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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PAPILLON OUVERTURE
2.PRIMO QUADRO (La Fuga)
3.SECONDO QUADRO (II mercato)
4.TERZO QUADRO (L'incontro)
5.QUARTO QUADRO (L'arresto)
6.QUINTO QUADRO (ll verdetto)
7.SESTO QUADRO (La trasformazione)
8.SETTIMO QUADRO (Corri nel mondo)  
9.
Devertimento
10.Patetica PARTE PRIMA
11.Patetica PARTE SECONDA
12.Patetica PARTE TERZA
13.Strutture
14.Tanto Amore

Latte E Miele의 두번째 앨범 「Papillon」
검정색, 보라색, 빨강색, 노란색 그리고 하얀색으로 단순하게 페인팅된 Latte E Miele의 Papillon!…… 그들 세명의 얼굴들이 나란하게 스케치되어 있는 이 예쁜 앨범쟈켓을 처음 만졌을 때의 느낌은 거칠게 표면처리된 앨범커버와 레코드 알맹이의 무거운 중량감 때문인지 더욱 친근감을 느낀다. Latte E Miele만이 느끼게 해주는 지적(知的)인 감성과 귀여운 음성이 담겨 있는 앨범커버에서부터 우리는 그들 음악에 대한 동경을 시작하게 되는 것 같다. 앨범을 펼치면 그 속에 그들의 순진한 모습을 담은 두장의 흑백사진과 공연모습을 담은 커다란 컬러사진이 담겨 있고, 가사와 함께 연필로 그려 놓은 고뇌에찬 인간들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그들이 연필스케치로 표현한 “고뇌하는 인간들”의 손과 손가락들은 데뷔 앨범의 커버위에 우뚝 서있는 “예수의 손”과 많이 닮아 있다. 입을 꼭 다물고 있는 앞장의 인간들 보다는 울부짖고, 웃고있는 뒷면의 그림들이 우리들에게 더욱 많은 생각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앨범의 제목이 “Papillon((빠삐용)”이라는 점에서 해설자는 이 앨범의 가사를 해석하기 이전까지는 앙리 샤리에르(Henri Charriere)의 자서전적인 소설과 프랭크린 샤프너(Franklin J. Schaffner) 감독과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과 더스틴 호프만(Dustin Hoffman) 주연의 영화로 유명한 빠삐용(영화도 Latte E Miele의 앨범이 제작된 1973년에 개봉되었다)을 연상했었다. 그러나 가사의 내용은 Papillon이라는 꼭두각시(인형)를 주인공으로 하는 단편의 우화(愚話)를 테마로 하고 있다. Latte E Miele의 멤버들이 Luna Park(달공원)에서 보았던 인형극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낸 이 작품은, 후에 7부작으로 재구성되어 발레 댄서들과 여성 코러스를 대동한 거대한 연극작품으로까지 계획되어졌다.
대작(大作) 「Passio Secundum Mattheum」을 내놓은 후, 공연무대에서의(Passio Secundum Mattheum 해설지 참고) 쓴맛을 맛보았던 Latte E Miele는 두번째 앨범 「Papillon」의 제작에 있어서는 Live를 행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짧은 테마들을 엮는 방법을 채택했다. 이 방법은 (EP-Single)을 제작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레코드사측이나 그들에게는 상업적으로 가는 지름길을 보여주었다.

앨범 「Papillon」은 크게 네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서곡을 제외하고 모두 7개 파트로 이루어진, 앞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20분에 달하는 타이틀곡 (Papillon)과 수록곡으로 계획되지 않았었던 (Divertimento)가 우리들의 귀에 익숙한 Classic 작품들을 테마로한(3부작으로 이루어진) 또하나의 조곡 (Patetica) 그리고 실험적인 Free Jazz 스타일의 곡 (Strutture)로 구성되어 있다.
대곡 (Papillon)을 통해서 Latte E Miele는 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음악적 영상을 묘사하는 다양한 음악소재들을 제시하고 있다. Keith Emerson의 Nice시대와 초창기 Emerson Lake & Palmer 시대의 Organ 연주를 연상시키는 서곡 부분은 여성코러스의 도입과 함께 신선함을 불러 일으키며 앞으로 변화무쌍하게 전개될 (Papillon)을 예고하고 있다. 곧바로, 이 인형극의 음악을 주도하게 될 주요 멜로디가 등장하는데, 이태리 영화 “La Strada(길)”의 한장면을 연상시키는, 서커스풍의 코믹하면서도 무거운 느낌을 주는 취주악기와 브라스와 혼연주가 앞부분에 장식되고 그리고 마르첼로 쟌까를로 델라까사(Marcello Giancarlo Dellacasa)의 잔잔하고 아름다운 Acoustic Guitar 연주와 맑고 독특한 보컬이 이어진다. 이 부분이 무대의 1막 1장에 해당되는 “Primoquadro(첫번째 장면-La Fuga)”이다.
“서커스 천막속에서 돌고 있네 빠삐용! 커다란 검은 눈에 삐에로처럼 하얀 옷을 차려입고서, 온 도시를 즐겁게 해주러 가고 있네, 해가 그의 얼굴을 비출 때 웃고 있는 사람들… (중략)” 이러한 가사로 시작된다.
Emerson Lake & Palmer의 Greg Lake와 같은 역할을 해내고 있는 마르첼로의 인상적인 솔로연주와 보컬은 이후에도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 앞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등장하고 있다. 그의 보컬은 이 우화의 스토리를 전개시키는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이어서 데뷔 앨범만큼은 웅장하지는 않지만 올리비에로라까니아(Oliviero Lacagnia)의 바하풍의 오르간 연주가 흐르고 그의 피아노와 오르간과 더불어 알피오 비딴싸(Alfio Vitanza)의 Rock적인 드러밍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다. 하늘을 날으듯 마르첼로의 바이올린도 곧 합세하여 세명 멤버 전원이 함께 연주하는 복잡한 Passage가 잠시 전개된다. 올리비에로의 오르간 연주가 재등장하고 제2장 “Secondo quadro(시장)”가 한차례 오버더빙(뒷부분)된 마르첼로의 목소리로 나타난다.
“모든 인종이 모여드는 커다란 광장에 이르러서 나는 당신의 향기를 느끼게 됩니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독일의 Triumvirat와 영국의 EL & P를 많이 닮아있는, 세명의 전멤버가 펼치는 독일,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German-British Progressive Rock) 풍의 연주가 약 3분간 계속된다(후반부에서는, 서곡에서 잠시 나타났었던 여성 코러스의 속삭임이 재도입되고 있다).
제3장 세번째 장면 “Terzo quadro(만남)”은 하나의 비극이 시작되는 빠삐용과 소녀가 만나는 극적인 부분이다. 극적인 이 우화의 발단부분으로 음악적으로 가장 아름답게, 표현된 부분이다. Latte E Miele도 이 부분을 가장 중요시 여기고 그들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총집중시키고 있다. 이 부분을 통해서 우리는 Latte E Miele의 음악적 재능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가장 길게 묘사되고 있는 빠삐용과 소녀와의 “만남”은 음악적으로도 가장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다. 마르첼로의 보컬과 더불어 다소 긴장된 귀여운 소녀의 목소리가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꼬마소녀의 두 눈동자는 빠삐용이 속삭이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고, 그 소녀는 이렇게 말할거야… 나는 외로워 나와 함께 웃고 즐길 친구를 찾고 있어요!… 라고, 지금 빠삐용의 마음속에서는 전에 느낄 수 없었던 설레임에 가득차게 되고 그의 육체속에서는 마음을 두들기는, 소녀를 향해 일어나는 사랑의 마음이…” 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만남”은 빠삐용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서정적인 곡 (Rimani Nella Mia Vita : 너는 내 인생에 남아)라는 서정적이고 애처로운 곡을 포용하고 있다. 피아노, 오르간, 그리고 멜로트론의 잔잔하고 부드러운 멜로디로 시작, 전형적인 이태리 Canzone 스타일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곡으로, 지금까지 마르첼로가 들려주었던 고정적인 보컬에서 벗어난 자유스러운 분위기의 노래이다. “나와 함께 노니는 작은 소녀는 너-빠삐용처럼 외롭다… 난 너를 통해 인생을 만나게 된거야… 너는 마치 꿈같고, 사랑에 빠진 꽃을 감동시킬 수 있는 인생처럼 느껴진단다…(중략)”라는 가사로 되어 있다.
짝사랑에 의한 갈등을 묘사한 “Quarto quadro(멈춤)” 네번째 장면은 마르첼로의 고정된 보컬들로 다시 돌아와 사건을 설명해주고 나서 곧 주인공 빠삐용의 심리변화를 오르간과 바이올린, 드럼 그리고 Guitar등의 강렬한 복합음을 이용, 두차례에 걸쳐 드라마틱하게 표현하고 있다(신생그룹 Devil Doll의 Eliogabalus에서 재도입 되었던 리듬이 흐른다). “즐거움도 잠깐뿐, 싫증이 나버린 소녀는 가야만 한다고 빠삐용에게 말했다… 그러나 빠삐용은 홀로 남기가 싫어, 울면서 그녀를 붙잡는다… 주위의 사람들은 침묵을 지키며 빠삐용을 지켜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 빠삐용이 소녀에게 어떤 나쁜 짓을 할런지 모른다고…(사실, 아무런 나쁜짓도 하지 않았는데…)”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폭풍우와 같은 “멈춤” 부분이 끝나면 “Quinto quadro(다섯번째) 장면-판정” 부분이 엄숙하고 가라앉은 분위기로 다가온다. 올리비에로의 오르간 반주와 함께 마르첼로의 보컬도 가장 무겁고 슬픔에 젖어 있다. “빠삐용에게 재판이 행해지고, 그는 사형을 선고 받는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그의 육체는 공포에 떨고 있다…, 그리고 오랜 침묵이 흐른다…”라는 내용이 마르첼로의 슬픈 보컬로 표현된다. 잠시후 그룹 Celeste의 명곡 “Favole Antiche(고대전설들)”를 연상시키는 잔잔하고 평온한 분위기의 피아노 선율과 함께 성냥에 불을 당기고, 불이 타오르는 효과음을 삽입한 아름다운 선율이 흐른다. 피아노 솔로 반주위에 “단지, 아이들만이 울고 있고, 사형의 집행인은 큰칼을 내리쳐 꼭두각시-빠삐용의 머리를…”이라는 장면묘사가 마르첼로의 애처로운 보컬로 소개되고 곧바로 Rock-Opera 스타일의 “Sesto quadro(여섯번째 장면)-변화”가 이어진다. 이곡에서는 극적인 장면묘사를 강조하기 위해 짧고 상반되는 분위기의 여러 작은 악절들을 도입시키고 있다.
구성은 ① 빠른 템포의 Rock적인 분위기 → ② 신비스러움을 표출하기 위한 휘파람 소리와 같은 Synthesizer로 만들어 내는 효과음 → ③ ①의 짧은 반복음 → ④ ②의 반복음 → ⑤ 웅장한 오케스트럴편곡으로 이루어진 Classic에 가까운 장엄한 Symphonic Rock → ⑥ 오래된 Musical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여성 코러스를 동반한 대단원(이 앨범의 주요 멜로디 라인을 따르고 있는 여성 코러스는 극적인 “변화”의 내용을 담고 있다 : “그런데 그의 육체가 되살아 난다… 얼굴은 우리들 처럼 웃고 있으며… 한 소년이 탄생하기 시작한다”)의 순으로 되어있다. 마지막 장면은 인간으로 소생한 빠삐용을 노래한 “너는 세상을 뛰어 다니자”라는 곡이다. “이제 사람들은 기뻐할테고 광장도 붐비게 될테지… 그리고 세상사람들 틈에서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소년이 존재하게 되겠지…”라는 내용의 Settimo quadro(일곱번째 장면)는 여성 코러스를 배경으로 마르첼로의 힘을 되찾은 보컬로 일시 끝을 맺고, 잠시 공백을 갖은 후 Emerson Lake & Palmer 스타일의 짧은 Progressive Rock으로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두번째곡인 (Divertimento(희유곡:嬉遊曲))는 이 앨범이 제작되기 전까지, 수록될 계획이 전혀 없었던 곡이었다. Latte E Miele는 그들의 두번째 앨범을 3부작으로 엮을 계획이었으나, LP의 한면을 가득 채울 것으로 예상되었던 타이틀곡이 의외로 짧아져, 2분 안밖의 즉흥적인 Jazz로 변형된 희유곡을 이 앨범에 수록하게 된다. 3부작으로 구성된 또하나의 조곡 (Patetica (비장한 곡조))는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고전들을 Rock과 Jazz로 변형시킨 전형적인 영국풍의 Progressive Rock 작품이다. “Parte Prima-첫번째 부분”은 많은 Progressive Rock 그룹들이 Rock으로 즐겨 편곡해서 들려 주었던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의 제1악장으로 시작된다. 그들의 코믹한 Rock적인 편곡은 Emerson Lake & Palmer를 능가하고 있다.

두번째 부분 “Parte Seconda”는 우리에게 역시 잘 알려진 비발디의 사계로 시작, 각 멤버들의 눈부신 솔로연주-역량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Progressive Rock 넘버이다. 클래식에 기초한 마르첼로의 Violin Solo가 매우 돋보이고, 올리비에로의 연주는 Keith Emerson의 오르간연주와 꼭 닮아 있다. 또한 박력 넘치는 알피오의 드럼 솔로도 주목할만 하다. 마르첼로의 여러 차례에 걸쳐 오버더빙된 Acoustic Guitar의 아름다운 멜로디로 전개되는 “Parte Terza-세번째 부분”은 부담없이 들을 수 있는 평온한 분위기의 작품이다. 멜로트론 음향이 저변에 깔리고 후반부로 가면서 여러 악기들의 음향이 잘 조화되어 있다. 존재하지 않는 여인을 흠모하는 한 사나이에 관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담고 있다 :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당신에게 나를 위한 하나의 태양(사랑)이 만들어지지만 곧 그 태양(사랑)은 도둑맞아 버립니다… 당신의 움직임을 듣고 나는 당신을 찾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빗물을 없앨 수 있는 흰구름… 당신의 모습은 내 마음속에만 남습니다.”

이 앨범의 마지막곡인 (Papillon)은 데뷔작에서 들려주었던 웅장한 Orchestration이 결여되어 있지만, Latte E Miele의 이 작품으로부터 다소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라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작품이다. Latte E Miele의 두번째 앨범 「Papillon」은 데뷔작에서 들려주었던 웅장한 Orchestration이 결여되어 있지만, Latte E Miele 각 멤버들의 악기들이 최대한 이용되어 그들의 솔로 연주가 더욱 강조되고 있다. 특히, 마르첼로의 Guitar Work과 올리비에로의 Keybords Work은 Keith Emerson의 것을 닮아 있다. Italian Rock이 British Rock에 커다란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이태리의 많은 Rock Musician들은 이 사실을 부정해 왔다. 그러나 Latte E Miele는 그들의 두번째 작품 「Papillon」이 발표되기전 이태리 음악전문 주간지 Ciao 2001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그들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이태리의 모든 그룹들은 영국의 것을 복제하지 않을려고 노력합니다만, 아뭏든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태리 그룹들이 영국 그룹들의 음악적 전통을 습득해 왔고, 때문에 이태리 그룹들이 영국의 정신적 영향권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아뭏든, 우리 이태리 그룹보다 연주력이 뛰어나지 못한 영국 그룹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영국 그룹이라는 이유때문에 그들의 음악만을 감상하는, 고집하는, 몇몇 잘못된 오류들이 이태리 음악감상자들로 부터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부채질하는 중요한 요인들 : 연주자들, 메니저들, 레코드해설자, 기자들 등등…으로 부터 떠나서 근본적으로 음악과 연주를 논할 수 있는 장(場)을 대중들은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말한 것처럼, 그들의 음악은 영국의 것과 많이 닮아 있다. 그러나 이 해설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들의 음악이 영국 정상의 Super Group들의 음악에 못지않게 매우 훌륭하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Latte E Miele의 음악이 더 우수하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본 CD에는 이태리어 버젼의 (Papillon)을 영어버젼으로 추가 수록하고 있다.

글/ 성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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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quile e scoiattoli
2. vacche sacre
3. menestrello
4. opera 21
5. pavana

LATTE E MIELE aquile e scoiatto

독수리와 다람쥐...라떼 에 미엘레의 제 3집 앨범입니다.
1,2집에 비해 무척 가볍고 따뜻한 느낌을 줍니다. 물론 좋게 평가해보자면 그렇단 거구요, 사실상 전작들에 비한다면 많 이 뒤떨어지는게 사실입니다만...자신들의 에너지를 완전히 소모해버린건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나름대로의 매력을 가 지고 있는 앨범이라 하겠습니다.
첫곡 aquile e scoiatto...타이틀곡입니다... 커다란 변화가 한가지... 남성하모니가 등장한다는 거죠... 최고명작인 1집 에서는 보컬이 거의 없다시피..아니 오히려 가끔 등장하는 나레이션마저 성**씨의 표현을 빌자면 물흐르는듯한 연주를 끊는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이죠. 보컬이 많이 강화된 2집에 서도 하모니의 등장은 거의 없었다고 기억됩니다...
3집의 본격적인 남성하모니는 (남성용세제?) 뉴트롤즈의 음 악을 듣는듯한 착각이 드는데요...사실상 재킷 뒷면을 보면 Vittorio De Scalzi의 이름이 보입니다. Registrazione를 담 당했다는데...제작이란 말인가요? 쩝... 어쨌거나 자꾸만 떠 오르는 전작들의 감동을 배재한다면 산뜻한 보컬과 연주를 느낄수 있는 곡입니다....
두번째곡은..음..제가듣기에 제일 거슬린 곡이라..통과...
이어지는 Merestrello ... 역시 보컬화음이 배경으로 등장하 고 휘파람소리가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곡입니다. 갑자기 둔 탁한 드럼이 아름다운 세계에 난입해 세상을 어지럽히고, 고통 스런 신음소리가 난무합니다...가사를 이해할수 없어 안타깝지만 이어서 고통은 사라지고 앞부분과 같은 멜로디로 끝을 맺습니다.

다음곡은 경쾌한 건반과 드럼으로 시작되는 (다소 가볍지만) 한 편의 교향시입니다. 베에토벤의 21번 4악장에 기초했다는군요.
쩝...21번이 무슨곡인지 모르겠군요...클래식엔 깜깜이라...
아시는분은 좀 알려주심 감사하겠습니다.
암튼 이 앨범에서 가장 사랑스런 곡이었습니다..제겐..
뒷면가득히 담긴 Pavana는 무척 기대되는 곡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작부분의 느낌은 본연의 모습이 사라진 초라한 느낌이어서 실 망하지 않을수 없었는데요... 하지만 다행히도 중반부에 이르러 긴장감감도는 키보드의 똑똑 끊어지는듯한 연주와 서정적인 독주, 그리고 어커스틱 기타연주가 꺼져가는 촛불의 최후의 화려함을 반짝이는 듯합니다.
이 앨범을 끝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을 엿보게해줬던 Latte e miele는 사라집니다....존속됐던 동명의, 동일인들에 의한 음악들은 *데 우유나 *서 꿀차처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룹으로 전락했죠...
퇴보는 슬픔입니다...


라떼 에 미엘레의 1집에서도 상당부분 코러스가 등장하네요..
방금 들어보고 확인...쩝..
다만 차이가있다면 1집은 웅장한 오페라의 느낌이라면 3집의 그것은 발랄한 느낌의 뉴트롤즈나 비틀즈풍이 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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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앨범이 하나 있습니다. 단지 [듣기 편한 음악], [대중적인 음악]을 담았다는 이유 만으로 과소평가 받는 앨범이 여기에 있습니다.

아마 1991년에 발매된 라떼에 미엘레의 아트록 역사상 최고 걸작중 하나로 불리우는 Passio Secundum Mattheum이 국내에서 10000장이라는 -지금으로써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판매고를 올렸던 것을 기억하실겁니다. 지금 시완 레코드가 아이템당 500장 정도를 찍고, 판매부진을 면치 못하는 것을 상기시켜볼때... 그 당시 라떼에 미엘레의 지지도는 본국 이태리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확고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 2집인 Papillon, 3집 Aquile E Scolattoli는 정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한 실패를 했답니다.

(이는 우리나라 음악 팬들의 고질적인 병인 [유행 따라 잡기]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한 동안 프로그레시브록 붐이 불때는 미친듯이 좋아하다가, 조금만 유행이 바뀌면 과감히 차버리고 새로운 음악으로 괘도 수정을 하는... 음반 업계도 마찬가지죠...
한때 째즈, 탱고 선풍이 불어서 많은 컴파일래이션 앨범이 나왔지만 지금은 더이상 그러한 앨범들이 각광을 받지 못하고 있지요. 또 언제는 얼터가 유행이더니 금새 섹스 피스톨스를 앞세운 펑크, 이제는 테크노까지... 물론 이러한 변화는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것이지만, 일명 메니어라는 층이 자기 주체도 없이 시류에 떠밀려서 그저 [아는 척만 할려고] 음악을 듣는다는게 문제죠. 누가 [섹스 피스톨스가 뭐하는 밴드냐?] 라고 물러보면 소위 매니어라는 작자들은 [야... 넌 그것도 모르니???
하긴 너가 펑크에 대해서 뭘 알겠냐..] 하면서 여기 저기서 주워 담은 잡다한, 단편적인 지식들을 주저리 주저리 떠들기 시작합니다. 겉으로 과시하기 위해서 듣는 음악은 사라져야 합니다.)

그나마 2집은 현재 씨디로 재발매 되어서 다시 팬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만 3집은 93년도에 씨디와 엘피로 소량 발매되어서 구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일본에서도 작년에 Papillon을 저렴한 가격에 다시 찍었지만, 3집은 상당히 구하기 힘든걸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대형 레코드점에서 몇장 놓여 있는걸 봤습니다.
먼지만 푹푹 쌓인체로... 누가 이 불쌍한 씨디들을 구해주실분 없나요?


음악을 듣는데 있어서 [편견]은 최악의 마음가짐 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편견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음악을 자유롭게 듣는데 있어서 최대 관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한 뮤지션, 밴드의 음악적 [변화]가 팬들에게는 악성 엘러지인것 같습니다. 누구 누구가 얼터너티브로, 테크노로 변심을 했다는둥의 잡담을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라서 성장하고 늙고 죽을때까지의... 이 모든 과정을 뮤지션들, 또한 그들의 음악 역시 똑같이 밟게 됩니다. 즉, 모든 음악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마치 번데기가 아름다운 나비로, 다시 나비가 흙으로...

아마 라떼에 미엘레의 변화에 상당히 실망을 하셨을 팬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1집에서 들려주었던 엄숙하고 웅장한 마테 수난곡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경건함과 절제의 마름다움, papillon에서 들려 주었던 동화적이며 동시에 우울한 정서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셨던 분들은 3집 [독수리와 다람쥐]를 듣고 크게 실망을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3집은 이태리 아트록이 무너져 가는 76년에 만들어진 앨범일 뿐만 아니라, 오리지날 멤버중에서 단지 드러머 만을 주축으로 해서 재 결성되었기 때문에 그 전 사운드를 가대한다는 것은 오산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음악이 그 전보다 별루다' 라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변화]를 했을 뿐입니다. 물론 아트록 팬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에 평작내지는 졸작으로까지 몰릴 수도 있는 작품이지만 음악만을 놓고 볼때... 상당히 잘 다듬어진 사운드에서 그들의 노련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라떼에 미엘레라고 해서 대중 음악을 하지 말란 법이 있습니까?

전체적으로 가사와 멜로디를 중요시 했지만 그 이전 사운드를 들을 수 없는것은 아닙니다. 마지막 곡인 pavana는 23분에 걸친 대곡으로 마치 papillon 앨범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자주 등장합니다.
우선 첫 곡인 aquile e scoiattoli 는 이태리의 matia barzar를 연상시키는 매우 편한 곡입니다. 보컬은 매우 안정적이며 허밍으로 다가오는 코러스가 매력적이며, 재미있는 키보드 웍, 점점 고조되는 곡 구조가 돋보입니다.
두 번째곡인 vacche sacre 는 전형적인 이태리 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중간 부분의 독특한 드럼과 플룻의 연주가 돋보입니다. 뒷 부분의 테잎을 늘리는 효과는 상당히 특이합니다.
세 번째 곡은 마치 핑크 플로이드의 중반기 우울한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해설지에서도 성 시완 님 역시 핑크 플로이드의 사운드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하셨는데... 저두 동감하는 하고 있습니다. 특히 2분대를 넘어서는 순간 에코를 넣은 데이빗 길모어 풍의 기타 사운드는 흡사 meddle, the dark side of the moon 의 any colour you like를 연상시킵니다. 또한 중반부의 터질듯한 보컬 이펙트는 careful with that axe, eugene에서의 로저 와터스를 연상시킵니다.
전체적으로 키보드 웍 역시 핑크 플로이드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합니다.
opera 21은 베토벤의 21번 4악장을 그대로 연주해주는 곡입니다. 리떼에 미엘레는 이 전에도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디 마이너를 라이브에서 연주한 적이 있으며, papillon 에서도 patetica (비장한 조곡) 에서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비발디의 사계 등을 편곡한 적이 있습니다.
상당히 ELP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23분에 걸친 대작 pavana가 이어집니다. 초반부의 스산한 분위기에서 테잎 늘리기 이펙트를 다시 한번 들을 수 있습니다. 상당히 papillon에서의 분위기를 낼려고 노력한 흔적이 여기 저기서 나타납니다. 째지(jazz)한 분위기의 - 또한 때때로 데이빗 길모어적인 - 기타 사운드가 나타납니다. 또한 키보드 웍은 키스 엠머슨의 남성적으며 공격적인 면과 예스의 패트릭 모라즈의 여성적이며 섬세한 면을 모두 겸비한 상당히 우수한 양질의 연주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여러대의 키보드가 돋보이는 상당한 역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치 패트릭 모라즈가 참여했던 refugee의 앨범에 넣으면 딱 좋을듯한 그런 곡입니다.
언제 들어도 감동적인 신선한 분위기를 제공해 줍니다.

라떼에 미엘레... 국내 아트록 팬들에게는 남다른 이름입니다. ELP가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 되기도 이전에... 아니 영국의 슈퍼 아트록 그룹들 조차 제대로 소개 되기도 이전에... 국내에 소개되어 [아트록이란 바로 이런것이다]를 가르켜준 라떼에 미엘레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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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uile E Scoiattoli Vacche Sacre Menes Sacre Opera 21 Pavana
LATTE E MIELE - AQUILE E SCOLATTOLI LATTE E MIELE의 역사 LATTE E MIELE는 1970년 이태리 제노바에서 결성되었다. 멤버는 올리비에로 라까니나(Oliviero Lacapnia, keyboards vocal). 알휘오 비딴싸(Alfio Vitanza: drums flute, percussions)그리고 마르첼로 잔깐를로 델라까사(Marcello Giancarlo Delbrasa: guitar, bass, vocal)이렇게 Emerson Lake & Parmer형태의 3인조 그룹으로 이들은이태리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들의 등용문 이라 할 수 있는 'Festiver Pop Di Villa Pamphili(빰빌리 마을에서 개최되었던 팝 페스티벌 :Quella Vecchia Locanda등이 데뷰했었던 유명한 페스티벌)에서 무대 데뷰를 가졌다.(1972) 놀라운 것은 멤버 전원이 틴에이저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중 드러머인 알휘오 비딴싸는 그룹 결성 당시 16세의 소년이었다.

그들은 이태리 Polydor사로부터 음악성을 크게 인정받고 1972년 한해동안 데뷰앨범을 제작하게 되는 데, 당시 이태리 Rock계의 움직임에 다소 무감각해 왔던 Polydor레코드사는 의외로 LATTE E MIELE를 위해 강력한 프로모트와 거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LATTE E MIELE는 성서로부터 발췌한 자신들의 그룹명 '젖과 꿀"(다른 뜻으로 포립된 생크림이란 뜻도 있다)과 걸맞게 데뷰작도 성서의 마태복음서에 의한 예수의 수냔극을 모티브로 하나의 거대한 Rock opera를 완성시킨다. 당시 전유럽의 록계에 유행하던 클래식과 록과의 융합이라는 조류에 편승 이태리인들의 독특한 기질을 불어넣어 탄생시킨 그들의 데뷰작 'Passio Secundum Mattheum은 Progressive Rock계에 지금까지도 시대를 초월한 명작, 전설적인 걸작으로 남아있다.

영국 그룹 Van Der Graaf Generator의 이태리 공연시 오프닝 밴드로 등장탬었던 LATTE E MIELE는 공연 무대에서 그들의 데뷰작을 연주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스튜디오에서 정교하게 만들어 졌던 복잡하고 회려하고 또한 웅장했던 사운드를 세명의 젊은 뮤지션들은 도저히 무대에서 재현할 수가 없었고 따라서 그들의 무대에 대한 음악평도 결코 좋을 리 없었다. 한마디로 그들의 데뷰작은 라이브로 완벽하게 재현시키기에는 불가능한 작품이었다.

이렇게 한차례 무대공연의 시행착오를 겪은 Latte E Miele는 곧 두번째 앨범을 제작하게 되는데, 이작품은 의도적으로 무대에 올려질 것을 예상하고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앨범 구성상 EL&P의 초기 작품들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 이들의 두번째 앨범 "Papillon"은 인형극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데뷰작보다 연주력에 있어서는 세련미와 향상된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나, 데뷰앨범에서 들을 수있었던 웅장함은 결여되어 있다.

1973년 9월 두번쩌 앨범의 녹음을 마친 Latte E Miele는 두장의 싱글을 발표히편서 1974년까지 적극 적인 활동을 보이다가 밀려들어오는 팝 뮤직의 급류에 휩쓸려 분열되고, 마침내 해산상태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1976년 오리지녈 멤버였던 타악기 주자 Alfio Vitanza에 의하여 새로운 Latte E Miele가 탄생 하게 된다. Alfio Vitanza(percussions, 12-string guitar)와 함께 Latte E Miele에 합류하게 된 멤버들은 마씨모 고리(Massimo Gori : bass, acoustic & electric guitar, vocal),루치아노 뽄티니(Luciano Pdti ni: keyboards vocal).그리고 미모 다미아니 (Mimmo Damiani: keyboards, guitar, vocal)이렇게 세명의 새로운 멤버들이었다.

신생 Latte E Miele는 New Trolls의 리더 비토리오 데 스칼시 (Vittor De Scalzi)의 협력을 얻어 Fonit Cetra 산하의 Magma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Aquile E Scoiattoli(독수리와 다람쥐)"라는 앨범을 제작하게 된다.

4인조로 재편성된 Latte E Miele는 예전의 고전적인 음악스타일에서 벗어나 보다 대중적인 음악세계를 펼치게 된다. Twin Keyboards를 앞세우고 있지만 예전 Oliviero Lacapnia의 역랑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듯싶다. 물론 베에토벤의 작품 제21번 4악장을 기반으로한 'opera 21라는 곡 과 뒷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Pavama는 곡에서 예전 Latte E Miele의 음악적 맥을 어렵게 찾을 수 있다. 그후 신생 Latte E Miele는 새로운 이름 Latte E Miele Special이라는 그룹명으로 1980년까지 여러장의 싱글들을 남겼다. AQUILE E SCOLATTOLI Latte E Miele의 데뷰앨범과 두번째앨범은 이미 Si-Wan 2000 Series를 통해 국내 라이센스로 소개된 바있다. 이번에 소개되는 세번째 앨범으로 Latte E Miele의 모든 앨범이 국내에 라이센스화 되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 한국은 본국 이태리와 일본에 이어 그들의 전앨범을 발매한 세번쩨 국가가 되었다. 이태리 본국에서도 초창기 두장의 앨범은 이태리 PolyCram이 그리고 마지막 앨범은 이태리 Grog가 RCM를 통해서 발매되었고, 일본의 경우 2매는 지금은 문을 닫아버린 Edison 사로부터 그리고 세번째 앨범은 King 레코드사로부터 발매되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두나라와는 달리, 한 회사가 모든 앨범을 발매하는 행운을 얻게된 것이다.

Latte E Miele 데뷰앨범이 국내에 발매된 1991년, 국내음악시장의 상황은 일반적인 Progressive Rock 그룹들의 앨범조차도 거의 소개되지 않고 있었던 때였다. 따라서 Passio Secundum Matteum의 등장은 많은 음악 애호가들에게 충격을 던져 주었고, 아마도 그들의 갈증을 시원스럽게 풀어 줄 수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이 음반의 판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10,000장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지금 발매되는 Latte E Miele 세번째 앨범이자 최후의 앨범인 'Aquile E Scoiattoli'는 국내 최초로 CD화되는 Latte E Miele의 앨범이다. 앞의 두 앨범과 비교해 볼때 본작은 실험성보다는 대중성과 상업적인 면을 추구하고 있는 앨범이다. 이 앨범이 발표되었던 1976년 이태리 음악계의 상황을 살펴보면 이들이 왜 대중성 을 추구해야만 했었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이태리 Progressive Rock계는 물락해 가고 있었고, 그 누구도 이러한 음악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과거의 음악적 방향을 수정하고, 현대인들이 부담없이 즐겨 들을 수 있는 앨범을 제작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Latte E Miele가 이 앨범으로써 지난시절의 음악지향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이 앨범의 후반부를 장식하고 있는 'Opera 21'과 대곡 'Pavana'에서 우리는 과거 Latte E Miele와 음악적 맥을 잇고 있는 끊을 수 없는 매우 질긴 생명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뷰앨범과 두번째 작품을 접했던 경험자라면 이 앨범의 첫 곡이자 타이틀곡은 적지않은 충격을 던져준다. 고전적인 Latte E Miele의 사운드는 전혀 남아있지 않다. 악기 구성이 현대화되었기 때문에 옛 사운드와는 전혀 다르다. 그러나 매우 신선하다. 이 곡은 신생 Latte E Miele를 상징하는 곡으로 달콤한 보컬과 멤버들의 경쾌한 코러스가 이태리 그룹 Acqua Fragile를 연상시킨다. 두번째 곡 'Vacche Sacre'는 Lucio Battisti의 중반기 작품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PoP넘버이다. 그러나 후반부에 도입되고 있는 멤버들의 후렴구와 Alfio Vitanza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제공되고 있는 드럼의 싱코페이션 효과와 테이프가 늘어지며 정지해버리는 Effect는 오래기억에남는다.

세번째 곡은 Mauro Pelosi나 Cico그리고 Angelo Branduardi의 팬이라면 어쩔 수 없이 매혹되어 버리는 몽환적인 작품이다. 애처러운 바이올린 연주위에 아름다운 보컬과 코러스 그리고 EL&P의 From the Berinnine에서처럼 우리들의 귀를 간지럽게 하는 기묘한 Synthgizer음향등이 초반부에서 우리를 비틀거리게 한다. 그 이후 Electric Guitar와 Twin Keyboards의 날카로운 펀치에 우리들을 K.O시키는 곡이다.
이 곡에서 'Pink Floyd sound의 느낌을 받았다면 내 귀가 잘뭇된 것일까? 라고 반문해 본다. 네번째 곡은 Beethoven의 작품 제 21번 제 4악장을 그대로 편곡한 경쾌하고 발랄한 연주곡이다. 2대의 신세사이져와 드럼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웅장한 사운드를 만들어 내고 있다. 후반부의 스산한 바람소리와 드라마틱한 Rock적인 전갠가 없었다면 이 연주는 크래식 그 자체이었을 것이다.

원래, 레코드의 한면에 가득 담겨 있는 마지막 곡이자 대곡인 'Pavana'는 16세기경의 중세 무용곡"을 제목으로 담고 있지만 전위적인 분위기로 시작, 마치 한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드라마틱한 작품이다. 과거의 Latte E Miele의 멕을 잇는 작품으로 그들의 두번째 앨범 "Papillon"과 곡 구성이 유사하다. Latte E Miele만이 독톡한 오르간연주를만끽할수 있는작품이다.

글.성시완

Posted by 겨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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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hot-womens2008.com/pv/big-head-dog BlogIcon big head dog 2008.03.13 03: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심을 끌. 너가 동일할 좋을 지점을 다시 배치할 것 을 나는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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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TE E MIELE(젖과 꿀)의 PASSIO SECUNDUM MATTHEUM(마태수난극)

이탈리아 락음악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LATTE E MIELE(젖과 꿀)의 PASSIO SECUNDUM MATTHEUM(마태수난극) 입니다.
이 음악도 저번에 소개드린 YS와 같이 하나의 주재를 12곡으로 표현한
CONCEPT 앨범으로 마태가 전하는 그리스도의 수난극 즉 신약편에 있는
유다의 배반에서 그리스도의 처형과 부활을 표현한 음악으로
종교음악에서부터 락,재즈까지 모든 음악을 총채적으로 표출한명반입니다.

수록곡은
1.INTRODUZIONE(도입)
2.IL GIORNO DEGLI AZZIMI
3.ULTIMA CENA(최후의 만찬)
4.GETZEMANI
5.IL PROCESSO
6.I TESTIMONI 1
7.I TESTIMONI 2
8.IL PIANTO(눈물)
9.GIUDA
10.IL REI DEI GIUDEI(유다의 왕)
11.IL CALVARIO
12.IL DONO DELLA VITA(삶의 주인 ; 부활)

신비한 느낌의 도입부를 시작으로 많은 형태의 연주를 접할수 있는데 한곡한곡들이 모두
뛰어난 구성과 연주력으로 우리의 귀를 만족시킵니다.
특히 11번째곡 IL CALVARIO는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모습을
무거운 4박자의 드럼으로 표현했고,이러한 모습에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괴로워하는
인간들을 혼성코러스와 ELECTRIC GUITAR로 표현한 이음반의 절정부분이며 많은
감동을 안겨주는 진정한 명연주 입니다.
이러한 무거운 연주가 마지막곡에서 희망으로 승화되어 이 거대한 걸작은 맺습니다.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음악이라 다소 거부감을 느낄 분도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이러한 선입견을 배제하고 순순한 음악으로 받아들이길 간절히 바라며…


Latte E Miele에 관하여

 LATTE E MIELE는 1970년 이태리 제노바에서 결성되었다.
멤버는 올리비에로 라까니나(Oliviero Lacapnia, keyboards vocal).
알휘오 비딴싸(Alfio Vitanza: drums flute, percussions)
그리고 마르첼로 잔깐를로 델라까사
(Marcello Giancarlo Delbrasa: guitar, bass, vocal) 이렇게
Emerson Lake & Parmer형태의 3인조 그룹으로 이들은 이태리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들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Festiver Pop Di Villa Pamphili(빰빌리 마을에서 개최되었던
팝 페스티벌 : Quella Vecchia Locanda 등이 데뷔했었던
유명한 페스티벌)에서 무대 데뷔를 가졌다.
(1972) 놀라운 것은 멤버 전원이 틴에이저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들 중 드러머인 알휘오 비딴싸는 그룹 결성 당시 16세의 소년이었다.

 그들은 이태리 Polydor사로부터 음악성을 크게 인정받고 1972년
한해동안 데뷔앨범을 제작하게 되는 데, 당시 이태리 Rock계의
움직임에 다소 무감각해 왔던 Polydor레코드사는 의외로
LATTE E MIELE를 위해 강력한 프로모트와 거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LATTE E MIELE는 성서로부터 발췌한 자신들의 그룹명 '젖과 꿀"
(다른 뜻으로 포립된 생크림이란 뜻도 있다)과 걸맞게 데뷔작도
성서의 마태복음서에 의한 예수의 수난극을 모티브로 하나의 거대한
Rock opera를 완성시킨다.

 당시 전 유럽의 록계에 유행하던 클래식과 록과의 융합이라는 조류에
편승 이태리인들의 독특한 기질을 불어넣어 탄생시킨 그들의 데뷔작
[Passio Secundum Mattheum]은 Progressive Rock계에 지금까지도 시대를
초월한 명작, 전설적인 걸작으로 남아있다.

 영국 그룹 Van Der Graaf Generator의 이태리 공연시 오프닝 밴드로
등장했었던 LATTE E MIELE는 공연 무대에서 그들의 데뷔작을 연주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스튜디오에서 정교하게 만들어 졌던
복잡하고 화려하고 또한 웅장했던 사운드를 세 명의 젊은 뮤지션들은
도저히 무대에서 재현할 수가 없었고 따라서 그들의 무대에 대한
음악평도 결코 좋을 리 없었다. 한마디로 그들의 데뷔작은 라이브로
완벽하게 재현시키기에는 불가능한 작품이었다.

 이렇게 한차례 무대공연의 시행착오를 겪은 Latte E Miele는 곧
두 번째 앨범을 제작하게 되는데, 이 작품은 의도적으로 무대에
올려질 것을 예상하고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앨범 구성상 EL&P의
초기 작품들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 이들의 두 번째 앨범 [Papillon]은
 인형극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데뷔작보다 연주력에 있어서는
세련미와 향상된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나, 데뷔앨범에서 들을 수
있었던 웅장함은 결여되어 있다.

 1973년 9월 두 번째 앨범의 녹음을 마친 Latte E Miele는 두 장의
싱글을 발표하면서 1974년까지 적극적인 활동을 보이다가 밀려들어오는
팝 뮤직의 급류에 휩쓸려 분열되고, 마침내 해산상태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1976년 오리지널 멤버였던 타악기 주자 Alfio Vitanza에
의하여 새로운 Latte E Miele가 탄생하게 된다.

 Alfio Vitanza(percussions, 12-string guitar)와 함께 Latte E Miele에
 합류하게 된 멤버들은 마씨모 고리
(Massimo Gori : bass, acoustic & electric guitar, vocal),
루치아노 뽄티니(Luciano Pdti ni: keyboards vocal).
그리고 미모 다미아니 (Mimmo Damiani: keyboards, guitar, vocal)이렇게
 세 명의 새로운 멤버들이었다.

 신생 Latte E Miele는 New Trolls의 리더 비토리오 데 스칼시
(Vittor De Scalzi)의 협력을 얻어 Fonit Cetra 산하의 Magma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Aquile E Scoiattoli(독수리와 다람쥐)]라는 앨범을
제작하게 된다.

 4인조로 재편성된 Latte E Miele는 예전의 고전적인 음악스타일에서
벗어나 보다 대중적인 음악세계를 펼치게 된다. Twin Keyboards를
앞세우고 있지만 예전 Oliviero Lacapnia의 역량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듯싶다. 물론 베토벤의 작품 제21번 4악장을 기반으로 한
'opera 21'라는 곡과 뒷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Pavama'는 곡에서
예전 Latte E Miele의 음악적 맥을 어렵게 찾을 수 있다. 그후 신생
Latte E Miele는 새로운 이름 Latte E Miele Special이라는 그룹명으로
1980년까지 여러 장의 싱글들을 남겼다.

Posted by 겨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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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hotgirlz-2008.com/07-cheat-nba BlogIcon 07 cheat nba 2008.03.13 05: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심을 끌. 너가 동일할 좋을 지점을 다시 배치할 것 을 나는 희망한다.

월간팝송 1984년 10월호,  프로그레시브 황금기 Trilogy (제3부 1973 - 1974)

Felona and Sorona. Imagined planets millions of light years apart. Felona radiant with light, peace, and love. Sorona an unhappy speck in eternal darkness, a place of withered life and beings like vegetables ; burdened and unsmiling ghosts, clinging to faith...hope.
  The Supreme Being, rejected source of all happiness, rolls his gaze to sad Sorona, and from those eyes pour a cascade of light. Skeletal life and smudged flora warms and blooms in the awaited miracle of light. Darkness, fear, silence, are gone.
 For an instant, the sister planets Felona and Sorona are alike in their happiness, It lasts only the space of smile. With the magic enhantment, their equilibrium shatters and vanishes. Felona and Sorona capsize. In the imponderable game, they annihilate each other.

Le Orme

Venice, 1973


Photos of Ghosts

Black roses laced with silver
By a broken moon.
Ten million stars
And the whispered harmonies of leaves.
We were these.

Beside a dried up fountain
Lie five dusty tomes
With faded pasted pictures
Of love's reverie
Across each cover is written,
"Herein are Photos of Ghosts"
Of ghost, of ghosts,
Of the days we ran and the days we sang

by Pete Sinfield

"나는 Greg Lake가 마련한 만찬에서 이태리의 프로모터인 Francesco Snevio라는 사나이를 만났다. 그는 유명한 프로모터로서 EL&P, King Crimson, Black Sabbath, Ten Years After등 수퍼 그룹들의 대규모 이태리 공연을 담당했던 사람이다. 그와 대화하던 중에 우연히 이태리의 록 그룹인 P.F.M.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곧 나는 흥분하고 말았다. 이태리 음악 하면 Canzone가 연상됐던 나에게는 커다란 호기심이 일고 있었다. 다음날 나는 테입으로 그들이 연주하는 것을 들었으며 그것을 듣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전체적으로 모든 곡들이 아름다웠으며 독창적인 사운드였다. EL&P와 King Crimson을 합한 것과 같은....
 그 테입에는 그들의 두번째 LP의 곡들이 담겨져 있었다. 나는 그들을 만나면서 지금까지 만났었던 사람들 중에 최고의 젊은이들임을 알게 되었다."
 위 글은 킹 크림슨의 초창기 멤버이자 작시자였던 Pete Sinfield의 인터뷰 내용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 후, Pete Sinfield 는 P.F.M.의 두번째 앨범인 "Per Un Amico"의 가사를 영어화해서 세계 시장에 내 놓았으며 P.F.M은 세계적인 그룹으로 발돋움했다
 여러 유럽 국가들의 훌륭한 무명 그룹들이 서서히 세계시장에 진출하던 1974년, 당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 인터뷰이기에 여기에 적어본 것이다.

성시완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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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1973년 미국의 록계는 서든 록(Southern Rock)과 개성이 매우 강한 마이너 레이블들이
이끌어 갔다. Sound of South, Carpricorn, Asylum, Shelter등의 마이너 레이블들이 회사
 위주의 음악 제작에서 탈피, 아티스트 본위의 앨범 제작을 할 수 있었으며 뮤지션의
수준도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또한 우드스탁 훼스티발이 행해졌던 이래로 대규모의 콘서트가 7월에 뉴욕주에서
"Summer Jam"이라는 타이틀로 개최 되었다. 이콘서트에는 3개의 그룹 -
 Allman Brothers Band, The Band, Gratefal Dead가 참가 했는데 60만
인파가 모였던 대행사 였다. 프로그레시브 계열에서는 1970년에 John과
Chuck Panzo 형제에 의해 시카고에서 결성 되었던 Styx가 "Styx 2"(두번째 LP)와
"The Serpent Is Rising"(세번째 앨범)을 발표해서 사막의 미국 프로그레시브 록계에
오아시스가 되어 주었다. (Styx 가 유일하게 한 해에 두장의 LP를발표한 해는 그들의
음악적 향상기인 1973년 이었다.)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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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wbs의 "Bursting At the Seams", <Tear & Pavan> 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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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Canterbury Family에서 분파된 심포닉 (symphonic) 그룹 Carav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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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eissance의 두번째 앨범 "Ashes Are B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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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wkwind의 더블 라이브 앨범 "Space Ritval"

영국의 언더그라운드 계열과 프로그레시브계열은 1960년대 말 ~ 1970년대 초에 탄생한
수많은 수퍼 그룹들에 의해 주도되어 가고 있었다.
새해 첫날인 1월 1일 Strawbs는 "Bursting At The Seams"를발표해서 포크 그룹에서 완전 탈피했고, 그 다음 앨범인"Hero & Heroine"으로 수퍼 록그룹으로 전혀 손색이 없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5옥타브를 낼 수 있는 여성 보컬리스트 Annie Haslam이 소속된 Renaissance는
비록 데뷔앨범은 실패 했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두번쨰 앨범 "Ashe Are Burning"으로
상업적인면에서 크게 성공했다
.Peter Bardens가 이끄는 Camel은 영국 프로그레시브계에 신선함을 불러일으켜 주었으며 대망의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1974년에 다시 활동을 재개함)
 수퍼 그룹의 활동을 보면 EL&P가 싱글 <Brain Salad Surgery>, 그리고 같은 타이틀
앨범을 연이어 발표했고 Yes는 1972년도 미국공연을 담은 더블 LP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를 발표했다.
스페이스 뮤직(Space Music)의 대표적인 그룹인 hawkwind도 1972년 12월에 Liverpool Stadium과 Brixton Sundown에 이어 런던에서 가졌던 실황을 담은 더블 라이브앨범 "Space Ritual"을 발표했다.
Pink Floyd는대중적으로 커다란 성과를 올린"The Dark side of the Moon"(9번째 앨범)을
발표해서 더많은 팬들을 확보 했고 Jethro Tull은 인상적인 재킷의 "A Passion Play"
(7번째 LP)를 과감하게 내놓았지만 반응은 그리 좋지 못했다.
Manfred Mann의 Earth Band에게 있어서 1973년은 가장 바쁜 한해였다.
그들은 "Messin"(3번째 LP) 과 "Get Your Rocks Off"(4번째 LP) 그리고 최고 걸작으로 알려진 "Solar Fire" 등 세장의 앨범을 만들어 냈다. Arthur Brown이 이끄는 Kingdom Come도 "Kingdom Come"(두번째 LP)과 "The Journey"(스페이스 사운드의 명작; 세번째 LP이며 최후의 앨범)을 발표했다.
 특히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계의 큰 수확은 Mike Oldfield의 등장 이었다. 5월에
발매된 "Turbular Bells"는 경이적인 작품으로 놀라운 판매고를 올렸으며 한명의
아티스트가 여러 악기를 다루어도 전혀 그룹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케이스 였다.
 또한 Virgin레이블을 통해 Henry Cow라는 실험적인 재즈 록 그룹이 "Legend"라는
앨범으로 데뷔해서 신생 레이블인 Virgin을 영국 최고의  Avant Garde, Progressive Label로서 인정 받게 했다.이 외에도 수많은 그룹들이 서로 다투어 앨범을 내놓았지만
킹 크림슨 만큼은 Pete Sinfield, Mel Collins,Boz Burrel의 탈퇴로 해산 상태였으며,
Yes의 Bill Bruford와 Family의 John Wetton, 매우 돋보이는 전위 타악기 주자
Jamie Muir를 멤버로 하여 "Larks' Tongues In Aspic" (6번째 앨범)을 가까스로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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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fred Mann's Earth Band의 명반 Solar Fire(5번째 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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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fred Mann's Earth Band의 세번째 앨범 "Messin", (Chapter III 당시의 라이브 곡을 앨범 타이틀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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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사자들 Kingdom Come


 이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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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D.G.G의 리더 Peter Hammil이 영어로 번안했던 이태리의 베테랑 그룹 Le Orme의 "Feloma & Sor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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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phataurus의 유일한 앨범 "Adrian no Marangoni"의 상직적 커버 아트 ("N.T. Atomic System"처럼 6페이지의 재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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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 Sinfield에 의해 세계시장에 알려지게된 P.F.M의 세번째 앨범 "Photos of Ghosts"

1973년은 이태리 프로그레시브 록계의 세계진출이란 커다란 의미를 지닌 한해였다.
 Pete Sinfield에 의해 비로서 P.F.M에 세계 음악시장에 알려졌고, 또한 V.D.G.G.의
리더 Peter Hammill이 Le Orme의 5번째 앨범인 "Felona A Sorona"를 영어화해서
Charisma 레이블을 통해 "Night On The Bare Mountain"이란 타이틀로 발표 됐고
(미수록곡 한 곡 더 첨가), EL&P 스타일의 Triad는 영어가사로 된 유일한 앨범을 남겼다.
 Alna Sorrenti의 두번째 작품은 Francis Monkman(Curved Air의 멤버 였으며 후에 Sky의
창단 멤버) 과 Dave Jackson(V.D.G.G.의 색소폰 담당)등과 함께 런던에서 녹음이 되었다.
 5인조 록그룹 Acqua Fragile는 P.F.M과 Clandio Fabi의 제작으로 데뷔 앨범을 발표했고,
 제노바를 본거지로 한 (Studio G로부터 설립됐던)Magma레이블로 부터는 그룹명을
EL&P의 "Tarkus"에서 따온 Alphataurus가 유일한 앨범을 내놓았다. 역시 5인조 그룹
Area가 대중을 향해 "Arbeit Macht trei"라는 데뷔앨범을 펼쳤고 로마 출신의
Banco Del Mutuo Soccorso는 정연한 인상을 주는 3번째 앨범"Io Sono Nato Libero"를
발표했다.
 하드 록풍의 Canpo Di Marte는 이태리에 있는 Mars(신화상의 군신명)광장을 그룹명으로
영국인을 한명 포함한 동명(同名) 타이틀의유일한 앨범을 발표했다. 그리이스 고대 전설을
기반으로 Melos의 이야기를 담았던 Cerello의 유일한 앨범 "Melos"가 발표되었고 P.F.M.의
Mauro Pagani에게 발탁된 Claudio Rocci는 Matia Bazar이 재적했던 Ariston 레코드사를
통해 데뷔 했다.
 RCA의 세션맨으로 이루어진 그룹으로 피아노를 기반으로 한 Festa Mobile이 재즈와
프로그레시브 록의 경이적인 앨범을 남겼다.
 Formula 3가 "La Grande Casa"라는 최후의 앨범(4번째 LP)을 남겼고, Jumbo도 최후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Latte E Miele는 두번째 앨범인 "Papillon"(영화 "Papillon"과
같은 내용을 담았던 앨범이었다)을 내놓았다. 그외에 EL&P의 영향을 받은
L'uovo Di Colombo Banco 스타일 의 Metamor - Fosi, 니이체의 철학서사시 Zarathustra를
테마로 했던 Museo Rosenbach, Rocky's Fiji (4인조 아방 가르드 록 그룹),
Semiramics(고대 바빌로니아 여왕을 그룹명으로 한 전설적인 그룹), 오케스트라와 코러스를
동원한 시적인 앨범을 만든 Tito Schipa Jr.(유명한 오페라 가수의 아들) 등이 각각 유일한
앨범을 Italian Progressive의 황금기인 1973년에 발표했다.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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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n Düül II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네번째 LP "Wolf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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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재즈를 기반으로 하는 프로그레시브 그룹 Message. 리더 Tommy McGuigun의 보컬은 매력적이며 환상적이다.

 1973년, 독일에서는 하드록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Alkatraz, Friedhof, Hairy
Coter, Nosferatu, Sphinx, Tush, Weed등의 비교적 기술적 수준이 낮은 그룹들이 대부분
이었으나 그들 나름대로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사이키델릭 사운드가 서서히
사라지고 Electronics Sound가 최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Tangerine Dream은
"Atem"(4번쨰 LP)을 발표했고 영국 BBC 방송의 유능한 DJ John Peel에 의해 세계
시장 진출이 가능하게  되었다.
 명반 "Wolf City"를 성공시킨 Amon Düül II는 세차례의 영국공연을 비롯해서
앨범제작보다는 순회공연에 열의를 더했던 한해였으며 "Vive la Trance"(6번째 LP)를
발매 했다.
 Hosianna Mantra는 최고로 감동적인 레코드라는 찬사를 Musik Express지로부터 받았다.
그리고 Musik Market지는 Popol Vuh를 최고로 성공하고, 최고로 주목받는 독일그룹의
하나라고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Popol Vuh는 4번째 앨범인 "Seling Preisung"을
발표했는데 이작품은 지금까지 전승되어온 종교와 교회의 전통을 초월한 Florian Fricke의
 매혹적인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 윤씨는 이 앨범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Can은 60일 동안에 걸쳐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순회공연을 가졌고
"Future Days"(5번째 LP)를 발표했다. 보컬을 담당했던 일본인 Kenji 'Damo' Suzuki는
결혼을 이유로 그룹을 탈퇴했다.) Guru Guru는 그룹명의 앨범 "Guru Guru"(4번째 LP)를
내놓았고 "German Rock Concert" (5월 19일) 와 "german Rock Festival" (9월16일),
그리고 "RAIS 방송 독일 록 제전" (11월 29일)에 Main Group으로 참가했다. 그 외에도
 Klaus Schulze가 두번째 솔로앨범 "Cyborg"를 만들어내서 "외면적으로 단조로운
Monotone이나, 내면적으로는 깊이가 있는 음악 - 일종의 Electronic Yoga"라는 평을 받았다.
 Manuel Göttsching이 이끄는 Ash Ra Temple은 1972sus "The Bern Festival"의 실황을
담은 "Seven Up" 과 개방적인 자유를 나타내는 "Starring Rogi"를 만들어 냈다. 후에
멤버교체가 극심했던 두 그룹 A.R 과 Between 중에 Achim Reichel이 이끌던 A.R은
"A.R.3"(5번째 LP)와 "A.R.IV"(6번째 LP)를, Between은 "And The Waters Opend"(두번째
LP)를 발표했다. 크로스오버 재즈에 가까운 7인조 그룹 Creative Rock이 프로그레시브
레이블인 Brain을 통해 "Gorilla"라는 앨범을, 하드록 스타일의 4인조 그룹 Curly Curve가
데뷔를 했다. 또한 1973년도는 Embryo의 해라고 할만큼 Embryo는 3장의 앨범 -
"Rocksession"(4번째 LP), "SteigAus"(5번째 LP), "We Keep On"(6번째 LP)을 발표 했다.
 6인조 그룹 Emergency는 멤버를 재정비, CBC에서 Brain으로 이적해서 두번째 앨범
"Get Out To The Country"를 만들어 냈다. 베테랑 그룹 Eberhard Schoener는 독일에서의
 마지막 앨범 "Music For Meditation" (4번쨰 LP)을, Faust는 테입에 수록됐던 미발표곡을
모아 "Tapes"(3번째 LP)를 발표했다.
 Gila는 리더 Conny Veit를 제외하고 모두 멤버교체되어 두번째 앨범을 만들었고,
재즈 록 그룹 Kollektiv Message (4인조 Mary Stewart의 "The Crystal Cave"라는 책에서
착안한 그룹)가 데뷔를 했다. 재즈와 클래식을 혼합한 Thirsty Moon은 Brain을 통해
스케일이 큰 2장의 앨범을 만들어 냈다.
 Grobshnitt (북부 독일에서 1970년에 결성된 그룹)는 72년도에 이어 73년에도
German Rock 역사상 길이 남을 우주적이며 대작인 앨범 "Ballerman" (두번째 LP)을,
Wallenstein은 Jerry Berkers 대신에 Dieter Meier로 교체하고 새로운 멤버인
바이얼리스트 Jöachim Reiser를 받아들여 "Cosmic Centry"(3번째 LP)를 만들어 냈다.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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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eo Rosenbach의 앨범 재킷 뒷면의 그림이 매우 상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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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h Ra Tempel의 리더 Mannel Götts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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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ng의 6번째 앨범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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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도 라이브 앨범의 명반 "Greasy Truckers" United Artists 레코드사의 앨범으로 Gong, Henry Cow, Camel등의 멋진 라이브 곡이 수록되어 있다.

Daevid Allen이 이끄는 Gong은 "Radio Gnome Invisible" ("Angel's Egg", "You"에
계속 파트별로 수록된 곡)을 첫곡으로 담은 "Flying Teapot"(네번째 LP)을 발표 했다.
이 앨범은 Tim Blake의 키보드, Steve Hillage의 우주적 기타 사운드에다 Magma의
게스트였던 Francis Mose가 베이스 주자로 참가해서 독자적인 작품을 형성하고 있다.
키보드주자 Alain Goraguer는 여성 Scat을 담은 사운드트랙 앨범 "La Planete Sauvge" 를
, Ange는 "Le Cimetiere Des Arlequins"(두번째 LP, 그러나 이 앨범은 세계시장에서는
데뷔 앨범이다.)를 발표했다.
 또한 Gilbert Artman (drum, piano, vibe)이 이끄는 Project 형식의 그룹LardFree가
출범했다
그리고 음악 평론가들에게 대단한 호평을 받았던 Sandrose가 유일한 앨범이며 세계적인
희귀앨범 "Sandrose"를 남겼다. 또한 Magma 출신의 Jeff "Yochko" Seffer(sax vocal)와
Franc, OisCàhen(keyboards)가 이끄는 그룹Zao가 재즈 록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해였다.
그밖의 나라는 뚜렷한 활동이 거의 없었으므로 지면 관계상 생략하기로 한다


1973
 

미국

 결성 10주년을 맞은 Jefferson Air plane은 74년에 들어서면서 그룹명을
Jefferson Startship으로 개병하고 그룹의 건재함을 보여주었으나 Grateful Dead는
일시 활동을 정지함으로써 샌프란시스코 뮤직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감을 느끼게 한다.
프로그레시브 영역에서 보면 1974년 말 Kansas가 Don Kirshner가 설립한 Kirshner
레이블의 오디션에 합격함으로써 프로그레시브 록의 불모지인 미국땅에 또하나의 유능한
그룹이 빛을 바라게 되었다,
 Styx는 신비의 마법사를 재킷에 담은 클래식과 록을 혼합시킨 네번째 앨범이며
Wooden Nickel 레코드사에서의 마지막 앨범인 "Man of Mircles"를 발표했다.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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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ugee의 유일한 앨범 "Refug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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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wbs의 걸작 "Hero And Heroine" 타이틀곡과 "Autumn"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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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이스가 낳은 키보드의 천재 Vangelis의 데뷔 앨범 "The Drgon" 1971년에 발표했던 이 앨범은 1978년에 재발매 되었다

당시 영국의 록계는 수입의 85 ~ 95%를 세금으로 부과시키는 당국에 불만을 품은
대중적인 아티스트들이 미국을 비롯한 여러나라로 이주하는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Beatles 멤버들의 미국 이주를 들 수 있다.) 프로그레시브
계열에서도 Pink Floyd와 Yes EL&P 등의 수퍼그룹들은 영국의 중과세에 골머리를
앓으면서 미국 이주를 위해서 한해에 수차례의 미국 공연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EL&P를 겨냥해서 결성됐던 Refugee는 Nice의 재편성을 기획하던 Lee Jackson과
Brian Davision에 의해 결성된 그룹으로 스위스 출신의 키보드 주자 Patrick Moraz의
사운드를 기반으로 해서 Keyboard Music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결성 이래 40 차례의
공연과 단 한장의 앨범을 남긴 Refugee는 Patrick Moraz의 Yes 참가로 말미암아 활동을
정지함으로써 화려했지만 짧은 역사로 그치고 말았다.
 King Crimson도 해산 위기에 돌입, 타악기를 맡았던 Janie Muir가 탈퇴한 후 4인조로서
 "Starless And Bible Black"을 발표했다. 그후 King crimson은 새로운 앫범 "Red"의
리허설 중에 멤버간의 극심한 트러블로 해산을 발표하게 된다.
("King crimson은 죽었다!" - 1974년 9월 26일) King Crimson의 해산 발표후 그들의
공식적인 최후의 스튜디오 앨범 "Red"(데뷔앨범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던 8번째 LP)를
발표했다.
 Yes는 미국공연에 한창 열의를 올리고 있었던 한해였다. 연초부터 미국 순회공연을
행했던 Yes는 너무 극심한 연속적인 공연의 피로로 그룹 내부에 불화가 일기 시작했다.
 Rick Wakeman은 결국Yes를 떠났고 그룹은 후임 키보드 주자의 선택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Vangelis가 잠시 참가) 또한 "Ashes Are Burning"으로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Renaissance는 "Turn of The Cards"(3번째 LP)를 발표해 앞으로 다가올 세계 순회공연의
기틀을 마련했다.
 Genessis는 최초의 더블앨범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7번째 LP)를 발표 했다.
사운드가 강화 되었던 앨범이었으며 뉴욕의 맨해턴을 무대로 "Rael"이라는 불량 소년을
주인공으로 했던 이색적인 앨범이었다.
Strawbs는  1973년 11월에 코펜하겐에서 녹음했던 "Hero & Heroine을 발표했다.
이 앨범은 본국인 영국에서는 한때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사운드는 매우 훌륭했다.
대체적으로 1974년 영국의 수퍼 록그룹들의 음악들은 그룹의 존속 여부와 깊이 관련되면서
사운드가 대중적으로 흘러가는 양상을 띠었고 프로그레시브의 영역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시기였다.


 

이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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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 Sinfield가 제작해준 P.F.M.의 5번째 앨범 "The World Became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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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Trolls의 공식적인 라이브 LP "Tempi Disp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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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IS이 두번째 LP "IBIS". "Ritrovarci Qui"가 수록 되어 있다.

Pete Sinfield로 인해 세계시장에 진출한 이태리의 수퍼그룹 P.F.M.은 자연의 존속을
걱정하는 (사회성이 가득 담긴) 내용의 "The World Became The World"(5번째 LP)를
발표했다.
 수퍼그룹 New Trolls는 Genova의 Alcione극장에서 녹음한 실황앨범 "Tempi Dispari"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Free jazz를 바탕으로 한 두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Concerto Grosso Per I"의
 Adagio와 Candenza를 실황에 맞게 편곡해서 재즈 록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재즈 록의 연주가 돋보이는 6인조 그룹 Arti + Mestieri가 "Tilt"라는 앨범으로
데뷔했고 이태리 Heavy SymphonicRock의 극치를 보여주는 Biglietto  Per L'inferono가
데뷔 했다.
 Formula3의 해산 후 드러머 Tony Cicco가 Cicco라는 자신의 이름을 그룹명으로
"Notte"라는 데뷔 앨범을 냈고, 환상적인 틀래식 록을 들려주는 키보드 위주의 그룹
E.A.Poe가 "Generazioni"라는 앨범을 발표했다.
 1972년 당시 New Trolls가 두개로 분열되면서 네명의 멤버가 그룹을 떠났을때 그중
Nico Di Palo(vocal, guitar)와 Maurizio Salvi(keyboards)가 결성한 그룹 IBIS는
세계시장을 겨냥한 데뷔앨범 "Sun Supreme"을 만들었다. 그리고 Formula3 출신의
Alberto Radius(vocal,Guitar)와 Gabriele Lorenzi(key boards)가 결성한 6인조 수퍼
록 그룹 II Volo가 데뷔했으며 이태리의 베테랑 그룹 Le Orme는 "In Concerto"
(6번째 LP)와 3장의 걸작 중 하나인 "Contrappunti" (7번째 LP)를 발표 했고,
"Io Sono Murple"(나는 펭귄이다)라는 제목을 가진 Murple의 앨범의 키보드 위주의
사운드로 장식됐다.
 서정성이 깃든 6인조 그룹 Quella Vecchia Locanda는 두명의 멤버를 교체한 후 2년만에
"II Tempo Della Giola"(2번째 LP)를 발표 했다. Twin Keyboards 중심의 Sensations Fix가
 "Patable Madness"를 , 프랑스 혁명때의 인물 Saint Just가 최후의 앨범
"La Casa Del Lago"(2번째 LP)를 내고 해산했다.
 Osanna  출신의 세 멤버 Elio Da'nna(Flute, Sax), Danilo Rustici(Vocal,Guitar,
Keyboard), Enzo Vallicelli(Drum)가 결성한 Uno가 유일한 앨범을 남겼다.
(이태리에서 발매된 앨범은 영어와 이태리어가 혼용되고 있고, 독일에서 발매된
앨범은 전부 영어로 되어 있으며 독일판은 Hipgnosis가 표지 디자인을 해 주었다.)
 5인조 그룹 UT는 긴장감이 도는 "Homo"라는 앨범을 발표했다.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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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거물 뮤지션들이 대거 참가한 세션 앨범 "Galatic Super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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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의 유일한 앨범 "Life After Death" 1974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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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에 결성, 1975년에 스위스 Montreux 재즈 훼스티발에서 데뷔했던 그룹 Argora의 "Live In Montreux". 이들의 그룹명은 그리이스 평화의 광장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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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gerine Dream의 세계진출 앨범 "Phaed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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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lenstein의 네번째 LP "Stories, Songs & Symphonies"

1974년 독일의 록계는 활짝 꽃이 피는 최전성기를 맞았다. 수처그룹들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세션그룹, 무명그룹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앨범들을 많이 발표했고, 그들의
독특한 음악성을 세계시장에 인정 받았던 뜻깊은 한해이기도 했다. 1974년은 Tagerine
Dream의 해라 할 만큼 Tangerine Dream은 행운을 가득 안았다. "Phaedra"가 영국 Virgin
레이블에서 발매되어(1월20일) 발매와 동시에 영국차트 10위에 올랐고, 리더
Edgar Froese는 첫번째 솔로 앨범 "Aqua"(6월24일)를 발매 했다. 그 후 베를린에서의
20차례 공연과 유럽 전역에 걸친 순회공연을 가졌고, Rheims 성당공연에서는 2천석의
공연장에 6천여 인파가 몰려 Tangerine Dream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그룹 Can은 1월2번과2월, 3차례의 영국 방문 공연에서 Melody Maker지로부터 "최고의
성과를 올린 만족된 공연"이라고 호평을 받았으며 2개월 후 그들의 초고의 수준작인
"Soon Over Babaluma"(7번째 LP)를 발표 했다. "Headphone을 착용하거나 안하거나
관계없이 같은 양의 음악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납니다." 라는 글귀를 Label
상징 마크 아래 새겨 놓는 이색적인 Delta-Acustic레코드사로 부터 3인조 그룹 Code III가
 Electronics Effect효과와 공간적인 음향, 이슬람풍의 여성 코러스가 어울린 현대음악에
가까운 작품 "Planet of Man"을 발표했다.
 1973년에 발족했던 Kosnishe Musik 레코드사로부터 8장의 수퍼 세션앨범이 쏟아져
나왔고 이외에도 5장의 "Galactic Supermaket" 앨범이 추가 되었다. 멤버로는
Wallenstein의 리더 Jürgen Dollase, 드러머 Harald Grosskopf, Ash Ra Tempel의 리더
Manuel Güttsching, Haus Schalze, 엔지니어이며 키보드도 담당하는 Dieter Dierks,
제작자 Gille Leftmann과 그의 콤비  Rosi가 참가 했다.Popol Vuh는 Florian과 우리나라
여성 정윰, 훌륫주자 Olf Kübler와 함께트리오 형태로 5번째 앨범인 Einjäger &
Siebenjäger"를 발표했고, 뮨헨 필하모니 관현악 단원중 한명을 받아들여 이태리 공연을
 치루었는데 그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외에도 수많은 그룹들이 작품을 내놓았는데
 Embroyo는 재즈와 중동쪽의 민속음악을 융합 시킨 "We Keep On"(6번째 LP)이란 앨범을,
30종류의 악기를 다루는 베일에 가려진 그룹 Floh De Cologne(초창기 4인조 그룹->5인조
->6인조로 증원됨)이 "Geyer-Symphonie"(5번째 LP)를 발표 했다.
 1970년에 5인조로 출범해서 지금까지 9매의 앨범과 1장의 Best를 남기고 있는
Lucifer's Friend (영국 하드록에 기초를 둔 그룹)가 "Banquest"라는 의욕적인 네번째
앨범을 내놓았다.
 Wallestein은 음악 스타일을 대중적으로 변화시킨 "Stories, Songs & Symphobies"를
만들어냈다. Popol Vuh처럼 동양의 종교적 감상을 그대로 반영한 4인조 그룹 Yatha
Shidhra(남부 독일-스위스 계통그룹)가 세션 앨범적인 성격을 지닌 "A Meditation Mass"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독일 프로그레시브의 홍수에도 불구하고 Guru Guru는 "Dance of the
Flames"를 내놓고 임시해산을 선언했으며 KlausSchulze는 Agitation Free의 리더
Michel Hönig(Guitar,Keyboards)  와 "공동 작업"이라는 뜻을 가진 합성어 Timewind라는
그룹을 조직하려 했으나 자신의 솔로 근성으로 그룹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독일의 록은
기계문명과 동화되어가는 것을 긍정하는 동시에 자연으로의 귀로, 동양적 신비주의에 대한
 동경이 매우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1974년은 이러한 독일 록이 본격적으로
세계음악시장에 진출하는 해였으며 그들만이 만들 수 있는 독특하고 우수한 작품이 많이
 쏟아져 나왔던 한해였다

프랑스

 중후한 키보드와 서정적인 키타연주를 지닌 수퍼그룹 Ange가 "Au- Delà D`u Délire"
(3번째 LP)를 발표했다. 중량감과 실험적인 요소를 품부하게 지닌 수퍼그룹 Magma도
"Köhntarkösz"(4번째 LP)를 만들어 냈으며 또한 리더인 ChristianVander는 "Tristan
Et Yseult"라는 영화의 사운드 트랙 앨범을 발표했다.


네덜란드

 Focus의 기타리스트 Jan Akkerman이 다른 솔로 앨범보다 더욱 재즈에 가까운
"Tabernakel" (3번째 솔로 LP)을 발표했다.(게스트로 Vanilla Fudge 출신의
Tim Bogert와 Carmine Appice가 참가) 클래식의 명곡을 전문적으로 편곡하는 그룹으로
관현악까지 동원하는 스케일 큰 그룹 Ekseption이 "Bingo"(Best LP를 제외한 7번째 LP)를
발표했다. 또한 두대의 만돌린과 목관악기, 베이스, 드럼, 보컬 편성의 Galaxy-Lim이
결성 됐다.
 그리고 Sweet Okay Supersister는 각종 효과음 등을 전기 처리했던  "Spiral Staircase"
(5번째 LP)를 발표하고 해산 했다

스페인

 1960년대 말에 Bautista에 의해 결성된 Los Canarios는 음악적 결핍으로 일시 해산됐다가
재결성, 스페인 록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남을 명반 "Cycles"를 발표했다. (8년에 걸친
기간동안 Vivaldi의 "사계(四季)" 를 기반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작품). 4인조 그룹
Fusioon은 Avant Garde와 클래식에 가까운 키보드 연주가 담뿍 담긴 "Fusioon"
(두번째 LP)을 발표 했다.

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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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를 대표하는 프로그레시브 그룹 Cos

벨기에의 프로그레시브 영역에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Cos가 "Jazz Rock
Pastaeolian Train Robbery"라는 앨범으로 데뷔했다.
 
======= 맺음말=======

3개월에 걸쳐 프로그레시브 황금기 Trilogy를 엮으면서 우리들이 그 동안 얼마나
프로그레시브 록에 무관심해왔는가를 같이 공감해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여기에
소개해왔던 그룹들은 대체로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그룹들이긴 하지만
모두가 프로그레시브 영역에서는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그룹들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1969~1974년 동안에 활약했던 일부 그룹들만이 소개되었지만 그당시 뿐만
아니라 1975년 이후에도 매우 훌륭한 그룹들이 존재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신생 그룹들이 탄생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우리가 접해볼만한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리라 기대 된다. 이 글을 쓰는데 참고가 된 서적은
무척 많았으나 주로 Euro-Rock 전문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프로그레시브 앨범들,
세계각국의 음악 평론가들의 평론이 큰 도움이 되었음을 밝히고 싶다.

 
 
 
 
출처:http://gpr2425.hihome.com

Posted by 겨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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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etpinkdreams.com/czn/power-point-clicker BlogIcon power point clicker 2007.10.18 0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의 친구는 너의 위치의 현재 팬이 되었다!

  2. Favicon of http://wetnredsex.com/view/free-woman-nudity BlogIcon free woman nudity 2007.10.18 14: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심을 끌. 너가 동일할 좋을 지점을 다시 배치할 것 을 나는 희망한다.

  3. Favicon of http://hotgirls2008.net/go/tiny-penis-photo BlogIcon tiny penis photo 2008.03.13 0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재미있는 지점. 감사.

  4. Favicon of http://celebblowsbar.net/czn/make-how-lingerie BlogIcon make how lingerie 2008.05.23 04: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에서 유사한 역사는 이었다.

월간팝송 1984년 9월호,  프로그레시브 황금기 Trilogy (제2부 1971 -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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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Genessis를 처음 본 것은 1971년 1월 24일이었다. 그 날은 나의 생일이었고 또한 그 당시 내가 좋아하던 영국 밴드인 Van Der Graaf Generator가 런던의  Lyceum에서 연주하고 있었으므로 잘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이태리의 여러 잡지들을 위해 London Scene에 관하여 기고하고, 사진 찍는  일 뿐만 아니라 건축 설계사로 일하며 런던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나는 60년대 말의 문화적인 변화 - 거의 르네상스에 가까운 - 가 여태까지 런던이 보아온 시대 중 가장 아름답고 격렬하고 흥미진진한 음악적 창작기였다고 믿고있다. 그때 나는 그러한 것을 매우 강하게 느꼈으므로 Jimi Hendrix나 Pink Floyd, Jethro Tull, King Crimson, Yes, E.L.P., Gentle Giant, Van Der Graaf Generator, 그리고 물론 Genessis 같은 그룹들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하여 건축설계사로서의 일을 그만 두기로 결심하였다.....
 ...그들 음악의 극적임과 시적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잘 짜여진 그들의 사운드는 내게 항상 매우 독창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1971년 1월 Tony Stratton Smith는 그의 가장 유망한 세 그룹 Van Der Graaf Generator, Lindisfarne과 Genessis를 9개 도시를 순회하는 연주여행을 보내 겠다고 계획하고 있었다. 그는 그 연주 계획안을 영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프로모터인 Tony Smith(후에 Genessis의 매니저가 됨)에게 주었는데 그는 어느 곳에서든 재빨리 매진될 수 있는 티켓 가격을 6실링에 고정시키는 재치있는 착상을 하고 있었다. 런던 밖의 지역에서는 아직 전혀 알려져있지 않은 Genessis는 Lindisfarne와 V.D.G.G.를 위하여 콘서트 때에 오프닝을 담당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그들에겐 행운인 셈이었다. 그러한 연주장소에서 그들은 그들의 음악으로 관객들에게 어떤 충격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위 글은 건축설계사이며 신문기자와 사진작가 이기도 한 이태리의 베니스 출신의 Armando Gallo의 책 "The Evolution of a Rock Band Genessis"(Printed in Great Britain by A Wheaton & Company Limited Exeter, Devon for Sidgwick and Jackson Limited)에서 발췌했다. 1971년 당시 영국 Rock계의 상황을 단면적으로 잘 보여준 글귀라는 생각에서, 그리고 대중음악의 올바른 전달을 위해 자신의 진로를 바꿔버린 한 작가에게 작으나마 감동이 되어 적어본 것이다.

성시완
 
 1971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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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k Floyd의 드러머 Nick Mason이 직접 그린 초창기 편집앨범

1971년 미국의 록계는 싱어 송라이터의 붐이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진실만을 말하는 그들은 록의 작은 낭만파들로서 조용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으며 또한 영국의 수많은 하드록 그룹에 외롭게 대항하고 있던 Grand Funk Raidroad가 최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그러나 60년대말 미국 록계를 이끌어 갔던 샌프란시스코 뮤직의 따뜻한 보금자리인 Bill Graham의 Fillmore West가 폐쇠되었으며(1971,7), Jimi Hendrix, Janis Joplin의 사망에 이어 약물중독으로 The Doors의 리더 Jim Morrison이 사망 했고, 남부음악의 대표적 그룹인 The Allman Brothers Band의 리더 Duane Allman이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하는등 계속되는 불운의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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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wbs의 "From the Witchwood" 앨범 재킷 속그림


영국
 1971년 영국의 록계는 더욱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계속 주목을 받고있던 Emerson, Lake & Palmer가  "Tarkus"(두번째 LP), "Pictures At the exhibition"(세번째 LP)을 발표해서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를 기록 했고 King Crimson은 보다 실험적인 앨범 "Islands"(네번째 LP)를 발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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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Cousins의 첫번째 솔로앨범. "Two Weeks last Summer", 명곡 <Blue Angel>이 들어 있다.

수퍼 그룹 Genessis는 이태리에서 커다란 성공을 기록한 "Nursery Cryme"(세번째LP)을 발표했고 Yes는 그들의 독특한 사운드를 확립시킨 기념비적인 앨범 "The Yes Album"(세번째 LP)과 Strawbs 출신의 Rick Wakeman을 받아들여 사운드를 강화하고 "Fragile"(네번째 LP)을 내놓았다. 또한 Pink Floyd는 초창기 편집 앨범 "Relics"와 그들 최고의 걸작으로 알려진 "Meddle"을 발표해 그들의 전성기를 이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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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L & P의 두번째 앨범Tarkus", 가상적인 괴력의 동물 Tarkus를 앨범 타이틀로 했다.

그외에도 록 팬들의 인기를 집중시켰던 Van Der Graaf Generator가 "Pwan Hearts"(네번째 LP)를, 록 바이얼리니스트 Parryl Way가 이끄는  Curved Air가 "Second Album"을 발표했고 영국의 전원그룹인 Barclay James Harvest가 그들의 초창기 명곡 "Once Again"(두번째 LP)과 "B.J.H. and the other Short Strories"(세번째LP)를 발표해서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Strawbs는 Rick Wakeman을 정식멤버로 받아들여 "From the Witchwood"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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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sis의 세번째 앨범 "Nursery Cryme". 이태리인들의 낭만과 공상적인 것을 노래했다

독일
 1971년은 독일의 수많은 진보 록그룹들이 다투어 데뷔를 했으며 독일의 록계가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게 되는 뜻깊은 한해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독일 록계의 선구자 역활을 해낸 Rolf Urkch Kaiser는 3개의 minor label인 Ohr, Pilz, Kosmiche Musick을 건립해서 Tangerine Dream, Popol Vuh, Ash Ra Tempel, Klaus Schulze, Embryo, GuruGuru, Wallenstein Hölderin등과 같은 독일 최고의 프로그레시브 그룹 등을 발굴해내는 공적을 세웠다. 특히 1971년 Pilz  Label에서 녹음을 개시했던` Wallenstein은 30년전쟁 당시의 장군이름을 그룹명으로 "Britzkrieg"(섬광전쟁) 라는 데뷔앨범을 만들기 시작했고 3인조 그룹인 Ash Ra Tempel은 Ohr를 통해 데뷔앨범을 발표했다. 그러나 Embryo는 Ohr를 떠나 Liberty레코드사로부터 "Embryo's Rache" (두번째 LP)  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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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aus Schulze의 현대음악적인 악보

또한 Klaus Schulze는 자신의 스튜디오를 완성했다(16Ch. Mixer 1대, 음향기 1대, Synthesizer 3대, Organ 1eo, Electric Piano 1대, Echo Unit 여러 대,Tape recorder 여러 대, Specral Box 여러대, Rotary Sound기 1대를 구비했다).
 Popol Vuh는 1971년도 Sound지 인기투표에서 신인그룹 Best 4 에 선정됐고 그들의 앨범 "Affenstunde"는 Best 10앨범에 선정되었다. Amon Düül II는 Music Express지의 Pop 인기투표에서 언더그라운드 그룹으로서는 1위, 3번째 LP인 "Tanz der Lemminge" (영어로는 Dance of the  Lemmings)는 Best앨범 5장  중  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사이키델릭 그룹인 Guru Guru는 WDR.TV의 "독일의 Pop Music"이라는 프로에 출연했고 함부르크의 Star Studio에서 2번째 앨범 "Hinten" 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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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ru Guru의 후반기 작품"Tango Fongo"  

(Sound지의 Pop 인기투표에서 Guru Guru는 "Group of the year"의 Best 10에 들었다. 그룹 Can은 "Berlinam Freitagmittag" 등의 TV 프로에 출연하면서 TV 추리물인 "Das Messer"의 주제곡 <Spoon>을 작곡해서 독일 차트 8위까지 올려놓고 또한 2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쾌거를 이룩했다. 또한 TV영화 "Millionspiel", "Tote Taube"등여러 편의 영화음악을 담당했다.
 이외에도 환상파 화가인 Arik Brauer가 자신의 앨범을 발표해서 화제가 되었고 5인조 진보그룹 Bröselmaschime이 데뷔앨범을 Pilz로부터 발표 했으며, 독일 록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Cluster가 3곡의 대곡을 담은 데뷔 앨범을 만들어 냈다. 또한 독일의 전설적인 그룹 Faust가 데뷔앨범을, 4인조 진보그룹으로 출발했던 Gila가 데뷔앨범을, Jazz와 인도의 향기가 나는 듀오 그룹 Flute & Voice가 유일한 앨범을 남겼고 트리오 그룹인 Mythos가 강한 인상을 풍기며 데뷔앨범을 발표했다.
 
 이태리

 영국과 독일에 비해 1971년도 이태리의 록계는 그리 활발하지 않았다. 이태리의 최고 록 트리오라 불리우는 Formula 3가 두번째 앨범 "Formula 3"를 발표했고 수퍼 트리오 그룹 Le Orme는 "Collage"라는 세번째 앨범을, 5인조 진보그룹 Delirium이 데뷔앨범 "Dolce Acqua"를, Jumbo는 "DNA"라는 두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이렇듯 1971년은 이태리의 수퍼그룹들이 침묵을 지킨 한해였다(1972년의 도약을 위해서 음악성을 축적했던 해였으리라 생각된다.) 특히 이태리의 불꽃이라 불리우는 나폴리 출신의 진보그룹 Osanna의 데뷔작 "L'uomo"는 최대 걸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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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출신의 5인조 그룹 Osanna의 데뷔 앨범"L'uomo" 이 재킷은 1976년에 변형되어서 나왔다. 


 
프랑스
 프랑스의 록계 또한 1971년도는 특별한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록의 새로운 시도를 위한 많은 뮤지션들이 의기 투합하고 있었다. Daevid Allen이 이끄는 Planet Gong의 공식적인 최초의 녹음앨범 "Camemvert Electrique"가 Pierre Lattes의 제작으로 녹음되었다.(1971년5월,6월,9월) 또한 이 앨범이 녹음되기 직전에 Dashiell Hedayat의 솔로 앨범 "Obsolete"가 Daevid Allen을 비롯한 Gong의 멤버들의 도음에의해 완성되어졌다. 또한 6인조 진보그룹 Komintern은 유일한 앨범 "Le Bal du Rat Mort"를 남겼다.

그 밖의 나라

네덜란드 1971년도에는 커다란 변화는 없었지만 네덜랜드의 진보그룹 Focus가 그들의 최고 성공작인 두번째 앨범 "Moving Waves" (<Hocus Pocus>수록)를 발표했고 리더인 Thijis Van Leer는 솔로앨범 "Introspection"을, 기타리스트인 Jan Akkerman은 "Profile"이라는 솔로앨범을 발표했다.1970년 1월경에 결성되었던 Earth & Fire는 Golden Earring의 리더 George Kooymans에 발탁되어 보조 밴드로 활약하다가 데뷔앨범을 발표했다.(영국에선 1971년에 발표), 이들은 초창기부터 프로그레시브 계열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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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M.의 두번째 앨범"Per Un Amico"


그리이스
 Socrates가 70년도에 데뷔한 이래 첫 앨범을 발표했다. 그외 덴마아크에선 Burnin Red Invanhoe가 "W.W.W."란 앨범을 냈고 노르웨이에선 Saft가 데뷔 앨범을 냈다.필란드에선 수퍼그룹 Wigwam이 "Fairyport"란 앨범을 발표했다, 노르웨이에서는 스튜디오 뮤지션들로 Popol Vuh라는 그룹이 결성되었다(이 그룹은 Florian Fricke가 이끄는 독일그룹 Popol Vuh와는 다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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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te E Miele의 데뷔앨범"Passio Secundum Mattheum" (신약성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록 오페라 형태로 구성)


 
 
1972
 



미국
 당시 미국 록계에서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국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진보그룹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으나 싱어 송라이터들의 활약은 여전히 눈부시도록 활발했다. 특히 여러 신인들의 데뷔가 1972년도 미국 록계의 촛점이었는데 신흥레코드 회사인 Asylum으로부터 데뷔한 Jackson Browne(서독 태생)은 웨스트 코스트를 대표하는 싱어 송라이터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Linda Ronstadt의 백업 밴드였던 Eagles가 독립해서 데뷔앨범을 내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다. 또한 Bob Dylan과 함께 CBS레코드의 영웅으로 군림했던 Simon & Gartfunkel은 1971년도 그래미상 4개 부문을 독점했던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끝으로 듀오 활동을 중지했고 Pal Simon레개풍이 담긴 소로앨범을 만들어내어 화재가 되기도 했다. 특히 미국음악을 계속 고수하던 남부 지방에서는 신흥 레코드 회사가 건립되는등 새로운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편 미국으로 건너간 John McLaughlin과  Jan Hammer(키보디스트, 체코 출신), Rick Laird(베이스), Jerry Goodman(바이얼린), Billy Cobham(드럼) 그리고 Miles Davis의 주변 음악인들과 Mahavishnu Orchestra가 "Inner Mounting Flame"에 이어 "Where Fortune Smiles"와 걸작 "Birds of fire"를 발표했다.

영국
 David Bowie의 전기라고 할 수 있는 "Black Book"(Omnibus Press)을 펼치면 1972년도가 가장 많은 활자로 매꾸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Marc Bolan의 전기 "Born To Boogie"(EEL U.K. PIE Publishing, Ltd). 지면을 보면 1972년에 Marc Bolan of T.Rex가 가장 많은 앨범을 내놓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972년에 Roxy Music이 데뷔앨범을 내놓았다. 이처럼 1970년대 초반에 영국으로부터 발생, 미국 록계까지 크게 성공했던 Glam Rock(Boogie와 로큰롤 스타일의 단순한 사운드에 아티스트의 얼굴 화장과 의상등 시각적 효과를 크게 노린 록의 형태)이 1972년에 와서 전성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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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wbs의 중반기 걸작 "Great New World" 멜로트론 연주가 돋보인다.

         
이에 반해서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영역 또한 활발한 분위기였다. Annie Haslem의 청아한 보컬과 John Tout의 클래식 분위기의 키보드로 진보적인 사운드를 창조해내는 Renaissance가 출범했고 영국 최후의 Underground group으로 불리우던 Hawkwind는 한쪽면만 할여되는 라이브 앨범 "Greasy Truckers Party"에 등장했고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 싱글 <Silver Machine>을 만들어 냈다. Emerson, Lake & Palmer는 "Trilogy"(네번째 LP)를 발표해서 인기를 유지했고 Pink Floyd는 영화 "La Vallée"의 사운드트랙 앨범 "Obscured By Clouds"(공식적인 일곱번째 LP)와 무관객 Live Film 인 "Pink Floyd Live At Pompeii"의 발표로 인해 영화로 행복을 누린 한해가 되었다. Yes는 "Close To The Edge" (다섯번째 LP)로 세계적인 Classical Rock Band로 올라 섰고 Strawbs는 호소력 있는 David Cousins의 보컬과 Blue Weaver의 키보드(특히 멜로트론)등의 악기강화로 중반기의 명반 "Grave New World"를 만들어 냈다. Barclay James Harvest 또한  색다른 분위기의 다분히 실험적 요소를 풍기는 "Barclay James Harvest"(네번째 LP)를 만들어 냈다. Genessis는 "Foxrot"(네번째 LP)를 발표했다. 리더인 Peter Gabriel은 공연 스테이지에서 "Music Box"("Nursery Cryme")에서의 "The old man" 분장에서 여우머리를 한 특이한 분장으로 그의 분장 모슴을 바꾸었고 이때부터 그는 놀라운 뮤지션으로 평가 받기 시작했다. ("Foxrot" 앨범이 Peter gabriel을 스타로 만들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영국그룹이 등장했고 프로그레시브 영역에서도 여러 신생 그룹의 탄생을 보았으며 수많은 명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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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적인 효과가 나는 Barclay James Harvest의 네번째 앨범 "Baby James Harv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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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ie Haslem의 Renaissance의 데뷔작 "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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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in Scot의 데뷔앨범, 영국 프로그레시브계의 리더격 뮤지션들이 대거 게스트로 참가했다.


  독일
 1970년 초반기 독일의 록계는 영국, 미국의 모방음악으로부터 의식적으로 탈피하여 실험적인 방법을 많이 시도했었는데 이것이 극대화 되어 자기의 감성을 매몰시켜 버리는 관렴적인 음악으로 많이 표면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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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lwstein 의 두번쨰 앨범"Mother Universe"

독일 록계도 1971년에 이어 매우 활발한 양상을 보였는데 Tangerine Dream이 최초로 더블앨범 "Zeit"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진보그룹으로 들어선 이래로 최초의 싱글<Ultima Thule Parts I & II > 를 발표 했다. Sound지의 인기투표 결과 "Zeit"가 최우수 앨범, Tangerine dream이 최우수 그룹, 리더인 Edge Froese가 최우수 뮤지션으로 선출되었다. 또한 1972년 Amon Düül II의 해라고 할 만큼 그들은 커다란 호평을 받기 시작했다. 영국신문에서는 개성적이며 창조성이 있는 음악을 해내는 그룹이라고 호평했고 Disc지에서는 Can과 함께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독일 록밴드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Amon Düül은 그들의 최고 걸작 "Wolf City"를 녹음했는데 이 앨범은 여러 음악지의 찬사를 받았다. Guru Guru는 베이스의 Ul Trepte를 잃는 등 그들의 위기에 접어들고 있었으나 3번째 앨범"Kánguru"는 Sound지 인기투표에서 Tangerine Dream의 "Zeit"에 이어 Best Reocrd와 그룹
부문에서 2위에 선정 되었다. Wallenstein은 "Britzkrieg"에 이어 "Mother universe"라는 앨범을 내놓았고 베이스와 보컬을 담당했던 Jerry Berkers도 솔로앨범인 "Unterwegs"를 발표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Triumvirat도 데뷔앨범 "Mediterranean Tales"를 내 놓았다. 관렴적인 음악의 하나로 Annexus Quam의 두번째 앨범에서 Rolf Ulrich Kaiser가 제작한 <Beziehungen>이 발매 됐고 Ash Ra Tempel의 "Schwingungen" (두번째 LP) 그리고 5인조 그룹 Brave New World가 극도의 난해한 사이키델릭과 재즈의 만남을 시도, "Impressions On Reading Aldus Huxley"를 발표 했다(이 그룹명은 Aldus Huxley의 동명 소설 "Brave New World"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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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lenstein의 베이시스트 Jerry Barkers의 솔로앨범"Unterwegs"


이태리
 1971년과 달리 이태리의 록계는 극도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그들 나름대로의 개성을 지닌 수많은 그룹들이 서로 다투어 앨범을 내놓았는데 대부분 대중적으로 성공을 하지 못한채 유일한 앨번으로 끝나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음악성이 풍부한 앨범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와 이태리 록계의 전망을 더욱 밝게 해주었다. 유일한 앨범을 남긴 그룹으로는 아름다움을 가득 담은 앨범 "L'alba Di Domani"를 발표한 Gruppo 2001, 정적과 요란 함이 함께 어울렸던 유일한 앨범을 만든  De De Lind, 전성기 시대의 Uriah Heep을 방불케하는 강력한 연주를 들려주던 J.E.T.가 유일한 앨범 "Fade Speranz Carita"를 남겼다. 또한 목가적인 분위기의 유일한 앨범을 발표한 Reale Accademia Di Musica(5명의 오리지널 멤버와 2명의 게스트 Natale Massara의 오케스트라 편곡), 로마 출신의 베테런 그룹 Banco Del Mutuo Soccorso가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또한 1970년에 레코드 데뷔를 했던 Il Balletto Di Bronze는 그리이스 여신을 테마로한 최후의 걸작 "YS"를 발표 했다. 그리고 현재도 팝-록 그룹으로 활약하고 있는 16년 경력의 노장그룹 I Pooh의 베이스주자 Red Canzian이 재직했었던 그룹 Capsicum Red가 유일한 앨범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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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trolls와 오케스트라의 협연

수퍼그룹에 있어서는 New Trolls가 스튜디오 사운드와 라이브를 담은 "Searching For A Land" 와 IBIS, N.T. Atomic System으로 분열되기 직전에 5번째 앨범인 "U.T."를 발매 했다. PFM은 데뷔앨범 "Storia Di Un Minute"와 그들을 세계진출의 문으로 이끌어 준 행운의 두번째 앨범 "Per Un Amico"를 발표했다. 트리오 그룹인 Le Orme는 "Uomo Di Pezza" 를 발표했다, 그외에 지금은 팝 싱어로 활약하고 있는 Alan Sorrenti가 당시에는 "Aria"라는 대작을 만들어 냈다. 재즈 계통의 그룹으로는 고도의 테크닉을 구사하는 5인조 그룹 Perigo가 대망의 데뷔앨범 "Azimat"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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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틴에이저들로 구성된 E.L&P 형태의 trio 진보그룹 Latte E Miele

프랑스
 1972년도 프랑스의 록계는 그리 활발하지는 않았는데 수퍼그룹 Ange가 데뷔앨범 "Caricatures"를, Gong이 "Continetal Circus"를 발표했다.
 
그 밖의 나라

스페인 클래식 악기를 기반으로 한 스페인 초기 록의 대표그룹 Fusion이 데뷔앨범을 발표했다.


네덜란드 평론가들로 부터 극찬을 받았던 Earth & Fire의 "Song of the Marching Children" (두번째 LP)과 Focus의 "Focus 3"가 발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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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의 Earth & Fire


 
덴마크 Secret Oyster가 레코드 데뷔를 했고 Jumpher Greene 또한 "Friendship"으로 데뷔를 했다.

핀란드 Wigwam의 멤버인 Jim Pembroke가 "Wicked Ivory"란 타이틀로 데뷔를 했다.

 
 
출처:http://gpr2425.hihome.com

Posted by 겨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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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netsbestsites.info/n/ BlogIcon city oak thousand 2007.07.22 2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수한 일! 감사!

  2. Favicon of http://sexolive.net/vids/depot-generator-home BlogIcon depot generator home 2007.10.18 05: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보세요, 아주 좋은 위치!

  3. Favicon of http://hot-girlz2008.com/katy-isd-calendar BlogIcon katy isd calendar 2008.03.13 06: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 경이롭 위치를 위해 많게의 감사!

  4. Favicon of http://nude-sexy-girls.net/sel/swim-birthday-girl BlogIcon swim birthday girl 2008.05.23 04: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배웠다 매우…

  5. Favicon of http://youhotalbum.net/vids/relena-hentai BlogIcon relena hentai 2008.05.23 0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수한 위치! 많은 감사.

월간팝송 1984년 8월호,  프로그레시브 황금기 Trilogy (제1부 1969 -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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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nk Floyd의 "Atom Heart Monther"에 편곡자겸 멜러디 작곡가로 참여했었던 Ron Geesin! 그의 사회 풍자 수필집 'Fallables'(Butter & Tanner Ltd, Forme & London Press 1975)를 펼치면 이런 글귀가 나온다. "몇몇 사람들이 나에게 미쳤다고 하는데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지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미쳐 있다고....."
 음악을 열광적으로 사랑하는 Music Mania라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글귀라고 생각된다(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 자신도 남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욱 더 음악을 사랑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니까....).
 우리의 것이 아닌 남의 나라 음악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약간 부끄럽긴 하지만 우리들의 음악적 빈 공간을 메꾸기 위해서는 그들의 음악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듣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깊숙히 탐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주위에 존재하고 있는 방송이나 책속에서 자주 접하게 되면서 한편으로는 우리의 주체의식이 점점 식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도 해보게 된다. 더우기 우리들은 남의 음악을 탐구하는데 있어서 지나친 편식을 해왔으며 탐구하는 자세의 기본정신을 망각하고 그들의 음악을 무조건 과대평가하거나 자기 취향에 따라 악평가하는 일도 적지 않았으며 소홀히 지나쳐버린 것도 수없이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 "프로그레시브 황금기"라는 공간에서 만큼은 충실한 자료를 토대로 객관적이면서도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그동안 우리가 소홀히 넘어갔던 부분을 중점적으로 써내려갈까 한다.
 특히 "음악은 영혼을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는다. 다만 영혼을 자극하는 힘을 갖고 있다."라는 톨스토이의 명언과 "모든 음악을 다접해보도록 노력하라"는 여러 선배들의 충고를 그냥 지나쳐 버리는 일이 없도록 심혈을 기울여 보았다.

성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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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k Floyd의'Atom heart Mother'에게스트로 참가했던Ron Geesin의 수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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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그룹It's A  Beautiful Day의 데뷔 앨범. <White Bird>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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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 Crimson의 데뷔앨범 속 그림 손 모양이 부처와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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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에 발매됐던 Genesis앨범의 재발매(1974) 레코드 "From Genesiss To Revelation".
제네시스의 대중적인 데뷔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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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 Der Graf의 최후의
 스테이지를 담은 마지막 앨범 "Vital"
 








우리는 벌써부터 관심을 가져야 했을 이러한 음악들을 1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다시 이해하려 한다면 많은 시대 착오가 일어날 가능성도 크지만, 우리의 신선한 음악 감각으로 그 시대착오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해 본다.
 그 당시 우리들은 미국 음악이라는 한 우물을 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주위에 많은 물줄기가 있었다는 것을 미처 모르고 있었다(그 많은 물줄기 속에 달콤하고 짜릿한 그 무엇인가가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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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1960년대 말 미국의 Rock은 사이키델릭 록(Psychedelic Rock)과 히피 운동(Hippie Movement) 속에 탄생한 샌프란시스코 사운드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1960년대를 총결산하는 1969년 미국의 록계는 커다란 사건이 많았는데 8월에 개최되었던 최대 규모의 우드스탁 훼스티벌(Wood- Stock Music & Art Festival)을 비롯해서 Atlanta Pops Festival(7월), Texas International Pop Festival(8월) 등이 당시의 상황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진보적인 성격을 띠었던 그룹으로1967년 7월에 데뷔했던 Vanilla Fudge가 3장의 앨범(데뷔 앨범과 "The Beat Goes On", "Renais- sance")을 내놓은 후 4번째 앨범"NearTheBegining"을 발표하고 있었고, 바이얼린 주자 David Laflamrine이 이끄는 샌프란시스코 그룹 It's A Beautiful Day가 대망의 데뷔앨범을 내 놓았다.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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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fred Mann이 이끄는 free jazz project Chapter Three의 두번째 앨범이자 최후의 앨범. 백인 인형들 속에 있는 흑인 인형 하나는 백인음악 속의재즈를 뜻한다.

영국에서는 Mafred Mann Cha- pter III와 같은 free jazz 지향의 Project가 등장하면서 재즈 프로그래시브의 길을 열어주고 있었으며Pink Floyd와 같은 사이키델릭 지향의 그룹들이 완벽한 프로그레시브 그룹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리더였던 Syd Barrett을 잃은 Pink Floyd는 David Gilmour를 정식 멤버로 받아들여 그룹을 재정비하고 완전히 프로그레시브 영역으로 진로를 바꾸면서 두번째 앨범 "A Saucerful of secrets", 그리고 무관객 Live와 실험적인 사운드를 담은 "Ummagumma"를 발표했다.
1970년대의 영국 프로그레시브를 장악하게 될 Tes가 레코드 데뷔를했으며 전세계를 놀라게 했던 프로그레시브의 대부(代父) King crimson이 불후의 데뷔 명작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을 발표했다(당시 이앨범은 데뷔 앨범으로서는 보기 드문 커다란 성공작이었다.) 또한 유럽의 여러 진보그룹(특히 이태리 그룹)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게되는 Genessis가 평범한 앨범인 "From Genessis To Revelotion" 으로 데뷔를 했다. Moddy Blues도 평범한 록 사운드에서 탈피해서 1967년부터 ("Days of future Past")  클래식을 기반으로 한 전원적인 사운드를 펼치기 시작 했으며, 5번째 앨범인 "On the threshold of a dream"과 6번째 앨범인 "To your children's Children"을 발표했다.
 영국 언더그라운드의 왕좌를 누리고 있던 Van Der Greaf Generator (1967년 Manchester University에서 결성)는 데뷔앨범 "Aerosol Grey Machine"응 발표한 후 Charisma Label과 계약을 맺고 " The Least We Can Do Is Wave To Each Other"를 녹음 했다. 그리고 훌륫 주자 Ian Anderson이 이끄는 Jethro tull은 데뷔앨범을 발표한지 1년만에 싱글 <Living In The Past>를 성공시키고 두 번째 앨범 <Stand Up>을 발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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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e의 다섯번째 앨범이며 공식적인 최후의 앨범

당시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계는 개성이 뚜렷한 그룹들이 등장 했으며 악기의 발달과 레코딩 기술의 개발로 말미암아 침체기에 빠져있던 영국의 레코드 산업계를 다시 한번 들뜨게 했다. 그리고 클래식과 록의 융합을 실현했던 Keith Emerson이 이끄는 Nice의 두번째 앨범 "Ars Longa Vita Brevis"와 세번째 앨범 "Nice", 네번째 앨범 "Five Bridge"를 완성해서 그들의 전성기인 1969년에 3장의 앨범을 만들어 내놓는 저력을 과시했다. 당시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계는 유럽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로 뻗어나갈 정도로 거대한 세력이었으며, 프로그레시브 록계의 최강국임을 확인시켜주었다.
 당시 영국을 제외한 여러 유럽 국가에서는 미국, 영국의 록적인 감각과 독특한 음악 감각을 융합한 새로운 형태의 록 그룹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독일
독일의 록계에는 1969년을 기점으로 많은  그룹이 탄생했다. 이미 결성해서 활약하던 여러 그룹들은 새로운 악기와 멤버를 보강해서 그룹을 재정비하고 사운드를 강화시키는 뜻 깊은 시기 였었다. 이때 독일의 록은 미국과 영국의 록에 영향을 받은 사이키델릭 사운드가 주를 이루고 있었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독특한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났다.(당시의 사운드는 매우 강력하면서도 복잡한 느낌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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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gerine Dream의 스테이지

 1월에 잠시 해산했었던 Tangerine Dream은 Klaus Schulze를 받아들여 그룹을 재결성 했다. 그들은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영국 레이블과 계약이 좌절되자 동일 레이블인 Ohr와 계약하고 첫 앨범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클래식 기타 교육을 받으면서 Pop Combo를 시도 했었던 기타리스트 Manuel Göttsching은 Blues Band를 결성해서 활약했고, 앞으로 독일 록계에 신성함을 불어 넣어 줄 Popol Vuh의 리더 Frorian Fricke는 그룹 결성에 앞서 커다란 Moog Synthesizer를 구입했다.
 정치와 예술의 대립으로 독일 최대의 록 훼스티발인 "Internationalen Essener Song Tage"에 참가하기 직전 Amon Düül I과 Amon Düül II로 분열 됐다.
 Amon Düül I은 정치활동과 함께 "Psychedelic Underground"와 "BasF"로부터 편집앨범 "Disaster" 를 발표했고,  Amon Düül II는 "Phallus Dei"를 발표 했다.
  현대 전위음악가 Karlheinz Stochausen의 제자인 Irmin Schmidt와 Holger Czukay에 의해 결성된 Can은 그룹 결성 1년 만에 데뷔앨범을 제작하려 했으나 레코드 회사의 거절로 말미암아 데뷔앨범 "Monster Movie"를 자비로 Music Factory 레이블을 통해 한정판 600매를 만들어 냈다. Col 앨범은 1969년 겨울에 United Artist 레이블을 통해 재발매되기 전까지 당시 팬들 간에 60마르크 이상의 높은 가격으로 암거래되고 있었다. 정신병으로 보컬리스트 Malcolm Moony가 탈퇴함으로서 Can은 또 한 차레의 위기를 맞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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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my Grashow가 목판화로만들어 준 Jethro Tull의 두번째 앨범

또한 독일 록계에 중요한 시기인 1969년 여름에는 Jazz, Free Music, Underground 계통의 록, 사이키델릭 록 연주자들이 서로 다른 경력을 가지고 교류를 시작,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종합해서 작품세계에 반영했는데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그룹이 Embryo라는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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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사이키델릭 그룹 Guru Guru의 리더 Mani Neumeier

1967년에 결성돤 이후 Free Jazz를 추구하던 Guru Guru는 정식 이름으로 2년만에 데뷔를 했다. 이들은 Mani Neumeier를 주축으로 사이키델릭하면서도 강력한 사운드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Tangerine Dream의 드러머 Christoph Franke가 재적해 있던 그룹 Agitation Free(1967년 여름에 결성)는 겨울에 Mixed Media Show "Inter Media"를 상연하기도 했다. 그외에도 우리에게 잘알려진 Neckter가 결성을 했고  Kraftwerk의 두명의 창시자인 Ralf Hütter와  Florian Schneider는 보컬리스트 Basil Hammoudi등 3명의 뮤지션과 함께Organisation이란 그룹명으로"Tone Float"라는 앨범을 만들었다.
 
이태리
 당시 이태리는 상업성보다는 음악성을 내세우는 마이너 레이블(Minor Label)의 탄생을 위해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록 사운드 자체는 대체로 단순하면서도 아름답고 그들의 전통적인 Canzone풍의 요소를 담고있었다.(당시의 상황은 월간팝송 6월호 P.63참조[기사 P11])
 Italian Rock의 창시자 중 한사람인 Lucio Battisti는 남들에게 음악을 주어 성공했던 과거의 경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곡인 <Acqua Azzurra, Acqua Chiara>를 불러 훼스티발에서 대상을 받았으며 데뷔앨범을 발표해서 당시 이태리 음악계를 휩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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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Trolls의 최고 걸작이라고 평가 받는

이태리 최초의 프로그레시브 록그룹이라고 불리우는 Formula 3가Numero Uno 레이블을 통해 데뷔했다. 1966년에 록그룹으로 출발했던 PFM은 Formula3의 Alberto Radius와 교류를 갖고 Lucio Battisti를 알게 됐다. 1966년에 결성됐던 이태리의 수퍼그룹 New Trolls는 다른 그룹들에 비해 매우 활동적이었는데 1967년에 싱글 <Sensazion>을 차트에 올려 놓았고 데뷔앨범인 "Senza Orario Senza Bandiera"를 발표했으며 두번째 앨범 제작에 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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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ero Uno 레이블 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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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의 미발표 Live 곡들을담은 앨범으로 Ange의 초창기음악을 접할 수 있다.


 


 



 

프랑스
프랑스록계에 있어서 1969년은 매우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1970년대의 프랑스 프로그레시브 록계를 이끌어 갈 2대 그룹이 이 해에 탄생을 보기 때문이다. 그 하나가 키보드 주자들인 Decamps 형제를 주축으로 결성된 Ange이고, 다른 하나가 드러머 Christan Vander에 의해서 결정된 Magma이다.  당시 Ange의 결성은 프랑스 록계에 커다란 화제거리였었다. 결성된지 4개월 만에 Est Republicatin지에서 그들을 평가 하기를 "Le Premier(OpéraPop) Fransais Présenté Demain au Centre Cultural de la Présenté" (최초로 프랑스가 내놓을만한 진보적인 -오페라 팝- 중심문화의 묘목)이라고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Magama의 결성과 운명은 순탄치 못했었다. 그룹이 결성돤 후 40차례 이상의 잦은 멤버교체가 있었을 정도로 매우 불안정했으며 평론가들과 관중들에게 냉대를 받았었다. 하지만 Magma는 여기에 굽히지 않고 후에 실험적인 록그룹으로 커다란 명성을 얻어냈다.
  당시 프랑스의 록계는 영국과 미국을 모방한 재즈와 사이키델릭 록사운드 속에 그들의 전통적인 샹송을 섞는 이색적인 음악을 만들어 냈고, 다분히 실험적인 경향을 띠고 있었다.(다른 나라에 비해 프랑스의 록은 음침하고 강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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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록계의 수퍼그룹 Magma의 마스코트

 * 1969년 미국,영국,독일,이태리,프랑스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뚜렷한 특징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한다.
 1970
 
 1960년대 말에 탄생하기 시작한 세계 각처의 수많은 프로그레시브 그룹들은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연주력 향상, 녹음기술과 악기의 발달로 그들의 최전성기를 맞게 된다.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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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미국의 프로그레시브 팝 감각을 약간이나마 들을 수 있었던 N.Y. R'nRoll Emsemble,J.S Bach의 Brandenburg를편곡하여 연주했다.

미국의 록계에 있어 1970년은 다사다나한 한 해였다.
 Jimi Hendrix의 사망(9월 18일, 기타의 천재라 불리우던 그는 모국인 미국보다 영국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janis Joplin의 사망 (10월
 4일, 마지막 작품 "Pearl"을 남기고 록의 여왕은 사라 졌다) 등이 60년대 말 병폐문화(마약문화)의 비극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또한 하드록, 프로그레시브록 등의 영국음악 강세에 눌려 프로그레시브 부문은 말할 것도 없고 남부음악과 샌프란시스코 음악의 일부분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침체기였다.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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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 Palmer가 재적 했었던 Atomic Rooster의 데뷔앨범

1970년에 들어서면서 그동안 멤버들간의 분열을 보여오던 Beatles가 곧 해산할 것을 선언함으로써 영국 록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다 주었지만 하드록과 함께 프로그레시브 계열에선 활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Keith Emerson이 이끌었던 Nice는 그들의 마지막 앨범인 "Elegy"를 발표 했고 Carl Palmer가 재적했던 Atomic Rooster는 데뷔앨범을 발표했다. 또한 Greg Lake의 King Crimson에서의 마지막 목소리가 담긴 "In The Wake of Poseidon"이 발표됐으며 Emerson lake & Palmer가 결성되어 데뷔앨범을 발표했다.
 [##_'1L|bk56.jpg|width="178"_##]가 수록되어 있는 Curved Air의 데뷔 앨범 ' 했었다.? 참가 Jabson도 Eddi 재적했었고,후에 Monkman이 Francis 이그룹에는 Airconditioning?.>영국 뿐만 아니라 미국 등지의 여러 음악지에서 대호명을 받았던 Pink Floyd의 "Atom Heart Mother"가 발매됐고 Darry1 Way와 여성 보컬리스트 Sonja Kristina가 이끄는 실험성을 살린 진보그룹 Curved Air가 데뷔앨범 "Airconditioning"(Sky가 리바이벌 한 <Vivaldi> 수록)을 발표했다.
 Genessis가 악기를 강화, 프로그레시브 지향의 그룹으로 완전히  탈바꿈해서 <The Knite>가 수록된 걸작 - 두번째 앨범 "Trespass"를 발표했고, Yes 또한 연주력 향상으로 프로그레시브 지향의 두 번째 앨범 "Time And A Word"를 발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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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k Wakeman이 게스트로 참가했던 Strawbs의 Dragonfly

Strawbs는 Rick Wakeman을 게스트로 <The Vision of the lady of the lake>라는 대곡을 완성, 비로서 프로그레시브 영역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영국의 Jazz Progressive를 이끌어 왔던 Soft Machine은 "Third" 앨범을 발표했으며, 또한 Free Jazz의 묘미를 가득 풍겨주었던 Manfred Mann Chapter Three가 Volume Two  앨범을 발표했다.(대곡 "Happy Being Me"는 Free Jazz의 극치를 맛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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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ft Machine의

독일
 당시 독일의 록계 공통점은 미국, 영국의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영향과 실험적인 현대 음악의 계승으로 매우 복잡하고 난해한 음악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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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Ohr 레이블 산화의Pilz 레이블.회사의 상징인 버섯이 인상적이다.

Tangerine Dream은 대망의 데뷔앨범  "Electronic Meditation"은 Ohr 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했다. 그러나 Klaus Schulz는 결혼과 자신의 공부, Ash Ra Tempel의 가입 등등으로 그룹을 떠났고 그의 후임 으로 Agitation Free의 젊은 재즈 드러머 Christoph Franke를 가입 시켰다(Klaus Schulz는 베를린의 공과대학에서 독일문학, 심리학, 음악[실험적인 작곡법]등을 공부했다.
 Florian Fricke는 마야 고대문서의 이름을 그룹명으로 한 Popol Vuh를 결성했다.(Florian Fricke는 1959~1963년 사이에 뮌휀과 후라이브루크에서 음악을 공부하다가Electronic에 흥미를 가지고 그룹 결성을 꿈꾸어 왔었다.
 Music Express지에서 Amon Düül II는 "최고 인기 언더그라운드 그룹"과 Blues 부문 2위로 선정됐으며 두번째 앨범 "Yeti"는 "Album of the Year"로 선정됐다. 반면 Amon Düül I은 최후의 앨범 "Paradies Warts Düül을 발표했다. 사이키델릭 록을 지향하는 Guru Guru는 UFO라는 데뷔앨범을 발표 했다(Sounds지는 Guru Guru가 연주력이 향상되었으며 리듬이 진보적이라는 것을 중요시하면서 이들이 Cream과 매우 비슷한 스타일로 연주하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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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의 마지막 앨범

Can은 영화음악의 전문가들로서 성공을 보았으며 그들의 레코드 회사가 두번째 앨범인 "Sound Tracks"를 발표했다(이 앨범에는 "Dead Lock", "Cream","Mëdchen mit Gewalt", Deep End", "Bottom"의 주제곡을 담고 있다). Music Express지는 Can을 인기 언더그라운드 그룹부문 4위, 블루스 부문 3위로 선출하고 데뷔앨범 "Monster Movie"를 "Best Seller 6걸) 앨범으로 선정했다.
 그 외에도 실험적이면서 Free Jazz 스타일의 언더그라움드 그룹 Annexus Quam이 데뷔앨범을 발표했고, 30종류의 악기를 동원시키는 스케일 큰 그룹으로 정치색을 가미한 Floh De Cologne (1969년 데뷔)가 두번째 앨범 "Fliebband Babys Beat-Show"를 발표했고, Inga Rumpf가 주축이 된 Frumpy가 데뷔앨범 "All Will be Changed"를 내 놓았다. 그리고 5인조 그룹인 Sweet Smoke도 "Jast A Poke"란 앨범으로 데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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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ol Vuh. 왼쪽의 여성이 한국인 소프라노 가수 정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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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의 PFM


 



 


 



이태리
 당시 이태리의 록사운드는 클래식처럼 웅장하면서도 심오한 사운드가 주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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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nula 3의 리더였던 Alberto Radius의 솔로 앨범

1969년 Lucio Battist와 Mogol에 의해 발족됐던 Numero Uno레코드로부터 이태리의 본격화 록 그룹인 Formula 3가 데뷔앨범 "Dies Irae" (노한 날)을 발표 했다. 이태리의 수퍼 그룹 New Trolls는 앨범 "New trolls"와 최고 걸작앨범 "Concerto Grosso Per I"를 발표 했는데 "Concerto Grosso Per I"  는 Luis Enriquez Bacalor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의 도움으로 웅장하면서도 박력넘치는, 거기에 아름다움까지 함축한 훌륭한 작품이었다.(이 앨범은 영화 "La Vittima Designata"의 오리지날 사운드트랙 앨범이며 Jimi Hendrix를 위한 곡도 들어 있다).
 그밖에 II Balletto Di Bronzo가 심오한 데뷔앨범 "Sirio 2222"를 발표했고 키보드 주자 Giorgio Usai를 주축으로 한 Nuova Idea가 미완성한 "In The Beginning"이란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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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오한 음악을 펼치는 Il Balletto Di Bronzo

앨범을 발표했다.
 이태리의 베테런급 그룹인 Le Orme가 데뷔앨범 "Ad Glorian"과 두번째 앨범 "Láurora"를 발표한 이후 Philips로 이적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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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기 Gong


우리가 생각하던 기존 샹송에서 완전히 탈피한 획기적인 프랑스 록은 강력하면서도 그 속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멋이 숨쉬고 있다.
 Ange는 Est Republicain지에서 대호평을 받으면서 45차례의 간소한 순회공연을 마쳤다.(France pop music 誌 1970.11.28) 그들의 데뷔성공작 <General Machin>(Van Morrison의 <Gloria>와 비슷)을 비롯해서 여러 곡들이 기존 샹송의 인식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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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et Gong 철학을 창조해낸 Daevid Allen

정신적으로 Daevid Allen's Gong의 유일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 "Magick Brother"가 발표되었다(호주인인 Daevid Allen은 1961년 영국으로 건너가서 이듬해에 Robert Wyatt를 만났고 Canterbury Family 일원들과 Soft Machine은 프랑스 여행을 하게 되는데 이때 Daevid Allen은  Soft Machine을 떠나 프랑스의 유능한 뮤지션들과 새로운 그룹을 구상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Gong이란 그룹이다) 사실 Daevid Allen은 9인 편성(실제로는 15명 정도 였다)으로 앨범을 발표하고 끄룹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초반기의 Gong에 자신의 곡들을 주어 Project형식의 그룹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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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ke Hugg의 애절한 보컬이담겨 있는 Manfred Mann Chapter Three의 데뷔앨범



그 밖의 나라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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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륫을 부는 Focus의 리더 Thijs Van Leer와 기타리스트 Jan Akkerman


당시 Focus는 <Spoke The Lord Creator> 뒤늦게6번째 앨범인 "Ship of Memories"앨범에 수록 되었던 곡)을 작곡 했다(멜러디 부분은 리더인 Thijs Van Leer가 도맡았다). 그리고 드러머 Hans Eric Cleuver 대신 Pierre Van Der Linden이, 베이스 주자 Martin Dresden 대신에 Cyril Havermans가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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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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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의 키보드 주자를 포함, 총 6명의 뮤지션과 1명의 라이브 엔지니어로 구성된 Eela Craig, 이들은 모두 교사라는 것이 놀랍다.


T.V. 세션으로 만나게 된 여러명의 음악인들이 서로 같은 뜻을 지니고 Eela Craig라는 수퍼 그룹을 결성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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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19세기 천재 기타리스트를 보유한 록 트리오 그룹 November(Cream의 영향을 받은 그룹), 역시 하드 록 트리오인 Opus III가 등장 했다.
 또한 스웨덴을 대표하는 북구 전통파 재즈 록 그룹 Made in Sweden이 모습을 나타냈다.
 핀란드
에선 Wigwan이 두번째 앨범 "Tombstone Valentine"을, 덴마크에선 burnin Red Ivanhoe가 두번째 앨범을 각각 발표했다.

 
 
 
 
 
 

출처:http://gpr2425.hihome.com

Posted by 겨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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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redwetsex.net/go/amputee-ladies BlogIcon amputee ladies 2007.10.18 0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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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hot-girls-2008.net/queer-as-folk-actor BlogIcon queer as folk actor 2008.03.13 06: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수한과 아주 도움이 되는!

  3. Favicon of http://bikinierosbliss.net/go/reason-for-loss-of-libido BlogIcon reason for loss of libido 2008.05.23 05: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대한 축하!경이롭 위치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