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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ILD AND EXCITING
2. TWILLIGHT DREAMER
3. RUBY IS THE ONE
4. YOU KNOW THE WAY
5. VIVID SHADY LAND
6. 21st CENTURY SHOW
7. SEASONS
8. LOVE QUIVERS
9. WHAT'S YOUR NAME
(BONUS TRACKS)
10.MECHENICAL LOVER
11. HAZY PARDISE
12. MEMORIES
13. INVITATION
14. FROM THE END TILL THE BEGINNING
15. LOST FOREVER
16. SONG OF THE MARCHING CHILDREN. SINGLE VERSION
17. THANKS FOR THE LOVE
18. WHAT DIFFERENCE DOES IT MAKE  
 
 
 
 
EARTH & FIRE - Earth & Fire
60년대 말, Golden Earing을 필두로 한 네덜란드의 팝 시장 공략은 Shocking Blue의 최해 히트곡인 (Venus)로 그 절정을 맞아 Dutch Invasion이라는 가치 아래 많은 그룹들이 영-미의 팝 시장을 노크하기 시작했다. 팝뿐만이 아니라 당시 주종을 이루고 있었던 싸이키델릭 분야에서도 Group 1850을 비롯해 Cuby + Blues를 위시한 많은 팀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아트록 또한 예외일 수 없었는데, Thijs Van Leer가 이끌었던 Focus. 아름다운 멜로디를 선사했던 Kayak 그리고 Jerney Kaagman이라는 시원스런 보컬의 소유자가 몸담았던 Earth & Fire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팀들이다. 그다지 현학적이지 않으면서도 아트록일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사운드를 우리들에게 들려주었던 (Fanfare)의 주인공 Earth & Fire. 몇해전 LP로 공개되었던 2집 「Song Of The Marching Children」과 3집 「Atlantis」에 이어 다양한 커버로 인해 콜렉터들의 수집 대상이었던 Earth & Fire의 데뷔작이 이번에 다시 라이센스로 발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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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Atlantis
02. Maybe Tomorrow.Maybe Tonight
03. Interlude
04. Fanfare
05. Theme From Atlantis
06. Love, Please Close The Door

Earth & Fire는 쌍둥이 형제인 Chris Koerts(기타, 보컬)과 Gerard Koets(키보드)를 중심으로 여성 보컬리스트인 Jerney Kaagman, 베이스 주자로 Hans Ziech 그리고 드러머에 Ton Van Der Kley의 5인조로 출발했다. 대부분의 그룹들이 그러하듯이 이들 역시 데뷔 당시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주로 클럽과 야외에서 열리는 오픈 페스티벌 등에 참가하여 팬들에게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활동의 대가로 이들은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데뷔 싱글인 (Seasons / Hazy Paradise)의 두곡이 담긴 싱글을 발표하였다. (Seasons)는 Golden Earing의 보조 그룹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데뷔싱글 발매후 얼마있지 않아 이들은 두 번째 싱글 작품인 (Ruby Is The One / Mechanical Lover)를 공개하였다. 이 싱글은 70년 6월 히트 챠트에 진입하기도 했다. 두장의 싱글 발표로 이들은 착실히 그 가능성으로의 도전을 해나갔다. 결국 이들의 그러한 노력일 결실을 맺어 71년 봄, 동명 타이틀의 데뷔 앨범이 발표되었다. 데뷔작은 또한 여러 가지 형태로 발매된 커버로 인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영국 음반은 Roger Dean이 담당한 Gimmix Cover로 되어 있었고 또한 본국인 네덜란드와 일본 등에서 발매된 음반은 종이성냥의 변형커버로 되어 있어 콜렉터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했던 앨범이기도 했다. 이들의 음악을 접할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이 있는데, 언제 들어도 신선하다라는 느낌이다. 물론 Jerney의 보컬이 맑은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사운드 자체의 깨끗함에서 받는 산뜻함이 앞선다. 총 아홉곡이 실려있는 이들의 데뷔작을 듣고 있노라면 진짜 이 곡들이 70년도에 만들어졌을까라는 의심이 갈 정도로 2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이 시점에서 들어도 전혀 뒤쳐지지 않는 감각이 담겨있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프로그레시브 심포닉 록 이라는 용어를 완벽한 사운드로 보여주고 있다.
굳이 수록곡 전체의 감상을 쓰는 것보다 더 이 CD에서는 중요한 것이 있는데 다른 아닌 국내 초유의 일로서 무려 아홉곡의 보너스 트랙이 삽입된 점이다. 다시 말하면 이 한 장의 CD는 더블 앨범 분량의 곡을 담고 있다. 70여분이 넘는 수록곡은 듣는 이로 하여금 본전 생각 자체를 원천봉쇄하고 있다. 보너스로 추가된 아홉곡은 미공개 트랙이 아니라 이들이 70년부터 76년까지 발매되었던 싱글 가운데 좋은 곡을 모아 재수록한 것이다. 초창기의 심포닉한 면이 점점 팝퓰러한 분위기로 연결되는 것을 이 보너스 트랙을 통해 알 수 있다.

다시말해 이들 활동의 최절정기 시절의 다양한 사운드를 맛볼 수 있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겠다. 세련된 감각, 군더더기 없는 참신하고 선명한 심포닉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는 Earth & Fire는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최고의 그룹임을 이 작품에서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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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arnaval Of the Animals
2. Ebbtide
3. Storm and Thunder
4. In The Mountains
5. Memories
6. Song of the Marching Children
a)Theme of the Marching Children
b)Openning of the Seal
c)Childhood
d)Affliction
e)Damnation
f)Purification
g)The March
7. From the End till the Beginnig
 
 
 
 
 
EARTH & FIRE - Song of the Marching Children
Earth and Fire의 데뷰
Earth and Fire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80년대 초, MBC-FM 음악이 흐르는 밤에라는 프로그램이었 다.
당시, 특집으로 엮어졌던 "Music of the sphere Harmony of the sphere"라는 우주음악특집(1983년 11월 11일)으로 부터 Earth & Fire의 앨범 "Atlantis"가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맑고 깨끗한 연주와 더불어 Jerney Kaagman의 신선하고 매력적인 목소리 는 이내 국내 Progressive Rock 팬들을 매료시켰고 당시, 짧은 기간동안 청취자들의 높은 리퀘스트 점유율을 확보하게 되었다. Earth and Fire는 1970년 1월에 결성되었다. 네덜란드 그룹 Shocking Blue가 Venus라는 곡으로 세계음악시장을 장 악하고 있을 무렴, Earth and Fire는 'Seasons'라는 데뷰싱글을 발표, 예상외의 성공을 거두었고 이 싱글은 그들의 미래를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 주었다.

당시, 네덜란드의 Super Group으로 군림했던 Golden Earring의 리더 Ceorpe Kooymans에 의해서 발탁된 Earth and Fire는 Golden Earring의 보조 그룹으로 활약하고 있었고, 그들의 데뷰 싱글 'Seasons'는 바로 George Kooymans가 Earth and Fire를 위해 만들어준 곡이었다. 소녀티를 벗어나지 못한 Jerney Kaagman의 애띤-청순 한 목소리가 담긴 'Seasons'는 남성리드 보컬로 시작되는 평범한 Pop number로 우리에게 쉽게 친숙해질 수 있는 정겨운 리듬 으로 짧게 구성 되어 있다. 드럼과 Guitar가 주도하는 단순한 악기 편성으로 이루어져 있는 곡으로 혼성보컬속에서 희미하게 들리 던 Jemey Kaagman의 귀엽고 청순한 보컬은 후반부에서 Guitar반주와 함께 솔로로 두각을 나타낸다. 그들의 두번째 싱글인 'Ruby is the One'은 데뷰 싱글에 이어, 1970년 6월에 Hit했다. 데뷰 싱글 'Seasons'와는 달리 Jemey Kaagman의 리드 보컬이 주도하는 'Ruby is the One'은 역시 미,영국의 Pop Rock의 연주를 벗어나지 못한 대중적인 곡으로 Electric Guitar 와 Drum 연주로만 일관되는 단순한 연주패턴, 여기에 반복되는 짤막한 가사들로 이루어진 작품이있다. 이곡의 히트와 함께 Earth and Fire는 대중으로 부터의 인기를 착실하게 쌓아 나가고 있었다.

본국인 네덜란드 뿐만 아니라 세계음악시장도 신인그 룹 Earth and Fire에 대하여 커다란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주시속에서 1971년봄, Earth and Fire의 데뷰앨범이 네 덜란드, 영국, 이태리, 미국, 캐나다 그리고 일본에서 발매되었다. 특히, 영국에서 발매된 앨범의 커버는 그룹 Yes의 많은 앨범 을 담당했었던, 우리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RogerDean의 환상적인 그림이 담겨져 있는데 화려한 Illustration으로 입 체감 있게 만들어진 이 쟈켓은 지금까지도 고가(영국에서 200파운드이상의 가격으로 거래)로 메니어들 사이에서 거래되고 있다. 네덜란드와 이태리 그리고 일본음반은 종이성냥의 형태로된 이색적인 변형쟈켓으로 제작되었고, 이태리와 일본음반은 네덜란드커 버와는 다른 사진 이 담겨있다.
미국과 캐나다음반은 이태리음반과는 같으나 변형되지 않는 싱글쟈켓으로 제작되었다. 이렇게 여 러가지 커버로 제작된 Earth and Fire 데뷰앨범은 앞서 싱글로 발표되었던 네곡을 담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의 Pop Rock을 들려주고 있다. 첫번째 앨범은 친근감을 던져주는 곡으로 가득차 있다. 물론, Progressive Rock 그룹으로서 미래의 변신을 예고하는 곡이 한곡 수록되어 있는데, 'Love Quiver'라는 곡으로 박력넘치는 Gerard Koerts의 오르간 연주가 정말 일 품이다. 곧이어, 데뷰앨범에 수록되었던 빠른템포의 곡 '21st Century Show'가 싱글로 Cut되어 발매되었다.


Earth and Fire의 최고 걸작
"SONG OF THE MARCHING CHILDRE"
데뷰앨범의 발표후, Earth and Fire는 커다란 음악적 변혁기를 맞게된다. 당시 Earth and Fire의 출신지인 암스텔담은 미, 영국의 Hippie문화(Psychedelic Culture Flower People)가 가장 성행하던 유럽의 중심지였다. 미국과 유럽각지에서 많은 젊 은이들이 모여들었던 암스텔담은 세계적인 히피문화의 중심지가 되어 있었다. 따라서 Earth and Fire도 자연스럽게 Flower Children의 대열속에 서게 되었으며, 그들의 음악도 급속도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과정속에서 Classic 기초가 단단 했던 Earth and Fire는 Progressive Rock 지향의 그룹으로 탈바꿈하면서 음악의 대변 혁기를 맞이하게 된다. 사실상, 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쌍둥이 Koerts형제의 상반된 음악성때문에 이러한 극적인 음악적변화는 그리 쉽지는 않았다. 이상하게 도 Keyboards류를 다루고 있는 Gerard Koerts는 PoP 음악을 선호했고, Lead Guitar를 담당하고 있는 Chris Koerts는 Progressive Rock을 좋아했다.

그러나, 시대적 조류에 따라 Earth and Fire는 새로운 음악세계 즉, Chris가 추구하는 Progressive Rock에 도전하게 된다. (후에, Earth and Fire는 다섯번째 앨범부터 Gerard Koerts가 지향하는 Pop적인 방향 으로 흐르게 되고 Chris Koerts는 그 룹을 등지게 되는 비극을 낳게 된다).
화려한 각양각색의 커버로 발매되었던 데뷰앨범과는 달리, 두번째 앨범은 검은색 커버뒤에 단순하계 황금글씨로 그룰명과 앨범타 이틀들이 새겨져 있다(독일 음반은 반대로 황색커버에 검은객 글씨로 되어있다).
데뷰앨범의 커버에 매료되었던 Earth and Fire 팬들은 아마도 이 단순한 커버디자인에 크게 실망을 했을런지는 모르나 일단, 커버를 열게되면 상반된 기괴한 그림들이 복 잡하게 얽혀져 있는 화려한 그림들을 커버안에서 만나게 된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흥미로운 내용이 그속에 담겨져 있다, 원색들 로 가득차 있는 커버안쪽의 그림은 눈이 박혀 있는 구름(원폭)을 연상시키는 결정체로 부터 인류의 근원인 태아가 자라나고, 태 아로부터 어린이 그리고 어른으로 성숙되어 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그림속에는 종교적인 내용도 담겨져 있다. 계단 으로 이루어져 있는 구원의 길, 구세주가 계단끝예서 성서와 십자가를 들고 인간들을 구원하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다. 주위에는 강아지, 개구리, 무당벌레 그리고 나비등(자연들이)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계단위에는 구원받은 인간들이 자유로운 모습을 담 고 있으며, 그곳엔 거대한 유니콘의 상반신이 오래된 조각상처럼 무시무시한 분위기로 놓여 있으며, 바로 그옆 붉은 크리스마스 리본에는 이 앨범의 타이틀 "SONG OF THE MARCHING CHILDRE"이 노란 글씨로 적혀져 있다. 이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첫곡은 이솝우화와 같은 동화를 담은 '동물들의 축제(Carnaval Of the Animals)라는' 곡으로 밝은 분위기의 작품이다. 데뷰 앨범보다 성숙되고 세련된 Jerney Kaagman의 보컬을 들을 수 있으며, Gerard Koerts의 처음으로 깔리는 오르간 연주와 단 순한 리듬으로 반복되는 Ton V.D. Kleij의 드러밍이 이곡의 골격을 갖추고 있다. 첫곡처럼 짧은 곡구성의 Pop적인 작품으로 되 어 있는 두번째곡 '썰물(Ebbtide)'은 Jerney Kaagman의 보컬에 촛점을 두고 있는 작품으로 데뷰앨범에서 자주 접할 수 있었 던 Gerard Koerts의 훌륫연주를 듣게 된다. 중후한 오르간연주로 시작되는 세번째곡 '폭풍과 천등(Storm and Thunder)'은 앞의 Pop적인 두곡과는 전혀 다른 Gerard Koerts의 이색작이다. 이 앨범에서 첫번째로 등장하고 있는 Progressive Rock의 이 색작이다. 이 앨범에서 첫번째로 등장하고 있는 Progressive Rock작품으로 도입부분 부터 2분 30초동안 지속되는 오르간 솔로 가 끝나면 역시 무거운 분위기의 아름다운 Jerney Kaagman의 보컬이 이어진다. 그녀의 보컬은 이 곡에 담겨있는 여러 악기들 중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있는 천상의 명기로, 호소력이 넘적 흐른다. 전체적으로 가라앉은 분위기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이 곡속에서 여러악기 들이 조화롭고 드라마틱하게 연주되어지고 있다. 이 곡에서 처음으로 멜로트론 사운드가 도입되고 있다. 네번 째곡은 Chris Koerts가 만들어낸 최초의 연주작품으로 앨범뒷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의 불후의 명작-대곡 'Song of the Marching Children'을 예고하고 있는, 우리들의 긴장을 다소 풀어주는 Slow Rock넘버이다.

앨범 뒷면으로 넘어가기 전에, 여러분들은 낯설은 작품하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Side 1의 마지막곡으로 담겨있는 'Memories' 는 원래 이 앨범에는 수록되지 않았던 싱글곡으로, 국내 Earth and Fire 팬들을 위하여 Si-Wan Series기획팀이 보너스로 드 리는 작품이다. 웅장한 Melltron 음향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Memones'는 3분 20초의 짧은 곡이지만, 각멤버들의 역량이 최 대로 발휘되었던 숨겨진 걸작이다, 이 곡에서의 Jerney Kaagman의 보컬은 매우 맑고, 또한 극도로 고음으로 치닫는 그녀의 울부짖음을 들을 수 있다. 멜로트론음향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작품의 중후한 분위기를 감싸고 있다. 이 곡의 후반부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Chris Koerts의 멋진 Electric Guitar연주도 매우 돋보이지만, 서두에서 말미까지 꾸준히 템포를 늦추지 않고 있 는 Ton V.D. Kleij의드러밍도 훌륭하다.

앨범뒷면에서 우리는 적은 볼륨의 Synthesizer소리로 서서히 다가오는 대곡을 만나게 된다. 바로 이 앨범의 타이틀곡인 'Song of the Marching Children'이다. 모두 일곱개 부분으로 이루어진 18분 30초에 달하는 대곡이다.
담겨 있는 가사내용도 그 시대에 발맞추어 철학적이며 매우 심오한 시로 이루어져 있다. 앨범 뒷면에 가득 들어찬 내용을 음미하 면서 그리고 앨범 안쪽에 그려진 난해한 그림들을 감상하면서 이 곡을 듣게되면 우리는 독특한 음악적 체험을 맛보게 된다. 도입 부분인 '행진하는 어린이들의 테마'(Theme of the Marching Children)'는 단순하고 가벼운 멜로디에서 무거운 분위기로 급변 하는 Gerard Koerts의 건반예술로 우리들을 이끌고 있다. 이 도입부의 뒷편에서, 우리가 오른쪽 귀에 정신을 집중하게 되면 공 간을 퍼져나가는 시계추의 움직임과 그 소리를 감지할 수 있다. 시계추의 움직임 소리가 멈추고 나면, 이 대곡의 출입구가 웅장 하고 장엄한 소리와 함께 열리게 된다. 이 부분이 '봉인을 열다(Openning of the Seal)'이다.
Tape를 역방향으로 회전시키는 음향과 Harpsichord 소리를 닮은 신세사이져음향이 맑게 울려퍼지면서 잘게 끝을 맺는 출입구를 벗어나게 되면, 우리들은 이 앨범의 안쪽 커버예서 보았던 화려한 영상들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박력넘치는 연주, 노래와 함께 떠오른다.
이 부분이 세번 째 파트인 '어린시절(Childhood)'이다.
이 부분에서 Symphonic Rock Group으로 새롭게 변신한 Earth and Fire의 진면목 을 느낄 수 있다. 우리에게 음악적 긴장감을 던져주는 세번째 부분이 끝나고 나면 그 긴장감을 풀어주는 네번째 부분 '고뇌 (Affliction)'가 짧게 흐르고, 코믹한 리듬으로 전개되다가 갑자기 세번째 곡의 주요 리듬과 멜로디라인으로 복귀하는 다섯번째 부분 '지옥에 떨어뜨림(Damnation)'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인 '정화(Purification)'가 등장한 다. 제목처럼 우리들의 마음과 정신을 깨끗이 정화시켜주는 여섯번째 부분 '정화'는 Chris Koerts의 아름다운 Acoustic Gultar선율과 그의 보컬이 주도하고 있는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부분이다. 매우 신선하고, 맑고 깨끗한 이 부분은 이 앨범에서 우리가 여러번 반복해서 듣게되는,,, 그래서 레코드면에서 가장 마모가 심하게 되는 부분이 될 것이다. 이 대곡의 마지막 부분인 행진(The March)'은 여섯번째곡과 드럼소리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대단원으로 치닫는다. 반복되는, 힘찬 드러밍으로 끝을 맺는 그들의 음악적 아이디어는 매우 기발하다.

Side 2의 마지막곡으로 담겨 있는 'From the End till the Beginnig'은 원래 싱글 'Memories'의 뒷면에 수록되었던 곡으로, 이곡 역시 국내 팬들을 위해 보너스 트랙으로 삽입되었다. 이 곡은 기존 Earth and Fire의 작품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독 특한 분위기를 창출해내고 있다. Earth and Fire가 좀처럼 시도하려하지 않았던 전위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이 곡은 'Memories'에서처럼 멜로트론의 음향을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으며 비교적 느린 템포로 전개되면서 약간의 액센트를 섞고 있다. 드럼을 이용해 전위적인 미묘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으며, 종반부에서 음의 무질서로 끝을 맺는 이색작 이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Super Progressive Rock 그룹 Earth and Fire 그들은 1982년, 마지막 앨범 "In A State of Flux"를 끝으로 일시 해산되었고, 그후 Jemey Kaagman은 솔로로 독림하여 두 장의 솔로앨범을 남겼다. 그러나 1989년, 그들은 활동을 재개, 새로운 앨범 "Phoenix"를 선보였다, 그들은 지금까지 아홉장의 공식앨범들과 서른장이 넘는 싱글들, 그리고 열장이 넘는 편집앨범을 내놓았으며, 지금까지도 세계음악 시장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은 Progressive Rock그룹 으로서, Pop그룹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Singles
 
1970 : Seasons/Hazy Paradise (Polydor S1335)
1970 : Ruby is the one/Mechanical Lover (Polydor 2050 019)
1970 : Wild and exciting/Vivid shady land (Polydor 2050 044)
1971 : Invitation/Song of the marching children (Polydor 2050 084)
1971 : Storm and thunder/Lost forever (Polydor 2050 133)
1972 : Memories/From the end till the beginning (Polydor 2050 179)
1973 : Maybe tomorrow, maybe tonight/Theme from Atlantis (Polydor 2050 084)
1974 : Love of life/Tuffy the cat (Polydor 2050 322)
1975 : Only time will tell/Fun (Polydor 2050 359)
1975 : Thanks for the love/Excerpts from ''To the world of the future (Polydor 2050 376)
1976 : What difference does it make/What difference does it make instrumental (Polydor 2050 411)
1977 : 78th avenue/Dizzy raptures (Polydor 2050 498)
1979 : Weekend/Answer me (Vertigo 6012 968)
1980 : Fire of love (single mix)/Seasons of the falling leaves (Vertigo 6012 971)
1981 : Dream/Jerney's day off (Vertigo 6198 490)
1981 : Tell me why/What more could you desire (Vertigo 6198 517)
1982 : Love is an ocean/You (Vertigo 6198 529)
1982 : Twenty-four hours/Strange town (Dureco Benelux 4663)
1983 : Jack is back/Hide away (Dureco Benelux 4709)
1983 : The two of us/Love is to give away (Dureco Benelux 4709)
1989 : French word for love/Gemini (CNR 7860019)
1990 : Keep on missing you/Under a burning sky (CNR 860019)
1990 : Good enough/Under a burning sky (D&K 7860019/3)

Special Singles

1981 : Rally Monte-Carlo/No total loss (Kayak) (Qcumber 198103)
1982 : Love is an ocean (12 inch)/Love is an ocean instrumental (Vertigo 6840 181)

Albums

1970 : Earth and Fire (Polydor 2441 011)
1971 : Song of the marching children (Polydor 2925 003)
1973 : Atlantis (Polydor 2925 013)
1975 : To the world of the future (Polydor 2925 033)
1977 : Gate to infinity (Polydor 2925 065)
1979 : Reality fills fantasy (Vertigo 6413 509)
1981 : Andromeda Girl (Vertigo 6399 271)
1982 : In a state of flux (Dureco Benelux 88 050)
1989 : Phoenix (CNR) cd


 

Posted by 겨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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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수한과 아주 도움이 되는!

월간팝송 1984년 10월호,  프로그레시브 황금기 Trilogy (제3부 1973 - 1974)

Felona and Sorona. Imagined planets millions of light years apart. Felona radiant with light, peace, and love. Sorona an unhappy speck in eternal darkness, a place of withered life and beings like vegetables ; burdened and unsmiling ghosts, clinging to faith...hope.
  The Supreme Being, rejected source of all happiness, rolls his gaze to sad Sorona, and from those eyes pour a cascade of light. Skeletal life and smudged flora warms and blooms in the awaited miracle of light. Darkness, fear, silence, are gone.
 For an instant, the sister planets Felona and Sorona are alike in their happiness, It lasts only the space of smile. With the magic enhantment, their equilibrium shatters and vanishes. Felona and Sorona capsize. In the imponderable game, they annihilate each other.

Le Orme

Venice, 1973


Photos of Ghosts

Black roses laced with silver
By a broken moon.
Ten million stars
And the whispered harmonies of leaves.
We were these.

Beside a dried up fountain
Lie five dusty tomes
With faded pasted pictures
Of love's reverie
Across each cover is written,
"Herein are Photos of Ghosts"
Of ghost, of ghosts,
Of the days we ran and the days we sang

by Pete Sinfield

"나는 Greg Lake가 마련한 만찬에서 이태리의 프로모터인 Francesco Snevio라는 사나이를 만났다. 그는 유명한 프로모터로서 EL&P, King Crimson, Black Sabbath, Ten Years After등 수퍼 그룹들의 대규모 이태리 공연을 담당했던 사람이다. 그와 대화하던 중에 우연히 이태리의 록 그룹인 P.F.M.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곧 나는 흥분하고 말았다. 이태리 음악 하면 Canzone가 연상됐던 나에게는 커다란 호기심이 일고 있었다. 다음날 나는 테입으로 그들이 연주하는 것을 들었으며 그것을 듣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전체적으로 모든 곡들이 아름다웠으며 독창적인 사운드였다. EL&P와 King Crimson을 합한 것과 같은....
 그 테입에는 그들의 두번째 LP의 곡들이 담겨져 있었다. 나는 그들을 만나면서 지금까지 만났었던 사람들 중에 최고의 젊은이들임을 알게 되었다."
 위 글은 킹 크림슨의 초창기 멤버이자 작시자였던 Pete Sinfield의 인터뷰 내용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 후, Pete Sinfield 는 P.F.M.의 두번째 앨범인 "Per Un Amico"의 가사를 영어화해서 세계 시장에 내 놓았으며 P.F.M은 세계적인 그룹으로 발돋움했다
 여러 유럽 국가들의 훌륭한 무명 그룹들이 서서히 세계시장에 진출하던 1974년, 당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 인터뷰이기에 여기에 적어본 것이다.

성시완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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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1973년 미국의 록계는 서든 록(Southern Rock)과 개성이 매우 강한 마이너 레이블들이
이끌어 갔다. Sound of South, Carpricorn, Asylum, Shelter등의 마이너 레이블들이 회사
 위주의 음악 제작에서 탈피, 아티스트 본위의 앨범 제작을 할 수 있었으며 뮤지션의
수준도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또한 우드스탁 훼스티발이 행해졌던 이래로 대규모의 콘서트가 7월에 뉴욕주에서
"Summer Jam"이라는 타이틀로 개최 되었다. 이콘서트에는 3개의 그룹 -
 Allman Brothers Band, The Band, Gratefal Dead가 참가 했는데 60만
인파가 모였던 대행사 였다. 프로그레시브 계열에서는 1970년에 John과
Chuck Panzo 형제에 의해 시카고에서 결성 되었던 Styx가 "Styx 2"(두번째 LP)와
"The Serpent Is Rising"(세번째 앨범)을 발표해서 사막의 미국 프로그레시브 록계에
오아시스가 되어 주었다. (Styx 가 유일하게 한 해에 두장의 LP를발표한 해는 그들의
음악적 향상기인 1973년 이었다.)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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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wbs의 "Bursting At the Seams", <Tear & Pavan> 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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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Canterbury Family에서 분파된 심포닉 (symphonic) 그룹 Carav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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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eissance의 두번째 앨범 "Ashes Are B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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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wkwind의 더블 라이브 앨범 "Space Ritval"

영국의 언더그라운드 계열과 프로그레시브계열은 1960년대 말 ~ 1970년대 초에 탄생한
수많은 수퍼 그룹들에 의해 주도되어 가고 있었다.
새해 첫날인 1월 1일 Strawbs는 "Bursting At The Seams"를발표해서 포크 그룹에서 완전 탈피했고, 그 다음 앨범인"Hero & Heroine"으로 수퍼 록그룹으로 전혀 손색이 없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5옥타브를 낼 수 있는 여성 보컬리스트 Annie Haslam이 소속된 Renaissance는
비록 데뷔앨범은 실패 했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두번쨰 앨범 "Ashe Are Burning"으로
상업적인면에서 크게 성공했다
.Peter Bardens가 이끄는 Camel은 영국 프로그레시브계에 신선함을 불러일으켜 주었으며 대망의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1974년에 다시 활동을 재개함)
 수퍼 그룹의 활동을 보면 EL&P가 싱글 <Brain Salad Surgery>, 그리고 같은 타이틀
앨범을 연이어 발표했고 Yes는 1972년도 미국공연을 담은 더블 LP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를 발표했다.
스페이스 뮤직(Space Music)의 대표적인 그룹인 hawkwind도 1972년 12월에 Liverpool Stadium과 Brixton Sundown에 이어 런던에서 가졌던 실황을 담은 더블 라이브앨범 "Space Ritual"을 발표했다.
Pink Floyd는대중적으로 커다란 성과를 올린"The Dark side of the Moon"(9번째 앨범)을
발표해서 더많은 팬들을 확보 했고 Jethro Tull은 인상적인 재킷의 "A Passion Play"
(7번째 LP)를 과감하게 내놓았지만 반응은 그리 좋지 못했다.
Manfred Mann의 Earth Band에게 있어서 1973년은 가장 바쁜 한해였다.
그들은 "Messin"(3번째 LP) 과 "Get Your Rocks Off"(4번째 LP) 그리고 최고 걸작으로 알려진 "Solar Fire" 등 세장의 앨범을 만들어 냈다. Arthur Brown이 이끄는 Kingdom Come도 "Kingdom Come"(두번째 LP)과 "The Journey"(스페이스 사운드의 명작; 세번째 LP이며 최후의 앨범)을 발표했다.
 특히 영국 프로그레시브 록계의 큰 수확은 Mike Oldfield의 등장 이었다. 5월에
발매된 "Turbular Bells"는 경이적인 작품으로 놀라운 판매고를 올렸으며 한명의
아티스트가 여러 악기를 다루어도 전혀 그룹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케이스 였다.
 또한 Virgin레이블을 통해 Henry Cow라는 실험적인 재즈 록 그룹이 "Legend"라는
앨범으로 데뷔해서 신생 레이블인 Virgin을 영국 최고의  Avant Garde, Progressive Label로서 인정 받게 했다.이 외에도 수많은 그룹들이 서로 다투어 앨범을 내놓았지만
킹 크림슨 만큼은 Pete Sinfield, Mel Collins,Boz Burrel의 탈퇴로 해산 상태였으며,
Yes의 Bill Bruford와 Family의 John Wetton, 매우 돋보이는 전위 타악기 주자
Jamie Muir를 멤버로 하여 "Larks' Tongues In Aspic" (6번째 앨범)을 가까스로 만들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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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fred Mann's Earth Band의 명반 Solar Fire(5번째 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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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fred Mann's Earth Band의 세번째 앨범 "Messin", (Chapter III 당시의 라이브 곡을 앨범 타이틀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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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사자들 Kingdom Come


 이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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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D.G.G의 리더 Peter Hammil이 영어로 번안했던 이태리의 베테랑 그룹 Le Orme의 "Feloma & Sor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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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phataurus의 유일한 앨범 "Adrian no Marangoni"의 상직적 커버 아트 ("N.T. Atomic System"처럼 6페이지의 재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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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 Sinfield에 의해 세계시장에 알려지게된 P.F.M의 세번째 앨범 "Photos of Ghosts"

1973년은 이태리 프로그레시브 록계의 세계진출이란 커다란 의미를 지닌 한해였다.
 Pete Sinfield에 의해 비로서 P.F.M에 세계 음악시장에 알려졌고, 또한 V.D.G.G.의
리더 Peter Hammill이 Le Orme의 5번째 앨범인 "Felona A Sorona"를 영어화해서
Charisma 레이블을 통해 "Night On The Bare Mountain"이란 타이틀로 발표 됐고
(미수록곡 한 곡 더 첨가), EL&P 스타일의 Triad는 영어가사로 된 유일한 앨범을 남겼다.
 Alna Sorrenti의 두번째 작품은 Francis Monkman(Curved Air의 멤버 였으며 후에 Sky의
창단 멤버) 과 Dave Jackson(V.D.G.G.의 색소폰 담당)등과 함께 런던에서 녹음이 되었다.
 5인조 록그룹 Acqua Fragile는 P.F.M과 Clandio Fabi의 제작으로 데뷔 앨범을 발표했고,
 제노바를 본거지로 한 (Studio G로부터 설립됐던)Magma레이블로 부터는 그룹명을
EL&P의 "Tarkus"에서 따온 Alphataurus가 유일한 앨범을 내놓았다. 역시 5인조 그룹
Area가 대중을 향해 "Arbeit Macht trei"라는 데뷔앨범을 펼쳤고 로마 출신의
Banco Del Mutuo Soccorso는 정연한 인상을 주는 3번째 앨범"Io Sono Nato Libero"를
발표했다.
 하드 록풍의 Canpo Di Marte는 이태리에 있는 Mars(신화상의 군신명)광장을 그룹명으로
영국인을 한명 포함한 동명(同名) 타이틀의유일한 앨범을 발표했다. 그리이스 고대 전설을
기반으로 Melos의 이야기를 담았던 Cerello의 유일한 앨범 "Melos"가 발표되었고 P.F.M.의
Mauro Pagani에게 발탁된 Claudio Rocci는 Matia Bazar이 재적했던 Ariston 레코드사를
통해 데뷔 했다.
 RCA의 세션맨으로 이루어진 그룹으로 피아노를 기반으로 한 Festa Mobile이 재즈와
프로그레시브 록의 경이적인 앨범을 남겼다.
 Formula 3가 "La Grande Casa"라는 최후의 앨범(4번째 LP)을 남겼고, Jumbo도 최후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Latte E Miele는 두번째 앨범인 "Papillon"(영화 "Papillon"과
같은 내용을 담았던 앨범이었다)을 내놓았다. 그외에 EL&P의 영향을 받은
L'uovo Di Colombo Banco 스타일 의 Metamor - Fosi, 니이체의 철학서사시 Zarathustra를
테마로 했던 Museo Rosenbach, Rocky's Fiji (4인조 아방 가르드 록 그룹),
Semiramics(고대 바빌로니아 여왕을 그룹명으로 한 전설적인 그룹), 오케스트라와 코러스를
동원한 시적인 앨범을 만든 Tito Schipa Jr.(유명한 오페라 가수의 아들) 등이 각각 유일한
앨범을 Italian Progressive의 황금기인 1973년에 발표했다.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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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n Düül II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네번째 LP "Wolf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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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재즈를 기반으로 하는 프로그레시브 그룹 Message. 리더 Tommy McGuigun의 보컬은 매력적이며 환상적이다.

 1973년, 독일에서는 하드록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Alkatraz, Friedhof, Hairy
Coter, Nosferatu, Sphinx, Tush, Weed등의 비교적 기술적 수준이 낮은 그룹들이 대부분
이었으나 그들 나름대로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사이키델릭 사운드가 서서히
사라지고 Electronics Sound가 최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Tangerine Dream은
"Atem"(4번쨰 LP)을 발표했고 영국 BBC 방송의 유능한 DJ John Peel에 의해 세계
시장 진출이 가능하게  되었다.
 명반 "Wolf City"를 성공시킨 Amon Düül II는 세차례의 영국공연을 비롯해서
앨범제작보다는 순회공연에 열의를 더했던 한해였으며 "Vive la Trance"(6번째 LP)를
발매 했다.
 Hosianna Mantra는 최고로 감동적인 레코드라는 찬사를 Musik Express지로부터 받았다.
그리고 Musik Market지는 Popol Vuh를 최고로 성공하고, 최고로 주목받는 독일그룹의
하나라고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Popol Vuh는 4번째 앨범인 "Seling Preisung"을
발표했는데 이작품은 지금까지 전승되어온 종교와 교회의 전통을 초월한 Florian Fricke의
 매혹적인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 윤씨는 이 앨범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Can은 60일 동안에 걸쳐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순회공연을 가졌고
"Future Days"(5번째 LP)를 발표했다. 보컬을 담당했던 일본인 Kenji 'Damo' Suzuki는
결혼을 이유로 그룹을 탈퇴했다.) Guru Guru는 그룹명의 앨범 "Guru Guru"(4번째 LP)를
내놓았고 "German Rock Concert" (5월 19일) 와 "german Rock Festival" (9월16일),
그리고 "RAIS 방송 독일 록 제전" (11월 29일)에 Main Group으로 참가했다. 그 외에도
 Klaus Schulze가 두번째 솔로앨범 "Cyborg"를 만들어내서 "외면적으로 단조로운
Monotone이나, 내면적으로는 깊이가 있는 음악 - 일종의 Electronic Yoga"라는 평을 받았다.
 Manuel Göttsching이 이끄는 Ash Ra Temple은 1972sus "The Bern Festival"의 실황을
담은 "Seven Up" 과 개방적인 자유를 나타내는 "Starring Rogi"를 만들어 냈다. 후에
멤버교체가 극심했던 두 그룹 A.R 과 Between 중에 Achim Reichel이 이끌던 A.R은
"A.R.3"(5번째 LP)와 "A.R.IV"(6번째 LP)를, Between은 "And The Waters Opend"(두번째
LP)를 발표했다. 크로스오버 재즈에 가까운 7인조 그룹 Creative Rock이 프로그레시브
레이블인 Brain을 통해 "Gorilla"라는 앨범을, 하드록 스타일의 4인조 그룹 Curly Curve가
데뷔를 했다. 또한 1973년도는 Embryo의 해라고 할만큼 Embryo는 3장의 앨범 -
"Rocksession"(4번째 LP), "SteigAus"(5번째 LP), "We Keep On"(6번째 LP)을 발표 했다.
 6인조 그룹 Emergency는 멤버를 재정비, CBC에서 Brain으로 이적해서 두번째 앨범
"Get Out To The Country"를 만들어 냈다. 베테랑 그룹 Eberhard Schoener는 독일에서의
 마지막 앨범 "Music For Meditation" (4번쨰 LP)을, Faust는 테입에 수록됐던 미발표곡을
모아 "Tapes"(3번째 LP)를 발표했다.
 Gila는 리더 Conny Veit를 제외하고 모두 멤버교체되어 두번째 앨범을 만들었고,
재즈 록 그룹 Kollektiv Message (4인조 Mary Stewart의 "The Crystal Cave"라는 책에서
착안한 그룹)가 데뷔를 했다. 재즈와 클래식을 혼합한 Thirsty Moon은 Brain을 통해
스케일이 큰 2장의 앨범을 만들어 냈다.
 Grobshnitt (북부 독일에서 1970년에 결성된 그룹)는 72년도에 이어 73년에도
German Rock 역사상 길이 남을 우주적이며 대작인 앨범 "Ballerman" (두번째 LP)을,
Wallenstein은 Jerry Berkers 대신에 Dieter Meier로 교체하고 새로운 멤버인
바이얼리스트 Jöachim Reiser를 받아들여 "Cosmic Centry"(3번째 LP)를 만들어 냈다.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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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eo Rosenbach의 앨범 재킷 뒷면의 그림이 매우 상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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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h Ra Tempel의 리더 Mannel Göttsc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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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ng의 6번째 앨범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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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도 라이브 앨범의 명반 "Greasy Truckers" United Artists 레코드사의 앨범으로 Gong, Henry Cow, Camel등의 멋진 라이브 곡이 수록되어 있다.

Daevid Allen이 이끄는 Gong은 "Radio Gnome Invisible" ("Angel's Egg", "You"에
계속 파트별로 수록된 곡)을 첫곡으로 담은 "Flying Teapot"(네번째 LP)을 발표 했다.
이 앨범은 Tim Blake의 키보드, Steve Hillage의 우주적 기타 사운드에다 Magma의
게스트였던 Francis Mose가 베이스 주자로 참가해서 독자적인 작품을 형성하고 있다.
키보드주자 Alain Goraguer는 여성 Scat을 담은 사운드트랙 앨범 "La Planete Sauvge" 를
, Ange는 "Le Cimetiere Des Arlequins"(두번째 LP, 그러나 이 앨범은 세계시장에서는
데뷔 앨범이다.)를 발표했다.
 또한 Gilbert Artman (drum, piano, vibe)이 이끄는 Project 형식의 그룹LardFree가
출범했다
그리고 음악 평론가들에게 대단한 호평을 받았던 Sandrose가 유일한 앨범이며 세계적인
희귀앨범 "Sandrose"를 남겼다. 또한 Magma 출신의 Jeff "Yochko" Seffer(sax vocal)와
Franc, OisCàhen(keyboards)가 이끄는 그룹Zao가 재즈 록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해였다.
그밖의 나라는 뚜렷한 활동이 거의 없었으므로 지면 관계상 생략하기로 한다


1973
 

미국

 결성 10주년을 맞은 Jefferson Air plane은 74년에 들어서면서 그룹명을
Jefferson Startship으로 개병하고 그룹의 건재함을 보여주었으나 Grateful Dead는
일시 활동을 정지함으로써 샌프란시스코 뮤직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감을 느끼게 한다.
프로그레시브 영역에서 보면 1974년 말 Kansas가 Don Kirshner가 설립한 Kirshner
레이블의 오디션에 합격함으로써 프로그레시브 록의 불모지인 미국땅에 또하나의 유능한
그룹이 빛을 바라게 되었다,
 Styx는 신비의 마법사를 재킷에 담은 클래식과 록을 혼합시킨 네번째 앨범이며
Wooden Nickel 레코드사에서의 마지막 앨범인 "Man of Mircles"를 발표했다.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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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ugee의 유일한 앨범 "Refug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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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wbs의 걸작 "Hero And Heroine" 타이틀곡과 "Autumn"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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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이스가 낳은 키보드의 천재 Vangelis의 데뷔 앨범 "The Drgon" 1971년에 발표했던 이 앨범은 1978년에 재발매 되었다

당시 영국의 록계는 수입의 85 ~ 95%를 세금으로 부과시키는 당국에 불만을 품은
대중적인 아티스트들이 미국을 비롯한 여러나라로 이주하는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Beatles 멤버들의 미국 이주를 들 수 있다.) 프로그레시브
계열에서도 Pink Floyd와 Yes EL&P 등의 수퍼그룹들은 영국의 중과세에 골머리를
앓으면서 미국 이주를 위해서 한해에 수차례의 미국 공연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EL&P를 겨냥해서 결성됐던 Refugee는 Nice의 재편성을 기획하던 Lee Jackson과
Brian Davision에 의해 결성된 그룹으로 스위스 출신의 키보드 주자 Patrick Moraz의
사운드를 기반으로 해서 Keyboard Music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결성 이래 40 차례의
공연과 단 한장의 앨범을 남긴 Refugee는 Patrick Moraz의 Yes 참가로 말미암아 활동을
정지함으로써 화려했지만 짧은 역사로 그치고 말았다.
 King Crimson도 해산 위기에 돌입, 타악기를 맡았던 Janie Muir가 탈퇴한 후 4인조로서
 "Starless And Bible Black"을 발표했다. 그후 King crimson은 새로운 앫범 "Red"의
리허설 중에 멤버간의 극심한 트러블로 해산을 발표하게 된다.
("King crimson은 죽었다!" - 1974년 9월 26일) King Crimson의 해산 발표후 그들의
공식적인 최후의 스튜디오 앨범 "Red"(데뷔앨범만큼 높은 평가를 받았던 8번째 LP)를
발표했다.
 Yes는 미국공연에 한창 열의를 올리고 있었던 한해였다. 연초부터 미국 순회공연을
행했던 Yes는 너무 극심한 연속적인 공연의 피로로 그룹 내부에 불화가 일기 시작했다.
 Rick Wakeman은 결국Yes를 떠났고 그룹은 후임 키보드 주자의 선택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Vangelis가 잠시 참가) 또한 "Ashes Are Burning"으로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Renaissance는 "Turn of The Cards"(3번째 LP)를 발표해 앞으로 다가올 세계 순회공연의
기틀을 마련했다.
 Genessis는 최초의 더블앨범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7번째 LP)를 발표 했다.
사운드가 강화 되었던 앨범이었으며 뉴욕의 맨해턴을 무대로 "Rael"이라는 불량 소년을
주인공으로 했던 이색적인 앨범이었다.
Strawbs는  1973년 11월에 코펜하겐에서 녹음했던 "Hero & Heroine을 발표했다.
이 앨범은 본국인 영국에서는 한때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사운드는 매우 훌륭했다.
대체적으로 1974년 영국의 수퍼 록그룹들의 음악들은 그룹의 존속 여부와 깊이 관련되면서
사운드가 대중적으로 흘러가는 양상을 띠었고 프로그레시브의 영역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시기였다.


 

이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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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 Sinfield가 제작해준 P.F.M.의 5번째 앨범 "The World Became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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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Trolls의 공식적인 라이브 LP "Tempi Disp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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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IS이 두번째 LP "IBIS". "Ritrovarci Qui"가 수록 되어 있다.

Pete Sinfield로 인해 세계시장에 진출한 이태리의 수퍼그룹 P.F.M.은 자연의 존속을
걱정하는 (사회성이 가득 담긴) 내용의 "The World Became The World"(5번째 LP)를
발표했다.
 수퍼그룹 New Trolls는 Genova의 Alcione극장에서 녹음한 실황앨범 "Tempi Dispari"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Free jazz를 바탕으로 한 두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Concerto Grosso Per I"의
 Adagio와 Candenza를 실황에 맞게 편곡해서 재즈 록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재즈 록의 연주가 돋보이는 6인조 그룹 Arti + Mestieri가 "Tilt"라는 앨범으로
데뷔했고 이태리 Heavy SymphonicRock의 극치를 보여주는 Biglietto  Per L'inferono가
데뷔 했다.
 Formula3의 해산 후 드러머 Tony Cicco가 Cicco라는 자신의 이름을 그룹명으로
"Notte"라는 데뷔 앨범을 냈고, 환상적인 틀래식 록을 들려주는 키보드 위주의 그룹
E.A.Poe가 "Generazioni"라는 앨범을 발표했다.
 1972년 당시 New Trolls가 두개로 분열되면서 네명의 멤버가 그룹을 떠났을때 그중
Nico Di Palo(vocal, guitar)와 Maurizio Salvi(keyboards)가 결성한 그룹 IBIS는
세계시장을 겨냥한 데뷔앨범 "Sun Supreme"을 만들었다. 그리고 Formula3 출신의
Alberto Radius(vocal,Guitar)와 Gabriele Lorenzi(key boards)가 결성한 6인조 수퍼
록 그룹 II Volo가 데뷔했으며 이태리의 베테랑 그룹 Le Orme는 "In Concerto"
(6번째 LP)와 3장의 걸작 중 하나인 "Contrappunti" (7번째 LP)를 발표 했고,
"Io Sono Murple"(나는 펭귄이다)라는 제목을 가진 Murple의 앨범의 키보드 위주의
사운드로 장식됐다.
 서정성이 깃든 6인조 그룹 Quella Vecchia Locanda는 두명의 멤버를 교체한 후 2년만에
"II Tempo Della Giola"(2번째 LP)를 발표 했다. Twin Keyboards 중심의 Sensations Fix가
 "Patable Madness"를 , 프랑스 혁명때의 인물 Saint Just가 최후의 앨범
"La Casa Del Lago"(2번째 LP)를 내고 해산했다.
 Osanna  출신의 세 멤버 Elio Da'nna(Flute, Sax), Danilo Rustici(Vocal,Guitar,
Keyboard), Enzo Vallicelli(Drum)가 결성한 Uno가 유일한 앨범을 남겼다.
(이태리에서 발매된 앨범은 영어와 이태리어가 혼용되고 있고, 독일에서 발매된
앨범은 전부 영어로 되어 있으며 독일판은 Hipgnosis가 표지 디자인을 해 주었다.)
 5인조 그룹 UT는 긴장감이 도는 "Homo"라는 앨범을 발표했다.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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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거물 뮤지션들이 대거 참가한 세션 앨범 "Galatic Super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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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의 유일한 앨범 "Life After Death" 1974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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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에 결성, 1975년에 스위스 Montreux 재즈 훼스티발에서 데뷔했던 그룹 Argora의 "Live In Montreux". 이들의 그룹명은 그리이스 평화의 광장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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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gerine Dream의 세계진출 앨범 "Phaed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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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lenstein의 네번째 LP "Stories, Songs & Symphonies"

1974년 독일의 록계는 활짝 꽃이 피는 최전성기를 맞았다. 수처그룹들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세션그룹, 무명그룹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앨범들을 많이 발표했고, 그들의
독특한 음악성을 세계시장에 인정 받았던 뜻깊은 한해이기도 했다. 1974년은 Tagerine
Dream의 해라 할 만큼 Tangerine Dream은 행운을 가득 안았다. "Phaedra"가 영국 Virgin
레이블에서 발매되어(1월20일) 발매와 동시에 영국차트 10위에 올랐고, 리더
Edgar Froese는 첫번째 솔로 앨범 "Aqua"(6월24일)를 발매 했다. 그 후 베를린에서의
20차례 공연과 유럽 전역에 걸친 순회공연을 가졌고, Rheims 성당공연에서는 2천석의
공연장에 6천여 인파가 몰려 Tangerine Dream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그룹 Can은 1월2번과2월, 3차례의 영국 방문 공연에서 Melody Maker지로부터 "최고의
성과를 올린 만족된 공연"이라고 호평을 받았으며 2개월 후 그들의 초고의 수준작인
"Soon Over Babaluma"(7번째 LP)를 발표 했다. "Headphone을 착용하거나 안하거나
관계없이 같은 양의 음악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납니다." 라는 글귀를 Label
상징 마크 아래 새겨 놓는 이색적인 Delta-Acustic레코드사로 부터 3인조 그룹 Code III가
 Electronics Effect효과와 공간적인 음향, 이슬람풍의 여성 코러스가 어울린 현대음악에
가까운 작품 "Planet of Man"을 발표했다.
 1973년에 발족했던 Kosnishe Musik 레코드사로부터 8장의 수퍼 세션앨범이 쏟아져
나왔고 이외에도 5장의 "Galactic Supermaket" 앨범이 추가 되었다. 멤버로는
Wallenstein의 리더 Jürgen Dollase, 드러머 Harald Grosskopf, Ash Ra Tempel의 리더
Manuel Güttsching, Haus Schalze, 엔지니어이며 키보드도 담당하는 Dieter Dierks,
제작자 Gille Leftmann과 그의 콤비  Rosi가 참가 했다.Popol Vuh는 Florian과 우리나라
여성 정윰, 훌륫주자 Olf Kübler와 함께트리오 형태로 5번째 앨범인 Einjäger &
Siebenjäger"를 발표했고, 뮨헨 필하모니 관현악 단원중 한명을 받아들여 이태리 공연을
 치루었는데 그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외에도 수많은 그룹들이 작품을 내놓았는데
 Embroyo는 재즈와 중동쪽의 민속음악을 융합 시킨 "We Keep On"(6번째 LP)이란 앨범을,
30종류의 악기를 다루는 베일에 가려진 그룹 Floh De Cologne(초창기 4인조 그룹->5인조
->6인조로 증원됨)이 "Geyer-Symphonie"(5번째 LP)를 발표 했다.
 1970년에 5인조로 출범해서 지금까지 9매의 앨범과 1장의 Best를 남기고 있는
Lucifer's Friend (영국 하드록에 기초를 둔 그룹)가 "Banquest"라는 의욕적인 네번째
앨범을 내놓았다.
 Wallestein은 음악 스타일을 대중적으로 변화시킨 "Stories, Songs & Symphobies"를
만들어냈다. Popol Vuh처럼 동양의 종교적 감상을 그대로 반영한 4인조 그룹 Yatha
Shidhra(남부 독일-스위스 계통그룹)가 세션 앨범적인 성격을 지닌 "A Meditation Mass"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독일 프로그레시브의 홍수에도 불구하고 Guru Guru는 "Dance of the
Flames"를 내놓고 임시해산을 선언했으며 KlausSchulze는 Agitation Free의 리더
Michel Hönig(Guitar,Keyboards)  와 "공동 작업"이라는 뜻을 가진 합성어 Timewind라는
그룹을 조직하려 했으나 자신의 솔로 근성으로 그룹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독일의 록은
기계문명과 동화되어가는 것을 긍정하는 동시에 자연으로의 귀로, 동양적 신비주의에 대한
 동경이 매우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1974년은 이러한 독일 록이 본격적으로
세계음악시장에 진출하는 해였으며 그들만이 만들 수 있는 독특하고 우수한 작품이 많이
 쏟아져 나왔던 한해였다

프랑스

 중후한 키보드와 서정적인 키타연주를 지닌 수퍼그룹 Ange가 "Au- Delà D`u Délire"
(3번째 LP)를 발표했다. 중량감과 실험적인 요소를 품부하게 지닌 수퍼그룹 Magma도
"Köhntarkösz"(4번째 LP)를 만들어 냈으며 또한 리더인 ChristianVander는 "Tristan
Et Yseult"라는 영화의 사운드 트랙 앨범을 발표했다.


네덜란드

 Focus의 기타리스트 Jan Akkerman이 다른 솔로 앨범보다 더욱 재즈에 가까운
"Tabernakel" (3번째 솔로 LP)을 발표했다.(게스트로 Vanilla Fudge 출신의
Tim Bogert와 Carmine Appice가 참가) 클래식의 명곡을 전문적으로 편곡하는 그룹으로
관현악까지 동원하는 스케일 큰 그룹 Ekseption이 "Bingo"(Best LP를 제외한 7번째 LP)를
발표했다. 또한 두대의 만돌린과 목관악기, 베이스, 드럼, 보컬 편성의 Galaxy-Lim이
결성 됐다.
 그리고 Sweet Okay Supersister는 각종 효과음 등을 전기 처리했던  "Spiral Staircase"
(5번째 LP)를 발표하고 해산 했다

스페인

 1960년대 말에 Bautista에 의해 결성된 Los Canarios는 음악적 결핍으로 일시 해산됐다가
재결성, 스페인 록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남을 명반 "Cycles"를 발표했다. (8년에 걸친
기간동안 Vivaldi의 "사계(四季)" 를 기반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작품). 4인조 그룹
Fusioon은 Avant Garde와 클래식에 가까운 키보드 연주가 담뿍 담긴 "Fusioon"
(두번째 LP)을 발표 했다.

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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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를 대표하는 프로그레시브 그룹 Cos

벨기에의 프로그레시브 영역에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Cos가 "Jazz Rock
Pastaeolian Train Robbery"라는 앨범으로 데뷔했다.
 
======= 맺음말=======

3개월에 걸쳐 프로그레시브 황금기 Trilogy를 엮으면서 우리들이 그 동안 얼마나
프로그레시브 록에 무관심해왔는가를 같이 공감해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여기에
소개해왔던 그룹들은 대체로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그룹들이긴 하지만
모두가 프로그레시브 영역에서는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그룹들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1969~1974년 동안에 활약했던 일부 그룹들만이 소개되었지만 그당시 뿐만
아니라 1975년 이후에도 매우 훌륭한 그룹들이 존재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신생 그룹들이 탄생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우리가 접해볼만한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리라 기대 된다. 이 글을 쓰는데 참고가 된 서적은
무척 많았으나 주로 Euro-Rock 전문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프로그레시브 앨범들,
세계각국의 음악 평론가들의 평론이 큰 도움이 되었음을 밝히고 싶다.

 
 
 
 
출처:http://gpr2425.hihome.com

Posted by 겨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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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wetpinkdreams.com/czn/power-point-clicker BlogIcon power point clicker 2007.10.18 0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의 친구는 너의 위치의 현재 팬이 되었다!

  2. Favicon of http://wetnredsex.com/view/free-woman-nudity BlogIcon free woman nudity 2007.10.18 14: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심을 끌. 너가 동일할 좋을 지점을 다시 배치할 것 을 나는 희망한다.

  3. Favicon of http://hotgirls2008.net/go/tiny-penis-photo BlogIcon tiny penis photo 2008.03.13 0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재미있는 지점. 감사.

  4. Favicon of http://celebblowsbar.net/czn/make-how-lingerie BlogIcon make how lingerie 2008.05.23 04: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에서 유사한 역사는 이었다.

월간팝송 1984년 9월호,  프로그레시브 황금기 Trilogy (제2부 1971 -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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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Genessis를 처음 본 것은 1971년 1월 24일이었다. 그 날은 나의 생일이었고 또한 그 당시 내가 좋아하던 영국 밴드인 Van Der Graaf Generator가 런던의  Lyceum에서 연주하고 있었으므로 잘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이태리의 여러 잡지들을 위해 London Scene에 관하여 기고하고, 사진 찍는  일 뿐만 아니라 건축 설계사로 일하며 런던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나는 60년대 말의 문화적인 변화 - 거의 르네상스에 가까운 - 가 여태까지 런던이 보아온 시대 중 가장 아름답고 격렬하고 흥미진진한 음악적 창작기였다고 믿고있다. 그때 나는 그러한 것을 매우 강하게 느꼈으므로 Jimi Hendrix나 Pink Floyd, Jethro Tull, King Crimson, Yes, E.L.P., Gentle Giant, Van Der Graaf Generator, 그리고 물론 Genessis 같은 그룹들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하여 건축설계사로서의 일을 그만 두기로 결심하였다.....
 ...그들 음악의 극적임과 시적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잘 짜여진 그들의 사운드는 내게 항상 매우 독창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1971년 1월 Tony Stratton Smith는 그의 가장 유망한 세 그룹 Van Der Graaf Generator, Lindisfarne과 Genessis를 9개 도시를 순회하는 연주여행을 보내 겠다고 계획하고 있었다. 그는 그 연주 계획안을 영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프로모터인 Tony Smith(후에 Genessis의 매니저가 됨)에게 주었는데 그는 어느 곳에서든 재빨리 매진될 수 있는 티켓 가격을 6실링에 고정시키는 재치있는 착상을 하고 있었다. 런던 밖의 지역에서는 아직 전혀 알려져있지 않은 Genessis는 Lindisfarne와 V.D.G.G.를 위하여 콘서트 때에 오프닝을 담당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그들에겐 행운인 셈이었다. 그러한 연주장소에서 그들은 그들의 음악으로 관객들에게 어떤 충격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위 글은 건축설계사이며 신문기자와 사진작가 이기도 한 이태리의 베니스 출신의 Armando Gallo의 책 "The Evolution of a Rock Band Genessis"(Printed in Great Britain by A Wheaton & Company Limited Exeter, Devon for Sidgwick and Jackson Limited)에서 발췌했다. 1971년 당시 영국 Rock계의 상황을 단면적으로 잘 보여준 글귀라는 생각에서, 그리고 대중음악의 올바른 전달을 위해 자신의 진로를 바꿔버린 한 작가에게 작으나마 감동이 되어 적어본 것이다.

성시완
 
 1971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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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k Floyd의 드러머 Nick Mason이 직접 그린 초창기 편집앨범

1971년 미국의 록계는 싱어 송라이터의 붐이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진실만을 말하는 그들은 록의 작은 낭만파들로서 조용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으며 또한 영국의 수많은 하드록 그룹에 외롭게 대항하고 있던 Grand Funk Raidroad가 최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그러나 60년대말 미국 록계를 이끌어 갔던 샌프란시스코 뮤직의 따뜻한 보금자리인 Bill Graham의 Fillmore West가 폐쇠되었으며(1971,7), Jimi Hendrix, Janis Joplin의 사망에 이어 약물중독으로 The Doors의 리더 Jim Morrison이 사망 했고, 남부음악의 대표적 그룹인 The Allman Brothers Band의 리더 Duane Allman이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하는등 계속되는 불운의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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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wbs의 "From the Witchwood" 앨범 재킷 속그림


영국
 1971년 영국의 록계는 더욱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계속 주목을 받고있던 Emerson, Lake & Palmer가  "Tarkus"(두번째 LP), "Pictures At the exhibition"(세번째 LP)을 발표해서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를 기록 했고 King Crimson은 보다 실험적인 앨범 "Islands"(네번째 LP)를 발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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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Cousins의 첫번째 솔로앨범. "Two Weeks last Summer", 명곡 <Blue Angel>이 들어 있다.

수퍼 그룹 Genessis는 이태리에서 커다란 성공을 기록한 "Nursery Cryme"(세번째LP)을 발표했고 Yes는 그들의 독특한 사운드를 확립시킨 기념비적인 앨범 "The Yes Album"(세번째 LP)과 Strawbs 출신의 Rick Wakeman을 받아들여 사운드를 강화하고 "Fragile"(네번째 LP)을 내놓았다. 또한 Pink Floyd는 초창기 편집 앨범 "Relics"와 그들 최고의 걸작으로 알려진 "Meddle"을 발표해 그들의 전성기를 이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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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L & P의 두번째 앨범Tarkus", 가상적인 괴력의 동물 Tarkus를 앨범 타이틀로 했다.

그외에도 록 팬들의 인기를 집중시켰던 Van Der Graaf Generator가 "Pwan Hearts"(네번째 LP)를, 록 바이얼리니스트 Parryl Way가 이끄는  Curved Air가 "Second Album"을 발표했고 영국의 전원그룹인 Barclay James Harvest가 그들의 초창기 명곡 "Once Again"(두번째 LP)과 "B.J.H. and the other Short Strories"(세번째LP)를 발표해서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Strawbs는 Rick Wakeman을 정식멤버로 받아들여 "From the Witchwood"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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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sis의 세번째 앨범 "Nursery Cryme". 이태리인들의 낭만과 공상적인 것을 노래했다

독일
 1971년은 독일의 수많은 진보 록그룹들이 다투어 데뷔를 했으며 독일의 록계가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게 되는 뜻깊은 한해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독일 록계의 선구자 역활을 해낸 Rolf Urkch Kaiser는 3개의 minor label인 Ohr, Pilz, Kosmiche Musick을 건립해서 Tangerine Dream, Popol Vuh, Ash Ra Tempel, Klaus Schulze, Embryo, GuruGuru, Wallenstein Hölderin등과 같은 독일 최고의 프로그레시브 그룹 등을 발굴해내는 공적을 세웠다. 특히 1971년 Pilz  Label에서 녹음을 개시했던` Wallenstein은 30년전쟁 당시의 장군이름을 그룹명으로 "Britzkrieg"(섬광전쟁) 라는 데뷔앨범을 만들기 시작했고 3인조 그룹인 Ash Ra Tempel은 Ohr를 통해 데뷔앨범을 발표했다. 그러나 Embryo는 Ohr를 떠나 Liberty레코드사로부터 "Embryo's Rache" (두번째 LP)  를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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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aus Schulze의 현대음악적인 악보

또한 Klaus Schulze는 자신의 스튜디오를 완성했다(16Ch. Mixer 1대, 음향기 1대, Synthesizer 3대, Organ 1eo, Electric Piano 1대, Echo Unit 여러 대,Tape recorder 여러 대, Specral Box 여러대, Rotary Sound기 1대를 구비했다).
 Popol Vuh는 1971년도 Sound지 인기투표에서 신인그룹 Best 4 에 선정됐고 그들의 앨범 "Affenstunde"는 Best 10앨범에 선정되었다. Amon Düül II는 Music Express지의 Pop 인기투표에서 언더그라운드 그룹으로서는 1위, 3번째 LP인 "Tanz der Lemminge" (영어로는 Dance of the  Lemmings)는 Best앨범 5장  중  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사이키델릭 그룹인 Guru Guru는 WDR.TV의 "독일의 Pop Music"이라는 프로에 출연했고 함부르크의 Star Studio에서 2번째 앨범 "Hinten" 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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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ru Guru의 후반기 작품"Tango Fongo"  

(Sound지의 Pop 인기투표에서 Guru Guru는 "Group of the year"의 Best 10에 들었다. 그룹 Can은 "Berlinam Freitagmittag" 등의 TV 프로에 출연하면서 TV 추리물인 "Das Messer"의 주제곡 <Spoon>을 작곡해서 독일 차트 8위까지 올려놓고 또한 2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쾌거를 이룩했다. 또한 TV영화 "Millionspiel", "Tote Taube"등여러 편의 영화음악을 담당했다.
 이외에도 환상파 화가인 Arik Brauer가 자신의 앨범을 발표해서 화제가 되었고 5인조 진보그룹 Bröselmaschime이 데뷔앨범을 Pilz로부터 발표 했으며, 독일 록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Cluster가 3곡의 대곡을 담은 데뷔 앨범을 만들어 냈다. 또한 독일의 전설적인 그룹 Faust가 데뷔앨범을, 4인조 진보그룹으로 출발했던 Gila가 데뷔앨범을, Jazz와 인도의 향기가 나는 듀오 그룹 Flute & Voice가 유일한 앨범을 남겼고 트리오 그룹인 Mythos가 강한 인상을 풍기며 데뷔앨범을 발표했다.
 
 이태리

 영국과 독일에 비해 1971년도 이태리의 록계는 그리 활발하지 않았다. 이태리의 최고 록 트리오라 불리우는 Formula 3가 두번째 앨범 "Formula 3"를 발표했고 수퍼 트리오 그룹 Le Orme는 "Collage"라는 세번째 앨범을, 5인조 진보그룹 Delirium이 데뷔앨범 "Dolce Acqua"를, Jumbo는 "DNA"라는 두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이렇듯 1971년은 이태리의 수퍼그룹들이 침묵을 지킨 한해였다(1972년의 도약을 위해서 음악성을 축적했던 해였으리라 생각된다.) 특히 이태리의 불꽃이라 불리우는 나폴리 출신의 진보그룹 Osanna의 데뷔작 "L'uomo"는 최대 걸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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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출신의 5인조 그룹 Osanna의 데뷔 앨범"L'uomo" 이 재킷은 1976년에 변형되어서 나왔다. 


 
프랑스
 프랑스의 록계 또한 1971년도는 특별한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록의 새로운 시도를 위한 많은 뮤지션들이 의기 투합하고 있었다. Daevid Allen이 이끄는 Planet Gong의 공식적인 최초의 녹음앨범 "Camemvert Electrique"가 Pierre Lattes의 제작으로 녹음되었다.(1971년5월,6월,9월) 또한 이 앨범이 녹음되기 직전에 Dashiell Hedayat의 솔로 앨범 "Obsolete"가 Daevid Allen을 비롯한 Gong의 멤버들의 도음에의해 완성되어졌다. 또한 6인조 진보그룹 Komintern은 유일한 앨범 "Le Bal du Rat Mort"를 남겼다.

그 밖의 나라

네덜란드 1971년도에는 커다란 변화는 없었지만 네덜랜드의 진보그룹 Focus가 그들의 최고 성공작인 두번째 앨범 "Moving Waves" (<Hocus Pocus>수록)를 발표했고 리더인 Thijis Van Leer는 솔로앨범 "Introspection"을, 기타리스트인 Jan Akkerman은 "Profile"이라는 솔로앨범을 발표했다.1970년 1월경에 결성되었던 Earth & Fire는 Golden Earring의 리더 George Kooymans에 발탁되어 보조 밴드로 활약하다가 데뷔앨범을 발표했다.(영국에선 1971년에 발표), 이들은 초창기부터 프로그레시브 계열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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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M.의 두번째 앨범"Per Un Amico"


그리이스
 Socrates가 70년도에 데뷔한 이래 첫 앨범을 발표했다. 그외 덴마아크에선 Burnin Red Invanhoe가 "W.W.W."란 앨범을 냈고 노르웨이에선 Saft가 데뷔 앨범을 냈다.필란드에선 수퍼그룹 Wigwam이 "Fairyport"란 앨범을 발표했다, 노르웨이에서는 스튜디오 뮤지션들로 Popol Vuh라는 그룹이 결성되었다(이 그룹은 Florian Fricke가 이끄는 독일그룹 Popol Vuh와는 다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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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te E Miele의 데뷔앨범"Passio Secundum Mattheum" (신약성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록 오페라 형태로 구성)


 
 
1972
 



미국
 당시 미국 록계에서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국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었던 독특한 진보그룹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으나 싱어 송라이터들의 활약은 여전히 눈부시도록 활발했다. 특히 여러 신인들의 데뷔가 1972년도 미국 록계의 촛점이었는데 신흥레코드 회사인 Asylum으로부터 데뷔한 Jackson Browne(서독 태생)은 웨스트 코스트를 대표하는 싱어 송라이터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Linda Ronstadt의 백업 밴드였던 Eagles가 독립해서 데뷔앨범을 내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다. 또한 Bob Dylan과 함께 CBS레코드의 영웅으로 군림했던 Simon & Gartfunkel은 1971년도 그래미상 4개 부문을 독점했던 "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끝으로 듀오 활동을 중지했고 Pal Simon레개풍이 담긴 소로앨범을 만들어내어 화재가 되기도 했다. 특히 미국음악을 계속 고수하던 남부 지방에서는 신흥 레코드 회사가 건립되는등 새로운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편 미국으로 건너간 John McLaughlin과  Jan Hammer(키보디스트, 체코 출신), Rick Laird(베이스), Jerry Goodman(바이얼린), Billy Cobham(드럼) 그리고 Miles Davis의 주변 음악인들과 Mahavishnu Orchestra가 "Inner Mounting Flame"에 이어 "Where Fortune Smiles"와 걸작 "Birds of fire"를 발표했다.

영국
 David Bowie의 전기라고 할 수 있는 "Black Book"(Omnibus Press)을 펼치면 1972년도가 가장 많은 활자로 매꾸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Marc Bolan의 전기 "Born To Boogie"(EEL U.K. PIE Publishing, Ltd). 지면을 보면 1972년에 Marc Bolan of T.Rex가 가장 많은 앨범을 내놓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972년에 Roxy Music이 데뷔앨범을 내놓았다. 이처럼 1970년대 초반에 영국으로부터 발생, 미국 록계까지 크게 성공했던 Glam Rock(Boogie와 로큰롤 스타일의 단순한 사운드에 아티스트의 얼굴 화장과 의상등 시각적 효과를 크게 노린 록의 형태)이 1972년에 와서 전성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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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wbs의 중반기 걸작 "Great New World" 멜로트론 연주가 돋보인다.

         
이에 반해서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영역 또한 활발한 분위기였다. Annie Haslem의 청아한 보컬과 John Tout의 클래식 분위기의 키보드로 진보적인 사운드를 창조해내는 Renaissance가 출범했고 영국 최후의 Underground group으로 불리우던 Hawkwind는 한쪽면만 할여되는 라이브 앨범 "Greasy Truckers Party"에 등장했고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 싱글 <Silver Machine>을 만들어 냈다. Emerson, Lake & Palmer는 "Trilogy"(네번째 LP)를 발표해서 인기를 유지했고 Pink Floyd는 영화 "La Vallée"의 사운드트랙 앨범 "Obscured By Clouds"(공식적인 일곱번째 LP)와 무관객 Live Film 인 "Pink Floyd Live At Pompeii"의 발표로 인해 영화로 행복을 누린 한해가 되었다. Yes는 "Close To The Edge" (다섯번째 LP)로 세계적인 Classical Rock Band로 올라 섰고 Strawbs는 호소력 있는 David Cousins의 보컬과 Blue Weaver의 키보드(특히 멜로트론)등의 악기강화로 중반기의 명반 "Grave New World"를 만들어 냈다. Barclay James Harvest 또한  색다른 분위기의 다분히 실험적 요소를 풍기는 "Barclay James Harvest"(네번째 LP)를 만들어 냈다. Genessis는 "Foxrot"(네번째 LP)를 발표했다. 리더인 Peter Gabriel은 공연 스테이지에서 "Music Box"("Nursery Cryme")에서의 "The old man" 분장에서 여우머리를 한 특이한 분장으로 그의 분장 모슴을 바꾸었고 이때부터 그는 놀라운 뮤지션으로 평가 받기 시작했다. ("Foxrot" 앨범이 Peter gabriel을 스타로 만들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영국그룹이 등장했고 프로그레시브 영역에서도 여러 신생 그룹의 탄생을 보았으며 수많은 명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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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적인 효과가 나는 Barclay James Harvest의 네번째 앨범 "Baby James Harv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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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ie Haslem의 Renaissance의 데뷔작 "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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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in Scot의 데뷔앨범, 영국 프로그레시브계의 리더격 뮤지션들이 대거 게스트로 참가했다.


  독일
 1970년 초반기 독일의 록계는 영국, 미국의 모방음악으로부터 의식적으로 탈피하여 실험적인 방법을 많이 시도했었는데 이것이 극대화 되어 자기의 감성을 매몰시켜 버리는 관렴적인 음악으로 많이 표면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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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lwstein 의 두번쨰 앨범"Mother Universe"

독일 록계도 1971년에 이어 매우 활발한 양상을 보였는데 Tangerine Dream이 최초로 더블앨범 "Zeit"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진보그룹으로 들어선 이래로 최초의 싱글<Ultima Thule Parts I & II > 를 발표 했다. Sound지의 인기투표 결과 "Zeit"가 최우수 앨범, Tangerine dream이 최우수 그룹, 리더인 Edge Froese가 최우수 뮤지션으로 선출되었다. 또한 1972년 Amon Düül II의 해라고 할 만큼 그들은 커다란 호평을 받기 시작했다. 영국신문에서는 개성적이며 창조성이 있는 음악을 해내는 그룹이라고 호평했고 Disc지에서는 Can과 함께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독일 록밴드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Amon Düül은 그들의 최고 걸작 "Wolf City"를 녹음했는데 이 앨범은 여러 음악지의 찬사를 받았다. Guru Guru는 베이스의 Ul Trepte를 잃는 등 그들의 위기에 접어들고 있었으나 3번째 앨범"Kánguru"는 Sound지 인기투표에서 Tangerine Dream의 "Zeit"에 이어 Best Reocrd와 그룹
부문에서 2위에 선정 되었다. Wallenstein은 "Britzkrieg"에 이어 "Mother universe"라는 앨범을 내놓았고 베이스와 보컬을 담당했던 Jerry Berkers도 솔로앨범인 "Unterwegs"를 발표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Triumvirat도 데뷔앨범 "Mediterranean Tales"를 내 놓았다. 관렴적인 음악의 하나로 Annexus Quam의 두번째 앨범에서 Rolf Ulrich Kaiser가 제작한 <Beziehungen>이 발매 됐고 Ash Ra Tempel의 "Schwingungen" (두번째 LP) 그리고 5인조 그룹 Brave New World가 극도의 난해한 사이키델릭과 재즈의 만남을 시도, "Impressions On Reading Aldus Huxley"를 발표 했다(이 그룹명은 Aldus Huxley의 동명 소설 "Brave New World"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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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lenstein의 베이시스트 Jerry Barkers의 솔로앨범"Unterwegs"


이태리
 1971년과 달리 이태리의 록계는 극도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그들 나름대로의 개성을 지닌 수많은 그룹들이 서로 다투어 앨범을 내놓았는데 대부분 대중적으로 성공을 하지 못한채 유일한 앨번으로 끝나고 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음악성이 풍부한 앨범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와 이태리 록계의 전망을 더욱 밝게 해주었다. 유일한 앨범을 남긴 그룹으로는 아름다움을 가득 담은 앨범 "L'alba Di Domani"를 발표한 Gruppo 2001, 정적과 요란 함이 함께 어울렸던 유일한 앨범을 만든  De De Lind, 전성기 시대의 Uriah Heep을 방불케하는 강력한 연주를 들려주던 J.E.T.가 유일한 앨범 "Fade Speranz Carita"를 남겼다. 또한 목가적인 분위기의 유일한 앨범을 발표한 Reale Accademia Di Musica(5명의 오리지널 멤버와 2명의 게스트 Natale Massara의 오케스트라 편곡), 로마 출신의 베테런 그룹 Banco Del Mutuo Soccorso가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또한 1970년에 레코드 데뷔를 했던 Il Balletto Di Bronze는 그리이스 여신을 테마로한 최후의 걸작 "YS"를 발표 했다. 그리고 현재도 팝-록 그룹으로 활약하고 있는 16년 경력의 노장그룹 I Pooh의 베이스주자 Red Canzian이 재직했었던 그룹 Capsicum Red가 유일한 앨범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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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trolls와 오케스트라의 협연

수퍼그룹에 있어서는 New Trolls가 스튜디오 사운드와 라이브를 담은 "Searching For A Land" 와 IBIS, N.T. Atomic System으로 분열되기 직전에 5번째 앨범인 "U.T."를 발매 했다. PFM은 데뷔앨범 "Storia Di Un Minute"와 그들을 세계진출의 문으로 이끌어 준 행운의 두번째 앨범 "Per Un Amico"를 발표했다. 트리오 그룹인 Le Orme는 "Uomo Di Pezza" 를 발표했다, 그외에 지금은 팝 싱어로 활약하고 있는 Alan Sorrenti가 당시에는 "Aria"라는 대작을 만들어 냈다. 재즈 계통의 그룹으로는 고도의 테크닉을 구사하는 5인조 그룹 Perigo가 대망의 데뷔앨범 "Azimat"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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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틴에이저들로 구성된 E.L&P 형태의 trio 진보그룹 Latte E Miele

프랑스
 1972년도 프랑스의 록계는 그리 활발하지는 않았는데 수퍼그룹 Ange가 데뷔앨범 "Caricatures"를, Gong이 "Continetal Circus"를 발표했다.
 
그 밖의 나라

스페인 클래식 악기를 기반으로 한 스페인 초기 록의 대표그룹 Fusion이 데뷔앨범을 발표했다.


네덜란드 평론가들로 부터 극찬을 받았던 Earth & Fire의 "Song of the Marching Children" (두번째 LP)과 Focus의 "Focus 3"가 발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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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의 Earth & Fire


 
덴마크 Secret Oyster가 레코드 데뷔를 했고 Jumpher Greene 또한 "Friendship"으로 데뷔를 했다.

핀란드 Wigwam의 멤버인 Jim Pembroke가 "Wicked Ivory"란 타이틀로 데뷔를 했다.

 
 
출처:http://gpr2425.hihome.com

Posted by 겨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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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netsbestsites.info/n/ BlogIcon city oak thousand 2007.07.22 2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수한 일! 감사!

  2. Favicon of http://sexolive.net/vids/depot-generator-home BlogIcon depot generator home 2007.10.18 05: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보세요, 아주 좋은 위치!

  3. Favicon of http://hot-girlz2008.com/katy-isd-calendar BlogIcon katy isd calendar 2008.03.13 06: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 경이롭 위치를 위해 많게의 감사!

  4. Favicon of http://nude-sexy-girls.net/sel/swim-birthday-girl BlogIcon swim birthday girl 2008.05.23 04: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배웠다 매우…

  5. Favicon of http://youhotalbum.net/vids/relena-hentai BlogIcon relena hentai 2008.05.23 05: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수한 위치! 많은 감사.

월간팝송 1984년 8월호,  프로그레시브 황금기 Trilogy (제1부 1969 -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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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nk Floyd의 "Atom Heart Monther"에 편곡자겸 멜러디 작곡가로 참여했었던 Ron Geesin! 그의 사회 풍자 수필집 'Fallables'(Butter & Tanner Ltd, Forme & London Press 1975)를 펼치면 이런 글귀가 나온다. "몇몇 사람들이 나에게 미쳤다고 하는데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지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미쳐 있다고....."
 음악을 열광적으로 사랑하는 Music Mania라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글귀라고 생각된다(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 자신도 남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욱 더 음악을 사랑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니까....).
 우리의 것이 아닌 남의 나라 음악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약간 부끄럽긴 하지만 우리들의 음악적 빈 공간을 메꾸기 위해서는 그들의 음악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듣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깊숙히 탐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주위에 존재하고 있는 방송이나 책속에서 자주 접하게 되면서 한편으로는 우리의 주체의식이 점점 식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도 해보게 된다. 더우기 우리들은 남의 음악을 탐구하는데 있어서 지나친 편식을 해왔으며 탐구하는 자세의 기본정신을 망각하고 그들의 음악을 무조건 과대평가하거나 자기 취향에 따라 악평가하는 일도 적지 않았으며 소홀히 지나쳐버린 것도 수없이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 "프로그레시브 황금기"라는 공간에서 만큼은 충실한 자료를 토대로 객관적이면서도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그동안 우리가 소홀히 넘어갔던 부분을 중점적으로 써내려갈까 한다.
 특히 "음악은 영혼을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는다. 다만 영혼을 자극하는 힘을 갖고 있다."라는 톨스토이의 명언과 "모든 음악을 다접해보도록 노력하라"는 여러 선배들의 충고를 그냥 지나쳐 버리는 일이 없도록 심혈을 기울여 보았다.

성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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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k Floyd의'Atom heart Mother'에게스트로 참가했던Ron Geesin의 수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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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그룹It's A  Beautiful Day의 데뷔 앨범. <White Bird>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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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 Crimson의 데뷔앨범 속 그림 손 모양이 부처와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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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에 발매됐던 Genesis앨범의 재발매(1974) 레코드 "From Genesiss To Revelation".
제네시스의 대중적인 데뷔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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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 Der Graf의 최후의
 스테이지를 담은 마지막 앨범 "Vital"
 








우리는 벌써부터 관심을 가져야 했을 이러한 음악들을 1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다시 이해하려 한다면 많은 시대 착오가 일어날 가능성도 크지만, 우리의 신선한 음악 감각으로 그 시대착오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노력해 본다.
 그 당시 우리들은 미국 음악이라는 한 우물을 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주위에 많은 물줄기가 있었다는 것을 미처 모르고 있었다(그 많은 물줄기 속에 달콤하고 짜릿한 그 무엇인가가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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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1960년대 말 미국의 Rock은 사이키델릭 록(Psychedelic Rock)과 히피 운동(Hippie Movement) 속에 탄생한 샌프란시스코 사운드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1960년대를 총결산하는 1969년 미국의 록계는 커다란 사건이 많았는데 8월에 개최되었던 최대 규모의 우드스탁 훼스티벌(Wood- Stock Music & Art Festival)을 비롯해서 Atlanta Pops Festival(7월), Texas International Pop Festival(8월) 등이 당시의 상황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진보적인 성격을 띠었던 그룹으로1967년 7월에 데뷔했던 Vanilla Fudge가 3장의 앨범(데뷔 앨범과 "The Beat Goes On", "Renais- sance")을 내놓은 후 4번째 앨범"NearTheBegining"을 발표하고 있었고, 바이얼린 주자 David Laflamrine이 이끄는 샌프란시스코 그룹 It's A Beautiful Day가 대망의 데뷔앨범을 내 놓았다.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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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fred Mann이 이끄는 free jazz project Chapter Three의 두번째 앨범이자 최후의 앨범. 백인 인형들 속에 있는 흑인 인형 하나는 백인음악 속의재즈를 뜻한다.

영국에서는 Mafred Mann Cha- pter III와 같은 free jazz 지향의 Project가 등장하면서 재즈 프로그래시브의 길을 열어주고 있었으며Pink Floyd와 같은 사이키델릭 지향의 그룹들이 완벽한 프로그레시브 그룹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리더였던 Syd Barrett을 잃은 Pink Floyd는 David Gilmour를 정식 멤버로 받아들여 그룹을 재정비하고 완전히 프로그레시브 영역으로 진로를 바꾸면서 두번째 앨범 "A Saucerful of secrets", 그리고 무관객 Live와 실험적인 사운드를 담은 "Ummagumma"를 발표했다.
1970년대의 영국 프로그레시브를 장악하게 될 Tes가 레코드 데뷔를했으며 전세계를 놀라게 했던 프로그레시브의 대부(代父) King crimson이 불후의 데뷔 명작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을 발표했다(당시 이앨범은 데뷔 앨범으로서는 보기 드문 커다란 성공작이었다.) 또한 유럽의 여러 진보그룹(특히 이태리 그룹)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게되는 Genessis가 평범한 앨범인 "From Genessis To Revelotion" 으로 데뷔를 했다. Moddy Blues도 평범한 록 사운드에서 탈피해서 1967년부터 ("Days of future Past")  클래식을 기반으로 한 전원적인 사운드를 펼치기 시작 했으며, 5번째 앨범인 "On the threshold of a dream"과 6번째 앨범인 "To your children's Children"을 발표했다.
 영국 언더그라운드의 왕좌를 누리고 있던 Van Der Greaf Generator (1967년 Manchester University에서 결성)는 데뷔앨범 "Aerosol Grey Machine"응 발표한 후 Charisma Label과 계약을 맺고 " The Least We Can Do Is Wave To Each Other"를 녹음 했다. 그리고 훌륫 주자 Ian Anderson이 이끄는 Jethro tull은 데뷔앨범을 발표한지 1년만에 싱글 <Living In The Past>를 성공시키고 두 번째 앨범 <Stand Up>을 발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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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e의 다섯번째 앨범이며 공식적인 최후의 앨범

당시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계는 개성이 뚜렷한 그룹들이 등장 했으며 악기의 발달과 레코딩 기술의 개발로 말미암아 침체기에 빠져있던 영국의 레코드 산업계를 다시 한번 들뜨게 했다. 그리고 클래식과 록의 융합을 실현했던 Keith Emerson이 이끄는 Nice의 두번째 앨범 "Ars Longa Vita Brevis"와 세번째 앨범 "Nice", 네번째 앨범 "Five Bridge"를 완성해서 그들의 전성기인 1969년에 3장의 앨범을 만들어 내놓는 저력을 과시했다. 당시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계는 유럽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로 뻗어나갈 정도로 거대한 세력이었으며, 프로그레시브 록계의 최강국임을 확인시켜주었다.
 당시 영국을 제외한 여러 유럽 국가에서는 미국, 영국의 록적인 감각과 독특한 음악 감각을 융합한 새로운 형태의 록 그룹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독일
독일의 록계에는 1969년을 기점으로 많은  그룹이 탄생했다. 이미 결성해서 활약하던 여러 그룹들은 새로운 악기와 멤버를 보강해서 그룹을 재정비하고 사운드를 강화시키는 뜻 깊은 시기 였었다. 이때 독일의 록은 미국과 영국의 록에 영향을 받은 사이키델릭 사운드가 주를 이루고 있었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독특한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났다.(당시의 사운드는 매우 강력하면서도 복잡한 느낌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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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gerine Dream의 스테이지

 1월에 잠시 해산했었던 Tangerine Dream은 Klaus Schulze를 받아들여 그룹을 재결성 했다. 그들은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영국 레이블과 계약이 좌절되자 동일 레이블인 Ohr와 계약하고 첫 앨범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클래식 기타 교육을 받으면서 Pop Combo를 시도 했었던 기타리스트 Manuel Göttsching은 Blues Band를 결성해서 활약했고, 앞으로 독일 록계에 신성함을 불어 넣어 줄 Popol Vuh의 리더 Frorian Fricke는 그룹 결성에 앞서 커다란 Moog Synthesizer를 구입했다.
 정치와 예술의 대립으로 독일 최대의 록 훼스티발인 "Internationalen Essener Song Tage"에 참가하기 직전 Amon Düül I과 Amon Düül II로 분열 됐다.
 Amon Düül I은 정치활동과 함께 "Psychedelic Underground"와 "BasF"로부터 편집앨범 "Disaster" 를 발표했고,  Amon Düül II는 "Phallus Dei"를 발표 했다.
  현대 전위음악가 Karlheinz Stochausen의 제자인 Irmin Schmidt와 Holger Czukay에 의해 결성된 Can은 그룹 결성 1년 만에 데뷔앨범을 제작하려 했으나 레코드 회사의 거절로 말미암아 데뷔앨범 "Monster Movie"를 자비로 Music Factory 레이블을 통해 한정판 600매를 만들어 냈다. Col 앨범은 1969년 겨울에 United Artist 레이블을 통해 재발매되기 전까지 당시 팬들 간에 60마르크 이상의 높은 가격으로 암거래되고 있었다. 정신병으로 보컬리스트 Malcolm Moony가 탈퇴함으로서 Can은 또 한 차레의 위기를 맞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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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my Grashow가 목판화로만들어 준 Jethro Tull의 두번째 앨범

또한 독일 록계에 중요한 시기인 1969년 여름에는 Jazz, Free Music, Underground 계통의 록, 사이키델릭 록 연주자들이 서로 다른 경력을 가지고 교류를 시작,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종합해서 작품세계에 반영했는데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그룹이 Embryo라는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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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사이키델릭 그룹 Guru Guru의 리더 Mani Neumeier

1967년에 결성돤 이후 Free Jazz를 추구하던 Guru Guru는 정식 이름으로 2년만에 데뷔를 했다. 이들은 Mani Neumeier를 주축으로 사이키델릭하면서도 강력한 사운드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Tangerine Dream의 드러머 Christoph Franke가 재적해 있던 그룹 Agitation Free(1967년 여름에 결성)는 겨울에 Mixed Media Show "Inter Media"를 상연하기도 했다. 그외에도 우리에게 잘알려진 Neckter가 결성을 했고  Kraftwerk의 두명의 창시자인 Ralf Hütter와  Florian Schneider는 보컬리스트 Basil Hammoudi등 3명의 뮤지션과 함께Organisation이란 그룹명으로"Tone Float"라는 앨범을 만들었다.
 
이태리
 당시 이태리는 상업성보다는 음악성을 내세우는 마이너 레이블(Minor Label)의 탄생을 위해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록 사운드 자체는 대체로 단순하면서도 아름답고 그들의 전통적인 Canzone풍의 요소를 담고있었다.(당시의 상황은 월간팝송 6월호 P.63참조[기사 P11])
 Italian Rock의 창시자 중 한사람인 Lucio Battisti는 남들에게 음악을 주어 성공했던 과거의 경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곡인 <Acqua Azzurra, Acqua Chiara>를 불러 훼스티발에서 대상을 받았으며 데뷔앨범을 발표해서 당시 이태리 음악계를 휩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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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Trolls의 최고 걸작이라고 평가 받는

이태리 최초의 프로그레시브 록그룹이라고 불리우는 Formula 3가Numero Uno 레이블을 통해 데뷔했다. 1966년에 록그룹으로 출발했던 PFM은 Formula3의 Alberto Radius와 교류를 갖고 Lucio Battisti를 알게 됐다. 1966년에 결성됐던 이태리의 수퍼그룹 New Trolls는 다른 그룹들에 비해 매우 활동적이었는데 1967년에 싱글 <Sensazion>을 차트에 올려 놓았고 데뷔앨범인 "Senza Orario Senza Bandiera"를 발표했으며 두번째 앨범 제작에 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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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ero Uno 레이블 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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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의 미발표 Live 곡들을담은 앨범으로 Ange의 초창기음악을 접할 수 있다.


 


 



 

프랑스
프랑스록계에 있어서 1969년은 매우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1970년대의 프랑스 프로그레시브 록계를 이끌어 갈 2대 그룹이 이 해에 탄생을 보기 때문이다. 그 하나가 키보드 주자들인 Decamps 형제를 주축으로 결성된 Ange이고, 다른 하나가 드러머 Christan Vander에 의해서 결정된 Magma이다.  당시 Ange의 결성은 프랑스 록계에 커다란 화제거리였었다. 결성된지 4개월 만에 Est Republicatin지에서 그들을 평가 하기를 "Le Premier(OpéraPop) Fransais Présenté Demain au Centre Cultural de la Présenté" (최초로 프랑스가 내놓을만한 진보적인 -오페라 팝- 중심문화의 묘목)이라고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Magama의 결성과 운명은 순탄치 못했었다. 그룹이 결성돤 후 40차례 이상의 잦은 멤버교체가 있었을 정도로 매우 불안정했으며 평론가들과 관중들에게 냉대를 받았었다. 하지만 Magma는 여기에 굽히지 않고 후에 실험적인 록그룹으로 커다란 명성을 얻어냈다.
  당시 프랑스의 록계는 영국과 미국을 모방한 재즈와 사이키델릭 록사운드 속에 그들의 전통적인 샹송을 섞는 이색적인 음악을 만들어 냈고, 다분히 실험적인 경향을 띠고 있었다.(다른 나라에 비해 프랑스의 록은 음침하고 강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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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록계의 수퍼그룹 Magma의 마스코트

 * 1969년 미국,영국,독일,이태리,프랑스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뚜렷한 특징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한다.
 1970
 
 1960년대 말에 탄생하기 시작한 세계 각처의 수많은 프로그레시브 그룹들은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연주력 향상, 녹음기술과 악기의 발달로 그들의 최전성기를 맞게 된다.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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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미국의 프로그레시브 팝 감각을 약간이나마 들을 수 있었던 N.Y. R'nRoll Emsemble,J.S Bach의 Brandenburg를편곡하여 연주했다.

미국의 록계에 있어 1970년은 다사다나한 한 해였다.
 Jimi Hendrix의 사망(9월 18일, 기타의 천재라 불리우던 그는 모국인 미국보다 영국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janis Joplin의 사망 (10월
 4일, 마지막 작품 "Pearl"을 남기고 록의 여왕은 사라 졌다) 등이 60년대 말 병폐문화(마약문화)의 비극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또한 하드록, 프로그레시브록 등의 영국음악 강세에 눌려 프로그레시브 부문은 말할 것도 없고 남부음악과 샌프란시스코 음악의 일부분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침체기였다.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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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 Palmer가 재적 했었던 Atomic Rooster의 데뷔앨범

1970년에 들어서면서 그동안 멤버들간의 분열을 보여오던 Beatles가 곧 해산할 것을 선언함으로써 영국 록계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다 주었지만 하드록과 함께 프로그레시브 계열에선 활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Keith Emerson이 이끌었던 Nice는 그들의 마지막 앨범인 "Elegy"를 발표 했고 Carl Palmer가 재적했던 Atomic Rooster는 데뷔앨범을 발표했다. 또한 Greg Lake의 King Crimson에서의 마지막 목소리가 담긴 "In The Wake of Poseidon"이 발표됐으며 Emerson lake & Palmer가 결성되어 데뷔앨범을 발표했다.
 [##_'1L|bk56.jpg|width="178"_##]가 수록되어 있는 Curved Air의 데뷔 앨범 ' 했었다.? 참가 Jabson도 Eddi 재적했었고,후에 Monkman이 Francis 이그룹에는 Airconditioning?.>영국 뿐만 아니라 미국 등지의 여러 음악지에서 대호명을 받았던 Pink Floyd의 "Atom Heart Mother"가 발매됐고 Darry1 Way와 여성 보컬리스트 Sonja Kristina가 이끄는 실험성을 살린 진보그룹 Curved Air가 데뷔앨범 "Airconditioning"(Sky가 리바이벌 한 <Vivaldi> 수록)을 발표했다.
 Genessis가 악기를 강화, 프로그레시브 지향의 그룹으로 완전히  탈바꿈해서 <The Knite>가 수록된 걸작 - 두번째 앨범 "Trespass"를 발표했고, Yes 또한 연주력 향상으로 프로그레시브 지향의 두 번째 앨범 "Time And A Word"를 발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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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k Wakeman이 게스트로 참가했던 Strawbs의 Dragonfly

Strawbs는 Rick Wakeman을 게스트로 <The Vision of the lady of the lake>라는 대곡을 완성, 비로서 프로그레시브 영역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영국의 Jazz Progressive를 이끌어 왔던 Soft Machine은 "Third" 앨범을 발표했으며, 또한 Free Jazz의 묘미를 가득 풍겨주었던 Manfred Mann Chapter Three가 Volume Two  앨범을 발표했다.(대곡 "Happy Being Me"는 Free Jazz의 극치를 맛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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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ft Machine의

독일
 당시 독일의 록계 공통점은 미국, 영국의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영향과 실험적인 현대 음악의 계승으로 매우 복잡하고 난해한 음악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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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Ohr 레이블 산화의Pilz 레이블.회사의 상징인 버섯이 인상적이다.

Tangerine Dream은 대망의 데뷔앨범  "Electronic Meditation"은 Ohr 레코드사를 통해 발표했다. 그러나 Klaus Schulz는 결혼과 자신의 공부, Ash Ra Tempel의 가입 등등으로 그룹을 떠났고 그의 후임 으로 Agitation Free의 젊은 재즈 드러머 Christoph Franke를 가입 시켰다(Klaus Schulz는 베를린의 공과대학에서 독일문학, 심리학, 음악[실험적인 작곡법]등을 공부했다.
 Florian Fricke는 마야 고대문서의 이름을 그룹명으로 한 Popol Vuh를 결성했다.(Florian Fricke는 1959~1963년 사이에 뮌휀과 후라이브루크에서 음악을 공부하다가Electronic에 흥미를 가지고 그룹 결성을 꿈꾸어 왔었다.
 Music Express지에서 Amon Düül II는 "최고 인기 언더그라운드 그룹"과 Blues 부문 2위로 선정됐으며 두번째 앨범 "Yeti"는 "Album of the Year"로 선정됐다. 반면 Amon Düül I은 최후의 앨범 "Paradies Warts Düül을 발표했다. 사이키델릭 록을 지향하는 Guru Guru는 UFO라는 데뷔앨범을 발표 했다(Sounds지는 Guru Guru가 연주력이 향상되었으며 리듬이 진보적이라는 것을 중요시하면서 이들이 Cream과 매우 비슷한 스타일로 연주하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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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의 마지막 앨범

Can은 영화음악의 전문가들로서 성공을 보았으며 그들의 레코드 회사가 두번째 앨범인 "Sound Tracks"를 발표했다(이 앨범에는 "Dead Lock", "Cream","Mëdchen mit Gewalt", Deep End", "Bottom"의 주제곡을 담고 있다). Music Express지는 Can을 인기 언더그라운드 그룹부문 4위, 블루스 부문 3위로 선출하고 데뷔앨범 "Monster Movie"를 "Best Seller 6걸) 앨범으로 선정했다.
 그 외에도 실험적이면서 Free Jazz 스타일의 언더그라움드 그룹 Annexus Quam이 데뷔앨범을 발표했고, 30종류의 악기를 동원시키는 스케일 큰 그룹으로 정치색을 가미한 Floh De Cologne (1969년 데뷔)가 두번째 앨범 "Fliebband Babys Beat-Show"를 발표했고, Inga Rumpf가 주축이 된 Frumpy가 데뷔앨범 "All Will be Changed"를 내 놓았다. 그리고 5인조 그룹인 Sweet Smoke도 "Jast A Poke"란 앨범으로 데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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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ol Vuh. 왼쪽의 여성이 한국인 소프라노 가수 정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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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의 PFM


 



 


 



이태리
 당시 이태리의 록사운드는 클래식처럼 웅장하면서도 심오한 사운드가 주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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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nula 3의 리더였던 Alberto Radius의 솔로 앨범

1969년 Lucio Battist와 Mogol에 의해 발족됐던 Numero Uno레코드로부터 이태리의 본격화 록 그룹인 Formula 3가 데뷔앨범 "Dies Irae" (노한 날)을 발표 했다. 이태리의 수퍼 그룹 New Trolls는 앨범 "New trolls"와 최고 걸작앨범 "Concerto Grosso Per I"를 발표 했는데 "Concerto Grosso Per I"  는 Luis Enriquez Bacalor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의 도움으로 웅장하면서도 박력넘치는, 거기에 아름다움까지 함축한 훌륭한 작품이었다.(이 앨범은 영화 "La Vittima Designata"의 오리지날 사운드트랙 앨범이며 Jimi Hendrix를 위한 곡도 들어 있다).
 그밖에 II Balletto Di Bronzo가 심오한 데뷔앨범 "Sirio 2222"를 발표했고 키보드 주자 Giorgio Usai를 주축으로 한 Nuova Idea가 미완성한 "In The Beginning"이란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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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오한 음악을 펼치는 Il Balletto Di Bronzo

앨범을 발표했다.
 이태리의 베테런급 그룹인 Le Orme가 데뷔앨범 "Ad Glorian"과 두번째 앨범 "Láurora"를 발표한 이후 Philips로 이적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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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기 Gong


우리가 생각하던 기존 샹송에서 완전히 탈피한 획기적인 프랑스 록은 강력하면서도 그 속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멋이 숨쉬고 있다.
 Ange는 Est Republicain지에서 대호평을 받으면서 45차례의 간소한 순회공연을 마쳤다.(France pop music 誌 1970.11.28) 그들의 데뷔성공작 <General Machin>(Van Morrison의 <Gloria>와 비슷)을 비롯해서 여러 곡들이 기존 샹송의 인식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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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net Gong 철학을 창조해낸 Daevid Allen

정신적으로 Daevid Allen's Gong의 유일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는 "Magick Brother"가 발표되었다(호주인인 Daevid Allen은 1961년 영국으로 건너가서 이듬해에 Robert Wyatt를 만났고 Canterbury Family 일원들과 Soft Machine은 프랑스 여행을 하게 되는데 이때 Daevid Allen은  Soft Machine을 떠나 프랑스의 유능한 뮤지션들과 새로운 그룹을 구상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Gong이란 그룹이다) 사실 Daevid Allen은 9인 편성(실제로는 15명 정도 였다)으로 앨범을 발표하고 끄룹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초반기의 Gong에 자신의 곡들을 주어 Project형식의 그룹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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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ke Hugg의 애절한 보컬이담겨 있는 Manfred Mann Chapter Three의 데뷔앨범



그 밖의 나라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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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륫을 부는 Focus의 리더 Thijs Van Leer와 기타리스트 Jan Akkerman


당시 Focus는 <Spoke The Lord Creator> 뒤늦게6번째 앨범인 "Ship of Memories"앨범에 수록 되었던 곡)을 작곡 했다(멜러디 부분은 리더인 Thijs Van Leer가 도맡았다). 그리고 드러머 Hans Eric Cleuver 대신 Pierre Van Der Linden이, 베이스 주자 Martin Dresden 대신에 Cyril Havermans가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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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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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의 키보드 주자를 포함, 총 6명의 뮤지션과 1명의 라이브 엔지니어로 구성된 Eela Craig, 이들은 모두 교사라는 것이 놀랍다.


T.V. 세션으로 만나게 된 여러명의 음악인들이 서로 같은 뜻을 지니고 Eela Craig라는 수퍼 그룹을 결성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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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19세기 천재 기타리스트를 보유한 록 트리오 그룹 November(Cream의 영향을 받은 그룹), 역시 하드 록 트리오인 Opus III가 등장 했다.
 또한 스웨덴을 대표하는 북구 전통파 재즈 록 그룹 Made in Sweden이 모습을 나타냈다.
 핀란드
에선 Wigwan이 두번째 앨범 "Tombstone Valentine"을, 덴마크에선 burnin Red Ivanhoe가 두번째 앨범을 각각 발표했다.

 
 
 
 
 
 

출처:http://gpr2425.hihome.com

Posted by 겨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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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redwetsex.net/go/amputee-ladies BlogIcon amputee ladies 2007.10.18 0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보세요, 아주 좋은 위치!

  2. Favicon of http://hot-girls-2008.net/queer-as-folk-actor BlogIcon queer as folk actor 2008.03.13 06: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수한과 아주 도움이 되는!

  3. Favicon of http://bikinierosbliss.net/go/reason-for-loss-of-libido BlogIcon reason for loss of libido 2008.05.23 05: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대한 축하!경이롭 위치 위치!

월간팝송 1984년 6월호, 프로그레시브, 그 신비를 벗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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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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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년 동안 MBC-FM 심야프로를 통해 전해지던 성시완의 '음악이 흐르는 밤에' 란 프로그레시브의 한 공간이 이번 봄철 프로개편과 함께 DJ의 일신상의 이유로 중단되자 많은 프로그레시브 팬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러던 차에 월간팝송사로부터 매우 반가운 소식이 들려 왔다. '프로그레시브 음악'에 관해 성시완씨의 글을 싣게 되었다고 한다. 본인 스스로는 아직 미숙하다며 글쓰는 것을 굳이 사양 하던 그도 많은 사람이 갈구하는바를 저버릴 수 없었나 보다, 그의 남다른 음악적 감각과 탐구하는 자세가 이제는 방송이 아닌 활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되었다니 무척 반갑다. 앞으로 자주 이런 만남을 가질 수 있길바라며 지면을 할애해주신 월간팝송에 더한 발전이 있기를 기원한다.
                                                 김성봉<팝컬럼니스트>
 
 
 
======= 머리말=======
 언젠가 무거운 발걸음으로(물론 입시 때문이었지만) 남산국립도서관을 올랐을 때 산 허리에서 반기던 상큼한 안개를 나는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때 헤드폰에서는 Justin hayward의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며, 내 피부에 와 닿는 솜구름처럼 하얀 안개는
 나를 비롯한 주위의 모든 사물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얼마 전 월간팝송사로부터 Progressive에 관한 원고를 부탁 받고 책상에 앉아 있으려니까, 그 때의 안개가 바로 음악에 있어서 프로그레시브가 아니었는가하는 생각이 든다. 프로그레시브는 Blues, Jazz, Rock처럼 뚜렷한 장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모든 음악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새벽을 삼켜버린 상쾌한 안개와 같다고 비유해도 결코 지나친 표현은 아니라 생각된다.
 그러나 막상 프로그레시브라는 음악을 소개하려다 보니 약간의 두려움이 앞서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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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조용하고 심오한 음의 세계를 펼친 Vangelis의 'Beaubourg', 고요는 동양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프로그레시브라는 용어가 매우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세계의 수많은 음악인과 음악 평론가들이 그에 대한 확실한 정의를 내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외국의 많은 음악서적과 음악평론가들의 글을 읽어 보았지만 수긍이 갈만한 프로그레시브에 대한 해설과 정의를 지금껏 대하지 못했다. 대부분이 종류의 나열, 간단한 분석, 그룹소개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자신도 자신의 견해를 바탕으로 해서 여러 참고자료를 곁들여 프로그레시브라는 음악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해보려는 것이지 결코 정확한 해설이나 정의를 내릴수는 없다고 본다. 앞에서 말한 내용의 이해를 돕기위해 지난해에 방송을 위해 배부했던 'Underground Papyrus' 8호를 잠시 참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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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 Dean이 그린 Steve Howe의 솔로 데뷔앨범 'Beginnings'






















 "확실히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첫째,Progressive라는 단어 자체가 음악용어로 쓰이기에는 결코 모순되지는 않지만 어떠한 장르에 쓰이기는 애매 모호하며 매우 폭넓게 쓰고 있기 때문에 그 윤곽을 확실히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 (프로그래시브는 록에 국환되지 않고 재즈, 클래식 등 모든 것을 포함시키고 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프로그레시브 Grossover와 흡사하다.)
 둘째, Progressive는 듣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연주자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자기 자신들을,프로그레시브주자'라고 불렀기 때문에 주객이 일치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융통성이 없다는 것이다.
 셋째, 이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뜻만으로도 어떠한 음악의 종류일지라도 Progressive의 테두리 안에 끌어 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 Progressive - Jazz, Progressive - Rock, Progressive - Pop 등등).
 물론 이외에도 음악에서의 프로그레시브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으나 위의 내용들만 보아도 프로그레시브라는 음악이 하나의 장르로 취급할 수 있다.
 다시 원초적으로 돌아가서 Porgressive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게 되면 '진보적인', '전진하는' 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 단어가 음악에 쓰이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인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된다.
 1950년대로 들어서면서 유럽에서는 재즈의 붐과 함께 새로운 음악적 시도가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바로 Jazz에 Classic처럼 화성법과 대위법을 적용시키는 것이었다. 이것은 바로 Progressive Jazz 즉, 진보적인 재즈로서 프로그레시브라는 단어가 음악에 처음으로 도입된 것이었다. 여기서의 진보적이라는 뜻은 아마도 작곡기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렇게 씌여졌을 것이라고 추측되어 진다.
 언젠가 일본의 한 음악지 애독란에 Q&A에서 프로그레시브를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해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프로그레시브는 대체적으로 크게 Jazz Progressive와 Classical Progressive로 나뉜다" 라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설명은 단지 Jazz와 Classic을 나누는데만 급급 했지 프로그레시브에 대한 설명이라곤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음악에 있어서의 프로그레시브의 위치를 집중 연구함으로써 그 뜻에 가장 접근되는 해답을 찾으려는 것이다. 우선 이러한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참고자료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많은 참고자료를 조사해서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아 주로 유럽의 록 서적을 중점적으로 참고 했으며 글쓴이의 견해도 많이 반영됐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
 Progressive라는 음악을 이야기하기위해서는 앞에서도 암시했지만 Jazz와 Classic 그리고 Rock과의 관계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클래식은 재즈가 발생하기 전부터 존재해 왔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 때문에 클래식과 재즈 가 먼저 만났으며 여기에 록이 뒤섞임으로써 프로그레시브라는 것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현재 Progressive Music과 제일 밀접한 것은 Jazz Rock이라 생각된다. 재즈에 록이 가미 됐다는  것 자체가 프로그레시브의 의미를 지니지만 유럽의 재즈-록 아티스트들의 생각이  너무 진보적이었다는 사실에도 비롯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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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 동화를 생각케하는 Wallenstin의 4번 째 앨범"Stories, Songs & Symphobies" 

 최초로 Progressive의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유럽,특히 영국이었다. 물론 이것은 재즈에서 파생된 Jazz Rock이라는 범주에서 발생했는데 이례적으로 재즈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강한 비트(beat)가 가미 됐다는 점에서 진보적이라는 것이었다.
<중략>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프로그레시브는 매우 광범위하다. 그만큼 그런류의 음악을 연주하는 뮤지션들도 다양하며, 음악성격도 가지 각색이고, 자기나름대로의 강한 독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레시브 음악의 강한 개성 때문에 매니어(mania)들로부터 가장 수준 높은 음악이라고 평가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프로그레시브 음악이 보통(대중들에게) 어렵게 들리는 이유는 그것을 이해하기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단순히 시간의 문제 때문일 것이다. 프로그레시브는 클래식과 재즈처럼 이해하는데 청취자로부터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음악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곡들이 장시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하나의 주제 테마를 가지고 연결 형식을 많이 취하고 있다. (예를 들면 Mike Oldfield의 별자리를 뜻하는 <Taurus 1,2,3> 이라는 곡들은 각각 "Q.E.2", "Five Mike Out", "Crises" 세 앨범에 수록되어, 3장의 앨범들을 연결시켜주고 있다.
 
======= Progressive의 분류 형태 =======
< 여기서는 전반적인 Progressive Rock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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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에서 간단히 언급했었지만 프로그레시브 록의 형태는 Rock이 가미된 상태에서 Classic에 중점을 두느냐 Jazz에 중점을 두느냐, 또는 클래식과 재즈 양쪽 모두에 같은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 진다. 클래식에 중점을 둘 경우에는 순수고전음악과 현대음악 (avant-garde)을 행하는 두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지며 Jazz에 중점을 두는 경우에는 정통재즈에 록을 가미한 그룹과 free jazz 형식의 그룹으로 크게 구별 된다. 또한, 클래식과 재즈에 모두 비중을 두는 경우는 위의 두 가지 경우를 복합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대 표 그 룹

형 태

(1)

 Renaissance

Classic을 기반

(2)

 Agora

유럽 Jazz에 Rock을 가미

(3)

 New Trolls

Jazz와 Classic을 Rock에 도입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프로그레시브 음악을 하려면 클래식이나 재즈에 충분한 기반이 있어야 된다는 점이다. (예외로 Tangerine Dream의 리더인 Edgar Froese는 록 키타리스트로 출발해서 키보드로 전향했고, Klaus Schulze는 록 드러머에서 키보드로 전향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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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naissance의 앨범 중 가장 아름다운 재킷으로 알려진"Novella"
       Churchmouse라는 이색적인 이름을 가진 사람이 디자인 했다.

 
 == 음악 내용에 있어서 ==
프로그레시브 음악들의 내용은 주로 신화, 종교, 철학(특히 인간의 내면세계), 우주적인 것(SF), Folk적인 것, 추상적인 것, 에로스(eros)적인 것 등을 복합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예를 들면

신화:
 EL&P-> "The Three Fate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운명의 세 여신을 테마로 했다.)
IL Balletto Di Bronzo -> "YS"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을 테마로 했다.)
 
전설:
 Rick Wakeman -> "...Myths and legends of King Arther..." (6세기경의 전설적인 영국왕을 테마로  했다.)
 
 
종교:
 Latte E Miele -> "Passio Secundum Matteum"
(그리스도의 수난, 유다의 배반, 그리스도의 처형, 그리고 부활을 드라마로 구성 했다.)
Popol Vuh -> "Hosianna Mantra" (하나님과 예수의 성호를 찬미 했다.)
 
 
 
철학:
 Gong -> 1974년 이전의 Daevid Alle의 Gong 앨범들 (Daevid Allen의 독자적인 Planet Gong 철학)
Museo Rosenbach -> "Zarathustra" (19세기 후반의 철학자 Nietzsche의 철학 서사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테마로 했다.)
 
 
 
에로스:
 Klaus Schulze -> "Body Love" (육체공동체라는 erotic 영화의 사운드 트랙)
IL Balletto Di Bronzo -> "YS" (그리이스 신화의 여신 YS의 낮과 밤의 성적 쾌락을 음악으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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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dom Come의 Space Sound를 담은 명반 "Journey"


 우주적인
 것(SF):
 Julian Jay Savarin -> "Waiter On the Dance" 당시 27살의 젊은 흑인 작가 Julian Jay Savarin의 처녀작 SF소설 "Waiters On the Dance"를 기반으로 자싱이 이끄는 그룹에 의해 완성된 걸작)
 Kingdom Come -> "Journey" Melotron을 최대로 사용해서  우주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낸 걸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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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an Jay Savarin의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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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pgnosis가 디자인한 Pink Floyd의 앨범 "A Saucerful of Secre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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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 "Waiters On the Dance"와 저자 Julian Jay Savari
 













======= 앨범 재킷 =======
(Album Cover)
 
 프로그레시브에 있어 앨범재킷은 음악 만큼이나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프로그레시브 계통의 앨범들은 음악과 재킷 예술이 상호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앨범 Cover만 보고도 쉽게 프로그레시브 앨범임을 알 수 있다. - 악기 편성으로도 프로그레시브 지향의 음악임을 짐작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프로그레시브 그룹들은 앨범 Cover디자인에 상당한 관심을 가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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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k Floyd가 "Animal" 앨범을 예정보다 늦게 발표 했던 이유가 바로 재킷 문제 였었다.)
 재킷 디자인의 최고봉이라고 일컬어지는 Hipgnosis난 Roger Dean이 재킷 디자인으로 프로그레시브 영역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들의 재킷 예술이 음악과 더불어 강한 개성을 나타내주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재킷은 Disc 보호와 상업적인 목적으로 쓰이기 시작 했지만, 프로그레시브 영역에서는 음악을 보다 쉽게 이해 시키는 또 하나의 레코드 예술로 부각 됐다.)
 프로그레시브 그룹중에는 음악에 맞는 재킷 디자인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상징하는 마스코트를 재킷에 삽입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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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용 힌쥐를 그룹의 마스코트로 사용했던 Triumvirat

Triumvirat의 경우에는 생쥐(특히 실험용으로 쓰이는 힌쥐)를 마스코트로 4번 째 앨범까지 등장 시켰었다. 그 이유로는 그룹명이 rat(쥐)로 끝나기 때문이라고 추측되어진다. Amon Duul 또한 들쥐(특히 Lemming이라는 나그네 쥐)를 마스코트로 "Tanz Der Lemminge" 그리고 "lemmingmania"
라는 best 앨범을 발표 했었다. 재즈 전위그룹인  Henry Cow는 양말 한 짝을 앨범마다 다른색으로 바꾸면서 마스코트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캐나다의 3인조 진보그룹인 Klaatu는 생쥐와 해, 그리고 우주, 고대 신비의 도시를 재킷에 담고 있는데
 특히 생쥐와 붉은 해 방긋 웃는 노란 해를 마스코트로 자주 등장시키고 있다.
 Strawbs는 딸기를, Barclay James Harvest는 나비를 각각 마스코트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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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옷을 입은 생쥐와 자연 그리고 우주,Klaatu는 우주를 그룹의 상징으로 한다.






 
총 천연색의 나비는 BJH의 마스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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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비의 고대사원 뒤로 저물어가는 붉은 해는 Klaatu의 상징이다.
그들의 두 번째 앨범 "Hope!"

 


















===== Group Name =====
Progressive 그룹들의 이름에서는 민족적이며 국가적인 것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면 Wallenstin (독일 그룹; 30년 전쟁당시의 독일장군 이름을 그룹명으로 채택), Holderlin (독일 그룹; 독일의 시인 이름을 채택), P.F.M. (이태리 그룹; 끝자인 M은 Marconi로서 이태리의 전기학자이며 무선전신 발명자이다)등이 대표적이며 영국의 신생 프로그레시브 그룹인 Twelfth Night는 영국작가 Shakespeare의 동명(同名) 작품에서 그룹명을 따왔고, 스페인 프로그레시브 그룹인 Granada는 스페인 남부의 수도 Granada를 그룹명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예외로 벨기에의 프로그레시브 그룹인 Machivel은 이태리의 외교가이며 정치가인Machiavelli를,프랑스의 진보그룹인 Mona-Lisa는 이태리 화가 Leonardo da Vinci가 그린 명화 Mona-Lisa를 그룹명으로 했고, 독일의 신생 진보그룹 Rousseau는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사상가 루소를 그룹명으로 했다. 또한키보드를 중신으로한 이태리의 진보그룹 E.A.Poe는 미국의 단편소설 작가이며 시인인 Edgar Allan Poe를 그룹명으로 하여 활약 했었다.
 이외에도 강한 인상을 풍기는 그룹명이 많다. 이태리와 독일을 예로 들면 이태리 그룹들은 Agora(고대 그리이스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민중의 광장 이름), Apoteosi (숭배라는 뜻), Banco Del Mutuo Soccorso (공제를 위한 은행), Cervello (두뇌), Celeste(하늘색), IBIS(하얀 해오라비) , II Volo (비행), Latte E Miele (우유와 꿀), Le Orme (흔적), Osanna(갈채)등 매우 다채로우며, 독일 그룹으로는 Ash Ra Tempel (Ash=형태를 가진 것 또는 무상한 것;Ra= 인식;Tempel = 존재에 대한 확고한 상징), Faust (여기서는 "주먹"이란 순수한 독일어), Popol Vuh(남미 마야족의 종교에 관한 책 이름) 등등 매우 심오한 뜻을 함축하고 있는 그룹명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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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판을 상징하는 진보그룹 Fields, Rare Bird의 창단멤버이며 리더인
Graham Field의 이름에서 그룹명을 채택했다.









===== 국가적인 분류 =====
 국가적인 차원에서 볼 때 프로그레시브 음악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국가들이 매우 강하다. 영국은 말할것도 없고, 이태리와 독일은 각각 백 여개의 프로그레시브 그룹들을 갖고 있으며 프랑스와 스페 등도 각각 백여개에 달하는 진보그룹들을 갖고 있다. 또한 캐나다, 벨기에, 스위스, 네랜드, 그리이스,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오스트리아등등 여러 국가들도 진보그룹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여기서는 모든 유럽국가의 진보영역의 역사에 대해서 언급하기가 지면 관계상 곤란 하므로 영국, 이태리, 독일등 진보영역의 강대국들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 영국
 영국은 그야말로 프로그레시브 음악의 원산지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의 진보영역의 발달과정은 여러 형태로 설명될 수 있으며,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단히 소개하는데에 그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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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British Jazz Rock 계보"에서 보는 것처럼 1960년대 초반부터 영국의 재즈 록은 서서히 프로그레시브 영역으로 뻗어나가기 시작 했다. 이것이 1960년대 말에 와서 절정을 이루게 되고, 1970년대 중반부터는 서서히 침체되는 경향을 나타낸다. 도표로는 표시되지 않았지만 클래식 프로그래시브 영역에서도 대중적으로 성공한 Moody Blues(일종의 pastoral sound)와 전위적인 성격을 내포하면서 클래식을 추구했던 Curved Air(록의 2대 바이얼리니스트를 배출 시킨 그룹 -Eddie Jobson도 이 그룹에 재적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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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해와 방긋 웃는 노란 해는 Klaatu의 마스코트다.












Sky가 <Vivaldi> 를 리바이벌 했음), 틀래식적인 감각에 포크(Folk)를 추구 했던 Barclay James Harvest(Moddy Blues와 함께 pastoral sound group), 그리고 순수한 클래식을 자주 표절했었던 Annie Haslem의 Renaissance, 초창기 Bluegrass의 컨트리 스타일에 포크와 컨트리를 섞으면서 1972년부터 악기의 강화 - 특히 신서사이저와 멜로트론의 사용- 로 프로그레시브 영역에 도전했던 Strawbs, 그리고 Pink Floyd나 Yes, King Crimson, Genessis, Jethro Tull듣듣 유명 그룹들은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겠다.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대개의 프로그레시브 그룹들이 영국 그룹들이며 수많은 유럽국가들의 진보그룹들이 또한 영국의 진보그룹에게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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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풍속도를 나타내는 Genessis의 6번째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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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명반으로 손꼽히는 Popol Vuh의 3번째 앨범 Hosianna Mantra" 이 앨범의 보컬은 우리 한국여성들이 맡았다.

# 독일
 독일의 프로그레시브는 선조들의 민속음악과 클래식에 신비주의, 심층주의, 허무주의(Dadaism),공상적인(Romanticism) 것을 가미 시켰고, 여기에 1960년대 말의 미국과 영국의 록 그룹들의 영향, 마약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급성장 했다. 기반을 굳힌 독일의 프로그레시브 음악계는 그 영역 또한 광범위하지만 대체로 beat group 과 electronics group으로 나누어진다. beat 그룹은 영국과 미국의 사이키델릭 사운드 (pshchedelic sound)에 영향을 받으면서 베를린을 중심으로 1969 ~ 1972년 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electronic 그룹은 현대음악인 실험음악 (avat-garde)으로부터 발샐해서 beat그룹의 쇠퇴기인 1973 ~ 1974년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대표적인 beat 그룹으로는 Amon Duul I, Guru Guru등이 있고 electronic 그룹으로는 Tangerine Dream, Ash Ra Tempel 등이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이들과는 별도로 특이한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Popol Vuh(특히 이들은 fragrant music에 속함)와 Emtidi등은 신비주의 음악을 행하는 그룹들로 서로 다른 관점에서 평가 받고 있다.
 
# 이태리
 이태리의 프로그레시브 영역도 매우 복잡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몇개의 그룹이 주측이 되어 서로의 지역적인 특성을 가지고 대채로운 양상을 나타내고 있는데 때로는 정치적인 성격을 띠기도 한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태리는 Anglo-America의 영향에 대해 매우 개방적이었으나 소수의 음악인과 레코드 업계의 자체적인 창작과 개발로 말미암아 그들 특유의 독자적인 음악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들의 음악문화를 보호하겠다는 cantatore(싱어 송라이터를 뜻함)들의 투철한 정신 때문에 가는 했었던 것이다. 그후 cantatore들의 인기가 치솟고 그들이 성공하자, 이태리의 프로그레시브 영역 또한 안정되고 점점 확장 되기 시작 했다. 이와 더불어 1970 ~ 1972년 사이 이태리 라디오 방송의 리퀘스트가 그곳의 전통음악 쪽으로 급증함으로써 자연적으로 이태리의 프로그레시브계는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대부분의 이태리 그룹들은 순수한 록 그룹으로 출발 했었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선조들이 남긴 고전 음악, 고전 악기들을 변형시켜 새로운 음악을 시도했고 이것이 프로그레시브 영역으로 확장되었던 것이다. 초창기 이태리의 프로그레시브 록계는 P.F.M., New Trolls, Banco, Formula3, Le Orme, Osanna, Area 등에 의해서 이끌어 왔었다.( 특히 P.F.M.과 Banco는 이태리 록의 독특한 기질을 상징하고 있는 그룹이다.) 이러한 초창기 이태리 진보 그룹들은 조그만 신흔 레코드회사(minor label)들의 설립에 발 맞추 어 서로 협조하는 가운데 커다란 성고을 보았다.(대표적인 공로자로서 Numero Uno label의 뮤지션인 Lucio Battisti와 프로듀서 Mogol이 손 꼽힌다.) 이태리의 진보그룹들은 지역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나폴리 출신의 Osanana (->Uno->Nova), 제노바 영역의 New trolls, (특히 Studio G를 중심으로) Alphataurus, 그리고 로마 출신의 Banco Del Mutro Soccorso가 대표적인 이태리 그룹들이다.
 우리가 독일과 이태리의 프로그레시브 록계의 성공과정을 살펴보면서 쉽계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은 한 나라에 프로그레시브를 성공 시키려면 민족문화의 계승과 창작, 그리고 창시자적인 뮤지션이나 그룹의 등장, 여기에 뒷받침이 되는 minor label의 설립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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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앨범 속의 Latte E Mielle
 











 
 
 
 
 
======= 맺음말 =======
 지금까지 다각적인 갇도에서 프로그레시브 영역에 가까이 접근하려고 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프로그레시브라는 음악을 직접 듣고 느끼는 그 자체에 있다고 본다. (음악은 보는게 아니라 듣는 것이니까.) 그러나 불행한 것은 우리 레코드 시장에는 프로그레시브 계통의 음악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 자체의 것도 거의 없을 뿐아니라 남의 것도 잘 수입이 안되어 한마디로 우리에게는 미개척 예술로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다. 앞으로는 그러한 편식적인 냉대가 차차 풀리리라 기대하며, 현재의 우리에게는 접할 수 있는 소수의 프로그레시브 음악만 이라도 열심히 듣고, 느끼며, 평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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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gelis의 "Beaubourg"의 재킷 속 그림 - 수도승이 바이얼린을 들고 있다.

 2년 동안 대중매체 속에서 프로그레시브 지향의 음악들을 소개하면서 뼈 저리게 느낄 수 있었던 사실은 그 동안 우리가 이러한 음악에 있어 너무 마음을 닫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에 반해 일부 음악애호가들은 이러한 음악에 많은 관심을 갖고 대단한 열의를 쏟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반갑고 고맙기까지 했다. 앞으로 우리 음악시장에도 프로그레시브 지향의 음악이 많이 보급되리라 믿으며 몇년안에 우리들 속에서도 훌륭한 프로그레시브 그룹이 많이 탄생되길 기대해본다.
 여기서 한가지 밝히고 싶은 사실은 프로그레시브 음악이 결코 대중성이 전혀 없는 음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예로서 1960년대 말 레코드 산업계에 불황기가 닥치기 시작했을 때, 영국의 대학가에서 프로그레시브 록 레코드가 큰 이윤을 남겨주는 시장으로 등장함으로써 때아닌 지속적인 호황을 누렸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다.(참고자료: Special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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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gelis가 시도했던 중국음악 "China" 앨범, 그는 동양의 신비로운 음악세계를 좋아한다.

 "Gramaphone Records" Retail Business P. 159, [May.1971]). 레코드회사로선 1970년대 초반에 Polydor 레이블이 최대의 Progressive label로 부상됐고 , 1970년대 중반부터는 Virgin label이 새로운 이미지의 프로그레시브 영역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이 굴지의 회사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더욱 부강하게 만들고 있다.
 반도체만이 수출의 진로가 아니라 한국이 앞으로 낳을 프로그레시브 음악도 물질을 초월한 뜻 깊은 예술의 수출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때가 되면 여러분들이 지금 일고 있는 이 책 전체를 우리들의 음악 이야기로 가득채우게 될 것이며, 우리 음악을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평론도 하게되는 뜻깊은 장소도 수없이 세워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Posted by 겨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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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hotpinksexo.com/sel/blood-eating-right-type BlogIcon blood eating right type 2007.10.18 06: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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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를 위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