 그룹 오잔나는 뉴트롤스,PFM,Formula3 등과 함께 이태리 아트락을 대표하는 그룹이다. 그들의 3번째 앨범인 Palepoli는 20분이 넘는 2곡이 실려 있는데, 열정적인 플룻과 거친 기타 연주 안에 이태리 만의 고유한 민족적 색채를 담아낸 작품이다. 하드락 풍의 1집 'L'uomo', 대중적인 감각의 2집 'Milano Calibro 9'등도 좋지만, 3집 Palepoli는 가장 진지하고 깊이있는 그들만의 독창성이 담긴 걸작이라 생각한다.

 

 Formula3 - La Grande Casa

 

 포르뮬라 뜨레는 내가 처음으로 이태리 아트락에 매력을 느끼게 했던 그룹이었다. 본작은 하드락 풍의 1집 'Dies Irae' 실험성 강한 걸작인 3집 'Songnando E Resongnando'에 이어 발표된 그들의 4집이자 마지막 앨범이다. 누구나 쉽게 듣고 친숙해 질 만한 멜로디에, 그룹의 끝을 예감한 듯 우울하면서도 목가적인 감성의 편안한 음악들은 아트락을 입문하시는 분들께 가장 적당한 음악이라 생각된다.

 

  <Epilogue>

 본의 아니게 영국과 이태리 그룹들만 소개하게 됐는데, 사실 아트락 입문하시는 분들은 영국과 이태리 음악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이 가장 무난하고 일반적인 경로라 생각된다. 여기 소개된 그룹들 외에도 영국,이태리는 물론이고 프랑스,독일,북유럽,동유럽,남미,일본 등지에도 수많은 아트락 그룹들이 있으며, 위에 소개된 그룹들 못지 않게 훌륭한 음악을 들려 주었던 그룹도 많다. 그것들을 찾아 들어보는 것은 여러분 각자의 몫일 것이다. 이전에 아트락을 듣는 선배에게서 들은 말이 있다. 아트락을 깊이 파고 들다 보면 A급으로 분류되는 아티스트 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B급 아트스트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고.. 자신만의 취향을 찾게 된다는 말이다.

 

 이 지구상에는 내가 들어보지 못한 수없이 많은 음악들이 있고 내겐 그러한 사실이 설레임과 흥분으로 다가온다.

그 음악들 속에는 기쁨,슬픔,사랑,허무,절망,분노,그리움 같은... 음악가의 정신과 감정속에 녹아든 여러 가지 삶의

이야기들이 진실한 모습으로 담겨져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음악을 통해서 그것들을 함께 느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게 매우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다...



자료출처:http://myhome.hitel.net/~pulsar/frame3.htm

Posted by 겨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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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malcom-ish.tistory.com BlogIcon 욕심M 2007.01.24 10: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락에 관심이 있긴하지만 가르쳐줄 사람도없고,
    마왕에게 물어도 네이놈 검색이나 하라는 둥의 핀잔만 들었는데,
    이렇게 집어주시니까 정말 좋아요!!!

  2. Favicon of http://hotgirl-2008.com/epinions-coffee-maker BlogIcon epinions coffee maker 2008.03.13 0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대하고 유용한 위치!

  3. Favicon of http://brunettewildzone.com/wet/feet-gallery-free BlogIcon feet gallery free 2008.05.23 04: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친구는 위치의 너의 현재 팬이 되었다!

  4. Favicon of http://hyrule.tistory.com BlogIcon 그림자잎 2008.06.13 02: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아트락에 관심이 있었는데 좋은 자료네요. 잘보고 갑니다 ㅎㅎ

  5. Favicon of http://cafe.daum.net/sarf BlogIcon 이달콤 2010.02.03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잔나 내한공연

    2010.4.3

    마포아트센터

    평생 한번 뿐인 기적의 공연

월간팝송 1984년 8월호,  프로그레시브 황금기 Trilogy (제1부 1969 -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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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nk Floyd의 "Atom Heart Monther"에 편곡자겸 멜러디 작곡가로 참여했었던 Ron Geesin! 그의 사회 풍자 수필집 'Fallables'(Butter & Tanner Ltd, Forme & London Press 1975)를 펼치면 이런 글귀가 나온다. "몇몇 사람들이 나에게 미쳤다고 하는데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지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미쳐 있다고....."
 음악을 열광적으로 사랑하는 Music Mania라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글귀라고 생각된다(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 자신도 남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욱 더 음악을 사랑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니까....).
 우리의 것이 아닌 남의 나라 음악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약간 부끄럽긴 하지만 우리들의 음악적 빈 공간을 메꾸기 위해서는 그들의 음악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듣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깊숙히 탐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주위에 존재하고 있는 방송이나 책속에서 자주 접하게 되면서 한편으로는 우리의 주체의식이 점점 식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도 해보게 된다. 더우기 우리들은 남의 음악을 탐구하는데 있어서 지나친 편식을 해왔으며 탐구하는 자세의 기본정신을 망각하고 그들의 음악을 무조건 과대평가하거나 자기 취향에 따라 악평가하는 일도 적지 않았으며 소홀히 지나쳐버린 것도 수없이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 "프로그레시브 황금기"라는 공간에서 만큼은 충실한 자료를 토대로 객관적이면서도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그동안 우리가 소홀히 넘어갔던 부분을 중점적으로 써내려갈까 한다.
 특히 "음악은 영혼을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는다. 다만 영혼을 자극하는 힘을 갖고 있다."라는 톨스토이의 명언과 "모든 음악을 다접해보도록 노력하라"는 여러 선배들의 충고를 그냥 지나쳐 버리는 일이 없도록 심혈을 기울여 보았다.

성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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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k Floyd의'Atom heart Mother'에게스트로 참가했던Ron Geesin의 수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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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그룹It's A  Beautiful Day의 데뷔 앨범. <White Bird>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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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 Crimson의 데뷔앨범 속 그림 손 모양이 부처와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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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에 발매됐던 Genesis앨범의 재발매(1974) 레코드 "From Genesiss To Revelation".
제네시스의 대중적인 데뷔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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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 Der Graf의 최후의
 스테이지를 담은 마지막 앨범 "Vital"
 








우리는 벌써부터 관심을 가져야 했을 이러한 음악들을 1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다시 이해하려 한다면 많은 시대 착오가 일어날 가능성도 크지만, 우리의 신선한 음악 감각으로 그 시대착오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해 본다.
 그 당시 우리들은 미국 음악이라는 한 우물을 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주위에 많은 물줄기가 있었다는 것을 미처 모르고 있었다(그 많은 물줄기 속에 달콤하고 짜릿한 그 무엇인가가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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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1960년대 말 미국의 Rock은 사이키델릭 록(Psychedelic Rock)과 히피 운동(Hippie Movement) 속에 탄생한 샌프란시스코 사운드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1960년대를 총결산하는 1969년 미국의 록계는 커다란 사건이 많았는데 8월에 개최되었던 최대 규모의 우드스탁 훼스티벌(Wood- Stock Music & Art Festival)을 비롯해서 Atlanta Pops Festival(7월), Texas International Pop Festival(8월) 등이 당시의 상황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진보적인 성격을 띠었던 그룹으로1967년 7월에 데뷔했던 Vanilla Fudge가 3장의 앨범(데뷔 앨범과 "The Beat Goes On", "Renais- sance")을 내놓은 후 4번째 앨범"NearTheBegining"을 발표하고 있었고, 바이얼린 주자 David Laflamrine이 이끄는 샌프란시스코 그룹 It's A Beautiful Day가 대망의 데뷔앨범을 내 놓았다.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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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fred Mann이 이끄는 free jazz project Chapter Three의 두번째 앨범이자 최후의 앨범. 백인 인형들 속에 있는 흑인 인형 하나는 백인음악 속의재즈를 뜻한다.

영국에서는 Mafred Mann Cha- pter III와 같은 free jazz 지향의 Project가 등장하면서 재즈 프로그래시브의 길을 열어주고 있었으며Pink Floyd와 같은 사이키델릭 지향의 그룹들이 완벽한 프로그레시브 그룹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리더였던 Syd Barrett을 잃은 Pink Floyd는 David Gilmour를 정식 멤버로 받아들여 그룹을 재정비하고 완전히 프로그레시브 영역으로 진로를 바꾸면서 두번째 앨범 "A Saucerful of secrets", 그리고 무관객 Live와 실험적인 사운드를 담은 "Ummagumma"를 발표했다.
1970년대의 영국 프로그레시브를 장악하게 될 Tes가 레코드 데뷔를했으며 전세계를 놀라게 했던 프로그레시브의 대부(代父) King crimson이 불후의 데뷔 명작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을 발표했다(당시 이앨범은 데뷔 앨범으로서는 보기 드문 커다란 성공작이었다.) 또한 유럽의 여러 진보그룹(특히 이태리 그룹)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게되는 Genessis가 평범한 앨범인 "From Genessis To Revelotion" 으로 데뷔를 했다. Moddy Blues도 평범한 록 사운드에서 탈피해서 1967년부터 ("Days of future Past")  클래식을 기반으로 한 전원적인 사운드를 펼치기 시작 했으며, 5번째 앨범인 "On the threshold of a dream"과 6번째 앨범인 "To your children's Children"을 발표했다.
 영국 언더그라운드의 왕좌를 누리고 있던 Van Der Greaf Generator (1967년 Manchester University에서 결성)는 데뷔앨범 "Aerosol Grey Machine"응 발표한 후 Charisma Label과 계약을 맺고 " The Least We Can Do Is Wave To Each Other"를 녹음 했다. 그리고 훌륫 주자 Ian Anderson이 이끄는 Jethro tull은 데뷔앨범을 발표한지 1년만에 싱글 <Living In The Past>를 성공시키고 두 번째 앨범 <Stand Up>을 발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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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e의 다섯번째 앨범이며 공식적인 최후의 앨범

당시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계는 개성이 뚜렷한 그룹들이 등장 했으며 악기의 발달과 레코딩 기술의 개발로 말미암아 침체기에 빠져있던 영국의 레코드 산업계를 다시 한번 들뜨게 했다. 그리고 클래식과 록의 융합을 실현했던 Keith Emerson이 이끄는 Nice의 두번째 앨범 "Ars Longa Vita Brevis"와 세번째 앨범 "Nice", 네번째 앨범 "Five Bridge"를 완성해서 그들의 전성기인 1969년에 3장의 앨범을 만들어 내놓는 저력을 과시했다. 당시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계는 유럽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로 뻗어나갈 정도로 거대한 세력이었으며, 프로그레시브 록계의 최강국임을 확인시켜주었다.
 당시 영국을 제외한 여러 유럽 국가에서는 미국, 영국의 록적인 감각과 독특한 음악 감각을 융합한 새로운 형태의 록 그룹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독일
독일의 록계에는 1969년을 기점으로 많은  그룹이 탄생했다. 이미 결성해서 활약하던 여러 그룹들은 새로운 악기와 멤버를 보강해서 그룹을 재정비하고 사운드를 강화시키는 뜻 깊은 시기 였었다. 이때 독일의 록은 미국과 영국의 록에 영향을 받은 사이키델릭 사운드가 주를 이루고 있었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독특한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났다.(당시의 사운드는 매우 강력하면서도 복잡한 느낌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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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gerine Dream의 스테이지

 1월에 잠시 해산했었던 Tangerine Dream은 Klaus Schulze를 받아들여 그룹을 재결성 했다. 그들은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영국 레이블과 계약이 좌절되자 동일 레이블인 Ohr와 계약하고 첫 앨범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클래식 기타 교육을 받으면서 Pop Combo를 시도 했었던 기타리스트 Manuel Göttsching은 Blues Band를 결성해서 활약했고, 앞으로 독일 록계에 신성함을 불어 넣어 줄 Popol Vuh의 리더 Frorian Fricke는 그룹 결성에 앞서 커다란 Moog Synthesizer를 구입했다.
 정치와 예술의 대립으로 독일 최대의 록 훼스티발인 "Internationalen Essener Song Tage"에 참가하기 직전 Amon Düül I과 Amon Düül II로 분열 됐다.
 Amon Düül I은 정치활동과 함께 "Psychedelic Underground"와 "BasF"로부터 편집앨범 "Disaster" 를 발표했고,  Amon Düül II는 "Phallus Dei"를 발표 했다.
  현대 전위음악가 Karlheinz Stochausen의 제자인 Irmin Schmidt와 Holger Czukay에 의해 결성된 Can은 그룹 결성 1년 만에 데뷔앨범을 제작하려 했으나 레코드 회사의 거절로 말미암아 데뷔앨범 "Monster Movie"를 자비로 Music Factory 레이블을 통해 한정판 600매를 만들어 냈다. Col 앨범은 1969년 겨울에 United Artist 레이블을 통해 재발매되기 전까지 당시 팬들 간에 60마르크 이상의 높은 가격으로 암거래되고 있었다. 정신병으로 보컬리스트 Malcolm Moony가 탈퇴함으로서 Can은 또 한 차레의 위기를 맞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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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my Grashow가 목판화로만들어 준 Jethro Tull의 두번째 앨범

또한 독일 록계에 중요한 시기인 1969년 여름에는 Jazz, Free Music, Underground 계통의 록, 사이키델릭 록 연주자들이 서로 다른 경력을 가지고 교류를 시작,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종합해서 작품세계에 반영했는데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그룹이 Embryo라는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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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사이키델릭 그룹 Guru Guru의 리더 Mani Neumeier

1967년에 결성돤 이후 Free Jazz를 추구하던 Guru Guru는 정식 이름으로 2년만에 데뷔를 했다. 이들은 Mani Neumeier를 주축으로 사이키델릭하면서도 강력한 사운드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Tangerine Dream의 드러머 Christoph Franke가 재적해 있던 그룹 Agitation Free(1967년 여름에 결성)는 겨울에 Mixed Media Show "Inter Media"를 상연하기도 했다. 그외에도 우리에게 잘알려진 Neckter가 결성을 했고  Kraftwerk의 두명의 창시자인 Ralf Hütter와  Florian Schneider는 보컬리스트 Basil Hammoudi등 3명의 뮤지션과 함께Organisation이란 그룹명으로"Tone Float"라는 앨범을 만들었다.
 
이태리
 당시 이태리는 상업성보다는 음악성을 내세우는 마이너 레이블(Minor Label)의 탄생을 위해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록 사운드 자체는 대체로 단순하면서도 아름답고 그들의 전통적인 Canzone풍의 요소를 담고있었다.(당시의 상황은 월간팝송 6월호 P.63참조[기사 P11])
 Italian Rock의 창시자 중 한사람인 Lucio Battisti는 남들에게 음악을 주어 성공했던 과거의 경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곡인 <Acqua Azzurra, Acqua Chiara>를 불러 훼스티발에서 대상을 받았으며 데뷔앨범을 발표해서 당시 이태리 음악계를 휩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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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Trolls의 최고 걸작이라고 평가 받는

이태리 최초의 프로그레시브 록그룹이라고 불리우는 Formula 3가Numero Uno 레이블을 통해 데뷔했다. 1966년에 록그룹으로 출발했던 PFM은 Formula3의 Alberto Radius와 교류를 갖고 Lucio Battisti를 알게 됐다. 1966년에 결성됐던 이태리의 수퍼그룹 New Trolls는 다른 그룹들에 비해 매우 활동적이었는데 1967년에 싱글 <Sensazion>을 차트에 올려 놓았고 데뷔앨범인 "Senza Orario Senza Bandiera"를 발표했으며 두번째 앨범 제작에 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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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ero Uno 레이블 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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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의 미발표 Live 곡들을담은 앨범으로 Ange의 초창기음악을 접할 수 있다.


 


 



 

프랑스
프랑스록계에 있어서 1969년은 매우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1970년대의 프랑스 프로그레시브 록계를 이끌어 갈 2대 그룹이 이 해에 탄생을 보기 때문이다. 그 하나가 키보드 주자들인 Decamps 형제를 주축으로 결성된 Ange이고, 다른 하나가 드러머 Christan Vander에 의해서 결정된 Magma이다.  당시 Ange의 결성은 프랑스 록계에 커다란 화제거리였었다. 결성된지 4개월 만에 Est Republicatin지에서 그들을 평가 하기를 "Le Premier(OpéraPop) Fransais Présenté Demain au Centre Cultural de la Présenté" (최초로 프랑스가 내놓을만한 진보적인 -오페라 팝- 중심문화의 묘목)이라고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Magama의 결성과 운명은 순탄치 못했었다. 그룹이 결성돤 후 40차례 이상의 잦은 멤버교체가 있었을 정도로 매우 불안정했으며 평론가들과 관중들에게 냉대를 받았었다. 하지만 Magma는 여기에 굽히지 않고 후에 실험적인 록그룹으로 커다란 명성을 얻어냈다.
  당시 프랑스의 록계는 영국과 미국을 모방한 재즈와 사이키델릭 록사운드 속에 그들의 전통적인 샹송을 섞는 이색적인 음악을 만들어 냈고, 다분히 실험적인 경향을 띠고 있었다.(다른 나라에 비해 프랑스의 록은 음침하고 강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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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록계의 수퍼그룹 Magma의 마스코트

 * 1969년 미국,영국,독일,이태리,프랑스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뚜렷한 특징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한다.
 1970
 
 1960년대 말에 탄생하기 시작한 세계 각처의 수많은 프로그레시브 그룹들은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연주력 향상, 녹음기술과 악기의 발달로 그들의 최전성기를 맞게 된다.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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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미국의 프로그레시브 팝 감각을 약간이나마 들을 수 있었던 N.Y. R'nRoll Emsemble,J.S Bach의 Brandenburg를편곡하여 연주했다.

미국의 록계에 있어 1970년은 다사다나한 한 해였다.
 Jimi Hendrix의 사망(9월 18일, 기타의 천재라 불리우던 그는 모국인 미국보다 영국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janis Joplin의 사망 (10월
 4일, 마지막 작품 "Pearl"을 남기고 록의 여왕은 사라 졌다) 등이 60년대 말 병폐문화(마약문화)의 비극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또한 하드록, 프로그레시브록 등의 영국음악 강세에 눌려 프로그레시브 부문은 말할 것도 없고 남부음악과 샌프란시스코 음악의 일부분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침체기였다.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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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 Palmer가 재적 했었던 Atomic Rooster의 데뷔앨범

1970년에 들어서면서 그동안 멤버들간의 분열을 보여오던 Beatles가 곧 해산할 것을 선언함으로써 영국 록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다 주었지만 하드록과 함께 프로그레시브 계열에선 활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Keith Emerson이 이끌었던 Nice는 그들의 마지막 앨범인 "Elegy"를 발표 했고 Carl Palmer가 재적했던 Atomic Rooster는 데뷔앨범을 발표했다. 또한 Greg Lake의 King Crimson에서의 마지막 목소리가 담긴 "In The Wake of Poseidon"이 발표됐으며 Emerson lake & Palmer가 결성되어 데뷔앨범을 발표했다.
 [##_'1L|bk56.jpg|width="178"_##]가 수록되어 있는 Curved Air의 데뷔 앨범 ' 했었다.? 참가 Jabson도 Eddi 재적했었고,후에 Monkman이 Francis 이그룹에는 Airconditioning?.>영국 뿐만 아니라 미국 등지의 여러 음악지에서 대호명을 받았던 Pink Floyd의 "Atom Heart Mother"가 발매됐고 Darry1 Way와 여성 보컬리스트 Sonja Kristina가 이끄는 실험성을 살린 진보그룹 Curved Air가 데뷔앨범 "Airconditioning"(Sky가 리바이벌 한 <Vivaldi> 수록)을 발표했다.
 Genessis가 악기를 강화, 프로그레시브 지향의 그룹으로 완전히  탈바꿈해서 <The Knite>가 수록된 걸작 - 두번째 앨범 "Trespass"를 발표했고, Yes 또한 연주력 향상으로 프로그레시브 지향의 두 번째 앨범 "Time And A Word"를 발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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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k Wakeman이 게스트로 참가했던 Strawbs의 Dragonfly

Strawbs는 Rick Wakeman을 게스트로 <The Vision of the lady of the lake>라는 대곡을 완성, 비로서 프로그레시브 영역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영국의 Jazz Progressive를 이끌어 왔던 Soft Machine은 "Third" 앨범을 발표했으며, 또한 Free Jazz의 묘미를 가득 풍겨주었던 Manfred Mann Chapter Three가 Volume Two  앨범을 발표했다.(대곡 "Happy Being Me"는 Free Jazz의 극치를 맛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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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ft Machine의

독일
 당시 독일의 록계 공통점은 미국, 영국의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영향과 실험적인 현대 음악의 계승으로 매우 복잡하고 난해한 음악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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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Ohr 레이블 산화의Pilz 레이블.회사의 상징인 버섯이 인상적이다.

Tangerine Dream은 대망의 데뷔앨범  "Electronic Meditation"은 Ohr 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했다. 그러나 Klaus Schulz는 결혼과 자신의 공부, Ash Ra Tempel의 가입 등등으로 그룹을 떠났고 그의 후임 으로 Agitation Free의 젊은 재즈 드러머 Christoph Franke를 가입 시켰다(Klaus Schulz는 베를린의 공과대학에서 독일문학, 심리학, 음악[실험적인 작곡법]등을 공부했다.
 Florian Fricke는 마야 고대문서의 이름을 그룹명으로 한 Popol Vuh를 결성했다.(Florian Fricke는 1959~1963년 사이에 뮌휀과 후라이브루크에서 음악을 공부하다가Electronic에 흥미를 가지고 그룹 결성을 꿈꾸어 왔었다.
 Music Express지에서 Amon Düül II는 "최고 인기 언더그라운드 그룹"과 Blues 부문 2위로 선정됐으며 두번째 앨범 "Yeti"는 "Album of the Year"로 선정됐다. 반면 Amon Düül I은 최후의 앨범 "Paradies Warts Düül을 발표했다. 사이키델릭 록을 지향하는 Guru Guru는 UFO라는 데뷔앨범을 발표 했다(Sounds지는 Guru Guru가 연주력이 향상되었으며 리듬이 진보적이라는 것을 중요시하면서 이들이 Cream과 매우 비슷한 스타일로 연주하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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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의 마지막 앨범

Can은 영화음악의 전문가들로서 성공을 보았으며 그들의 레코드 회사가 두번째 앨범인 "Sound Tracks"를 발표했다(이 앨범에는 "Dead Lock", "Cream","Mëdchen mit Gewalt", Deep End", "Bottom"의 주제곡을 담고 있다). Music Express지는 Can을 인기 언더그라운드 그룹부문 4위, 블루스 부문 3위로 선출하고 데뷔앨범 "Monster Movie"를 "Best Seller 6걸) 앨범으로 선정했다.
 그 외에도 실험적이면서 Free Jazz 스타일의 언더그라움드 그룹 Annexus Quam이 데뷔앨범을 발표했고, 30종류의 악기를 동원시키는 스케일 큰 그룹으로 정치색을 가미한 Floh De Cologne (1969년 데뷔)가 두번째 앨범 "Fliebband Babys Beat-Show"를 발표했고, Inga Rumpf가 주축이 된 Frumpy가 데뷔앨범 "All Will be Changed"를 내 놓았다. 그리고 5인조 그룹인 Sweet Smoke도 "Jast A Poke"란 앨범으로 데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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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ol Vuh. 왼쪽의 여성이 한국인 소프라노 가수 정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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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의 PFM


 



 


 



이태리
 당시 이태리의 록사운드는 클래식처럼 웅장하면서도 심오한 사운드가 주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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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nula 3의 리더였던 Alberto Radius의 솔로 앨범

1969년 Lucio Battist와 Mogol에 의해 발족됐던 Numero Uno레코드로부터 이태리의 본격화 록 그룹인 Formula 3가 데뷔앨범 "Dies Irae" (노한 날)을 발표 했다. 이태리의 수퍼 그룹 New Trolls는 앨범 "New trolls"와 최고 걸작앨범 "Concerto Grosso Per I"를 발표 했는데 "Concerto Grosso Per I"  는 Luis Enriquez Bacalor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의 도움으로 웅장하면서도 박력넘치는, 거기에 아름다움까지 함축한 훌륭한 작품이었다.(이 앨범은 영화 "La Vittima Designata"의 오리지날 사운드트랙 앨범이며 Jimi Hendrix를 위한 곡도 들어 있다).
 그밖에 II Balletto Di Bronzo가 심오한 데뷔앨범 "Sirio 2222"를 발표했고 키보드 주자 Giorgio Usai를 주축으로 한 Nuova Idea가 미완성한 "In The Beginning"이란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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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오한 음악을 펼치는 Il Balletto Di Bronzo

앨범을 발표했다.
 이태리의 베테런급 그룹인 Le Orme가 데뷔앨범 "Ad Glorian"과 두번째 앨범 "Láurora"를 발표한 이후 Philips로 이적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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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기 Gong


우리가 생각하던 기존 샹송에서 완전히 탈피한 획기적인 프랑스 록은 강력하면서도 그 속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멋이 숨쉬고 있다.
 Ange는 Est Republicain지에서 대호평을 받으면서 45차례의 간소한 순회공연을 마쳤다.(France pop music 誌 1970.11.28) 그들의 데뷔성공작 <General Machin>(Van Morrison의 <Gloria>와 비슷)을 비롯해서 여러 곡들이 기존 샹송의 인식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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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et Gong 철학을 창조해낸 Daevid Allen

정신적으로 Daevid Allen's Gong의 유일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 "Magick Brother"가 발표되었다(호주인인 Daevid Allen은 1961년 영국으로 건너가서 이듬해에 Robert Wyatt를 만났고 Canterbury Family 일원들과 Soft Machine은 프랑스 여행을 하게 되는데 이때 Daevid Allen은  Soft Machine을 떠나 프랑스의 유능한 뮤지션들과 새로운 그룹을 구상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Gong이란 그룹이다) 사실 Daevid Allen은 9인 편성(실제로는 15명 정도 였다)으로 앨범을 발표하고 끄룹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초반기의 Gong에 자신의 곡들을 주어 Project형식의 그룹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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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ke Hugg의 애절한 보컬이담겨 있는 Manfred Mann Chapter Three의 데뷔앨범



그 밖의 나라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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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륫을 부는 Focus의 리더 Thijs Van Leer와 기타리스트 Jan Akkerman


당시 Focus는 <Spoke The Lord Creator> 뒤늦게6번째 앨범인 "Ship of Memories"앨범에 수록 되었던 곡)을 작곡 했다(멜러디 부분은 리더인 Thijs Van Leer가 도맡았다). 그리고 드러머 Hans Eric Cleuver 대신 Pierre Van Der Linden이, 베이스 주자 Martin Dresden 대신에 Cyril Havermans가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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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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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의 키보드 주자를 포함, 총 6명의 뮤지션과 1명의 라이브 엔지니어로 구성된 Eela Craig, 이들은 모두 교사라는 것이 놀랍다.


T.V. 세션으로 만나게 된 여러명의 음악인들이 서로 같은 뜻을 지니고 Eela Craig라는 수퍼 그룹을 결성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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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19세기 천재 기타리스트를 보유한 록 트리오 그룹 November(Cream의 영향을 받은 그룹), 역시 하드 록 트리오인 Opus III가 등장 했다.
 또한 스웨덴을 대표하는 북구 전통파 재즈 록 그룹 Made in Sweden이 모습을 나타냈다.
 핀란드
에선 Wigwan이 두번째 앨범 "Tombstone Valentine"을, 덴마크에선 burnin Red Ivanhoe가 두번째 앨범을 각각 발표했다.

 
 
 
 
 
 

출처:http://gpr2425.hihome.com

Posted by 겨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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