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쪼네'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7.11.02 NICOLA DI BARI - Un Successo dopo L'altro앨범듣기 (3)
  2. 2007.06.11 깐쪼네에 대하여 (1)
  3. 2007.06.11 MINA 앨범듣기 (1)
  4. 2007.03.31 Canzone 장르
  5. 2007.03.08 ALUNNI DEL SOLE -I Successi (1997년)앨범들어보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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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L MINDO E'GRIGIO, IL MONDO E'BLU
02.I GIORNI DELL'ARCOBALENO
03.PAESE
04.LA PRIMA COSA BELLA
05.GIRAMONDO
06.UNA RAGAZZINA COME TE
07.ERA DI PRIMAVERA
08.UN UOMO MOLTE COSE NON LE SA
09.CHITARRA SUONA PIU' PIANO
10.VAGABONDO
11.SE MAI TI PARLASSERO DI ME
12.SAI CHE BEVO, SAI CHE FUMO
13.IL CUORE E'UNO ZINGARO
14.ETERNAMENTE
15.ZAPPONETA
16.TI FA BELLA L'AMORE

NICOLA DI BARI - Un Successo dopo L'altro
어느 나라든지 고유의 음악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그 나라 혹은 그 민족 특유의 정서가 담겨져 있다. 음악에도 국적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배제되었을 때 그 음악은 이미 "무 국적"의 음악이다. 이태리 음악사에서도 무국적의 음악들이 많이 양산된 시기가 있었고 진지한 음악 인들과 비평가들은 그러한 것들을 극복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이 태리 고유의 음악형태인 깐쪼네의 역할은 지대한 것이었다. 아티스트들에게는 자신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 어떠한 것인가를, 청자들에게는 예술의 소비자로서 자신들이 지켜야할 것이 무엇인가를 고 민하고 실천하게 한 것이다. 깐쪼네 없는 이탤리언 록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니꼴라 디 바리(Nicola Di Bari) 1940년 9월 29일 자포네따(Zapponeta)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Michele Scommegna였다. 스무살이 되던 1960년에 이태리 음악계에 데뷔하였으며 그는 1963년부터 본격적으로 싱글들을 발표하기 시작한 다. 1964년에는 첫 번째 히트곡 (Amore Torna A Casa(사랑이여 집으로 돌아오라))가 발표되고 대 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어서 그의 음악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이태리의 깐쪼 네계에 있어 막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가장 대표적인 산레모 가요제에 참여하면서부터이다. 그의 눈부 신 활동은 7번의 산레모 가요제 출전경력과 1971년에는 이태리 출신의 미녀가수 Nada와 함께 노래한 (Il cuore e' uno zingaro)로, 1972년에는 솔로로서 참가 (I giorni dell' arcobaleno)로 2년 연속 우 승이라는 영광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이때부터 이미 그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면서 수많 은 히트곡을 만들어냈으며, 멀리 남 아메리카 지역에서까지도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니꼴라 디 바리의 대표곡 모음집 "Un Sussesso Dopo L'altro"

이 앨범을 통해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오는 곡은 역시 1971년 산레모 가요제 수상곡인 (Il Cuore E' Uno Zingaro(마음은 집시))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리퀘 스트를 받고 있다. 이태리 특유의 애수와 서정이 가득 담긴 부담없는 곡이다.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이 아름다운 1972년 산레모 가요제 수상곡 (I Giorni Dell' arcobaleno(무지개 같은 나날들))를 비롯하여 루치오 바띠스띠와 더불어 이태리 음악사에 많은 노래들을 남긴 이태리 최고의 작시가 모골(Mogol)이 함께 만들어준 (La Prima Cosa Bella(처음에 아름다운 것)), (Era Di Primavera(봄의 시간))등에서 는 오케스트레이션 편곡도 가미되어 아트록적인 멋도 즐길 수 있다.

70년대 히트했던 우리나라 가요중에서 박인희씨의 <방랑자>를 즐겨 들었던 이들을 위해서 이태리 어 원곡인 (Vagabondo)를 추천해 주고 싶다. 프로그레시브 록 팬들에게는 올갠 연주가 서두를 멋지 게 장식하는 여덟 번째 곡 (Un Uomo Molte Cose Non Le Sa)를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이 앨범은 들을수록 맛이 나는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듣기에 편하고 부드러운 이태리의 전형적인 깐쪼네 곡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각각의 곡이 풍기는 향기가 서로 달라 지루하거나 싫증을 느끼지 않 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 앨범을 통해 작게나마 70년대 이태리 대중 음악계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 고 이는 70년대 그 전성기를 맞이했던 이탤리언 록을 즐겨 듣는 분들에게도 커다란 만족감을 줄 것이 다.

글/맹한호

Posted by 겨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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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kk 2007.12.26 0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완 레코드에서 거의 베껴 왔군요...ㅠㅠ

  2. Favicon of https://aquajewelmusic.tistory.com BlogIcon 겨울초 2007.12.27 21: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시완레코드와 고려바위 여러곳에서 베껴왔습니다
    ^^

  3. Favicon of http://hotwomens2008.net/go/uncensored-cartoons BlogIcon uncensored cartoons 2008.03.13 05: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치에 중대한 일은 그것을 좋아했다!

깐쪼네 
 
 
깐쪼네 CANZONE는 이탈리아의 대중 가요로 "노래" , "가요" 라는 뜻으로 보통 오페라의 아리아등의 순수 클래식 곡은 포함되지 않으며 대중 가운데서 애창되는 노래를 주로 의미합니다. 그 기원은 나폴리 어민들의 노래자랑에서 비롯된 나폴리민요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깐쪼네 종류에는 예전부터 내려오는 가곡과 작곡가가 만든 서정적인 곡 그리고 외국의 영향을 받은 ROCK적인 곡 등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이건 이태리라는 특수사정과 축제를 좋아하는 국민성등 유행을 목적으로 만든 곡들이 많기 때문이다. 깐쪼네 중에서 "나폴리" 에서 발생한 음악 즉 "나폴리타나"는 일찍부터 세계에 알려진 노래로 O SOLE MIO . SANTA LUCIA .돌아오라 쏘렌토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곡들이 있다. 도시국가이며 지중해 중요 항구였던 "나폴리"는 그리스를 비롯해 로마제국 터키 독일 스페인 오스트리아 프랑스등 정복자들의 의해 점령당했고 이 항구에서의 동서문화 교류는 음악에 많은 영향을 주어 나폴리 만의 독특한 애수적인 음악이 탄생된 것이다. 나폴리의 깐쏘네 "나폴리타나"를 키운 것은 이 도시의 가나한 어부들 이었고 일하면서 인생을 노래했고 외국인 통치의 불만을 노래에서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한 예로 이 나폴리에는 "피에디그로타"라는 가요제가 있었는데 니폴리 변두리에 위치한 "피에디그로타"교회엔 이곳 사람들이 섬기는 성모를 기리기위해 축일인 매년 9월7일 축제를 벌이면서 노래를 했다. 270여년 전 당시 외국인이던 나폴리왕은 민중의 불만을 해소하기위해 이 가요제를 정치적으로 이용 행사를 적극 지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로마황제 "네로"도 이 가요제에 출전했다고 한다 이 "피에디그로타" 가요제를 이어받은 "나폴리 가요제"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이태리엔 많은 가요제가 있는데 "깐쏘니시마""깐따지로""베네치아 가요제 ""여름 디스크훼스티발""산레모 가요제" 등이 대표적이고 그 외 크고 작은 각종 가요제가 있어 온통 음악과 축제를 위한 나라처럼 느껴진다 깐쪼네는 그 서정적인 면과 밝음으로 지금도 전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 칸쪼네 가수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SANREMO 가요제는 1951년 시즌 오프의 관광객 유치책으로 국립방송의 후원을 얻어 시작되어 이탈리아인이 작사 ·작곡한 응모작품을 가수에게 부르게 하여 입상을 결정하는데, 1958년 최우수 입상곡 《보라레》가 세계적으로 유행하여 이목을 끌었고, 1964년부터는 외국인 가수를 초청한 국제가요제가 되었습니다. SANREMO 가요제를 통하여 전통적 향토색 짙은 민요, 서정적 가곡등 다양한 형태의 CANZONE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CAZNONE의 특색은 멜로디가 밝고 아름다우며 정열적이고 누구나 부르기 쉽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내용도 비교적 단순하고 사랑의 노래가 많아 낙천적인 이탈리아인의 기질을 잘 나타내고 있지요. 이태리 언어는 거의 그대로 발음하기 때문에 가사를 따라 부르기가 쉽고, 그들의 음악은 우리들의 감성과도 잘 어울립니다. 그래서 1960년대와 1970년대까지 적지않은 국내 가수들이 이태리 Canzone를 번안해서 불러주기도 했다. 펄시스터즈가 불렀던 '첫사랑...(원곡은 Cuore Matto/Litte Tony 꾸오레 마또 -리틀 토니)' 등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CANZONE중에서도 일찍부터 잘 알려져 있던 곡은 ['O SOLE MIO오솔레미오 ], [MARIA MARI 마리아 마리], [SANTA LUCIA], [CATARI, CATARI], 등의 노래 등이 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에 2005년도 4월20일 방송분 3부 4부 2/3쯤 넘겨서 들으시면 됩니다. Mario Rosini - Sei La Vita Mia(산레모가요제2004년도 기성부문2위곡) (마리오 로시니-세이 라 비따 미아) 탄탄한 피아노 실력과 조자 비눌을 비롯한 다양 뮤지션과의 교류 버클리 유학의 경험으로 탄탄한 음악성이 뛰어남을 보여준 곡. Eros Ramazzotti - Quanto Amore Sei(에로스 라마조띠-꾸안또 아모레 세이) 에로스 라마조띠 에로스는 1963년 10월 28일 로마시 치네치따(Cinecitta)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3년 동안 공부하던 회계학을 과감히 포기하고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기타와 노래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에로스가 이태리 음악계에 데뷔한 것은 1982년 까스뜨로까로(Castrocaro) 가요제의 신인 부문(Nuove Proposte)에 참가하면서였고 이를 계기로 밀라노의 DDD 레코드 회사로부터 음반 녹음 계약을 제의받고 첫 싱글 Ad un amico를 발표했다. 1984년에는 유럽 지역에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와 더불어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이태리의 대표적인 <산레모 가요제(Sanremo Festival)>에서 Terra promessa를 불러 역시 신인 가수 부문에서 대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이 곡으로 그는 대중들에게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아마도 에로스에게는 가장 의미 있는 곡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베스트 앨범에서도 당당히 첫 번째 트랙으로 선곡되었다. 다음 해인 1985년에도 Una storia importante로 산레모에 출전, 입상하지는 못했으나 대신 청중들로부터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연이어 세 번째로 참가했던 1986년 제 36회 산레모에서는 마침내 Adesso tu로 대망의 우승 트로피를 가슴에 안았으며 이태리 뿐만 아니라 유럽 지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에로스는 어느 잡지와 가졌던 인터뷰에서 당시 청중들의 환호와 벅찬 감동과 감격의 눈물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산레모 가요제에서 우승한다는 것은 가수로서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초창기 세곡의 히트곡들은 모두 1985년에 발표되었던 그의 정식 데뷔 앨범 Cuori agitati와 Nuovi eroi에 각각 나뉘어 수록되었다. 뒤이어 발표된 세 번째 앨범 In certi momenti는 비평가들의 찬사와 대중적인 사랑을 동시에 받았으며 유럽 지역에서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네번째 앨범 Musica e'로 연속 히트 행진에 순회 공연을 가지면서 남미 지역까지 그의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고 다섯 번째 앨범인 Adesso tu는 초창기 작품들을 재수록한 음반이었다. 음악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가수로서 확고한 자리 매김을 한 여섯번째 In ogni senso는 가사에 있어서 각 수록곡들간의 긴밀한 유대 관계를 갖는 독특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Amarti e' l'immenso per me, Dammi la luna와 Se bastasse una canzone 등의 히트곡들을 수록하고 있다. 또한 그의 목소리는 데뷔 시절보다 더 확고하고 명확해졌으며 어쿠스틱 사운드가 울려 퍼지는 거대한 합창과 함축적인 가사, 잘 짜여진 편곡 등 성숙해진 예술성과 음악 세계를 들려준다. 그의 콘서트 실황을 녹음한 본격 라이브 앨범인 Eros in concerto에 이어 공개된 Tutte storie는 기존 칸초네풍의 스타일에 록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으며 아마도 국내에서 상업적으로 에로스 라마조띠의 존재를 더욱 확고히 해준 앨범이 아닐까 하는데, 여기에 A mezza via가 수록되어 있다. 이후 3년간의 침묵을 깨고 발표한 아홉번째 앨범 Dove c'e' musica에서는 음악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묘사한 가사들과 라마조띠 특유의 전형적인 멜로디와 새로운 실험 정신으로 보다 팝 음악에 가까운 스타일을 들려준다. 그리고 이렇게 데뷔 시절부터 그의 음악을 도와주는 이들로는 공동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삐에로 까싸노(Piero Cassano), 작사를 담당해주는 아디오 꼬리아띠(Adio Cogliati)와 그 외 첼소 발리(Celso Valli), 마우리지오 바씨(Maurizio Bassi) 등이 앨범 제작 때마다 에로스와의 공동 작업에 참여해주고 있다. 이들중 삐에로 까싸노는 ’70년대 이태리 프로그레시브 록의 황금기에 등장했 던 그룹 마띠아 바잘(Matia Bazar)과 이 룽고 에띠(JET)출신의 키보디스트로 활동했던 실력파 뮤지션이다. 에로스의 노래를들을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목소리에 있으며 이와 더불어 이태리의 낭만적인 정서가 자아내는 칸초네의 정통성이다. 그의 노래들의 주된 테마는 시대를 공유하는 젊은이들의 희망과 절망, 우정과 사랑 등으로 ‘노래(음악)와 사랑’은 지극히 평범한 주제이지만 순수한 감정과 진실한 경험을 표현하고자 하는 영원한 매개체이기도 하다.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에로스는 ‘대도시의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빠지기 쉬운 타락과 유혹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음악에 대한 사랑과 정열 때문이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음악이 있는 곳, 음악을 향한 정열이 함께 하는 한 에로스 라마조띠는 앞으로도 많은 대중들의 기억 속에 뛰어난 음악인으로서 존재할 것이다. GINO PAOLI -sapore di sale(지노 빠올리-사뽀레 디 살레) 지노 빠올리에 대해서는 그리 알려진 바가 없다. 그의 데뷔작의 타이틀 <수코양이>가 그의 별명이자 애칭이 되어버렸다는 것 외에는... " 1935년 몬파르코네에서 태어난 가수겸 작사,작곡가로서, 어린 시절 제노바로 이사, 거기서 자랐다. 양친의 희망에 따라 공증인이 되기위해 법률학교를 나왔으나 칸초네 작사,작곡을 시작하여, 1960년에 데뷔작 <수코양이>로 주목을 끌었다. 이 해에 제노바의 작곡가 장피에르 리벨레리는 그 특이한 재능에 주목하여 리코르디사에 추천, 같은해 Il Cielo In Una Stanza(행복은 가득히'로 알려져 있는 곡으로, 방안의 하늘이란 의미)를 발표하여 대힛트시키고, 이듬해 61년 산레모 페스티벌에서 자작의 <원기있는 사나이>를 부르고 10위가 되었다. 62년에는 노이로제 때문에 자살 미수사건을 일으켰으나, 재기하고 잇달아 히트를 기록하였다. 호소하는 것 같은 독특한 창법으로 인기가 있다. " Mia Martini - E la vita racconta(미아 마르띠니-에 라 비따 라꼰따) 이태리에서 발행되는 음악잡지중 "PARO!"라는 전문지가 있다. 매년 이곳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나 그룹들에 대한 인기 조사가 있는데, 깐쪼네 여가수중에서는 Mina, Patty Pravo 그리 고 Mia Martini가 해마다 번갈아 가면서 1, 2, 3위에 랭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그녀는 이태리 국민들이 좋아하는 국민가수였다. 그녀의 음반을 들어보면 혼신을 다해서 노래 부르고 있는 모 습이 연상될 정도로 곡마다 그녀의 숨결이 느껴진다. 이젠 그녀의 이름 앞에도 고인이라는 형용사가 따라 다니게 된다는 서글픔을 접어두고 데뷔 당시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그녀는 1947년 9월 20일 이태리의 작은 마을인 Bagnara Calabra에서 Domenica Berte라는 이름으 로 태어났다. 아주 어렸을때부터 그녀는 지방 도시의 작은 페스티벌에 참가해 노래를 불렀으며, 15살 때 그녀의 여동생인 Mimi Berte(그녀는 나중에 Lorenada Berte라는 이름으로 활동해 더 많이 알려진 여가수)와 함께 첫 싱글인 (I Miei Baci Non Puoi Scordare(당신은 나의 입맞춤을 잊을 수 없어요)) 를 발표했다. 이 싱글은 Carlo Alberto Rossi의 제작으로 Juke Box에서 발매되었다. 이 싱글은 몇몇 음악 주간지의 덕택으로 젊은층에게 그녀를 알리는데 공헌하게 된다. 이어 두 번째 싱글인 (Insieme (다함께)), 외국에서 성공을 거둔 번안곡 (In Summer), 영어로 불리워진 (Let Me Tell You) 등 신인 가수로서의 모험을 경주해나갔다. 그러나, 음악적인 측면에서 그녀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세 번째 싱글인 (Il Magone)였다. 이로인해 그녀는 각종 쇼에서 초대 제의를 받는다. 이후 66년 (Non Sara' Tardi/Quattro Settimane)가 들어있는 싱글을 66년에 발표한 이래 그녀는 잠시 휴식기에 들어갔다. 이어 71년 5월 Viareggio에서 열렸던 제1회 Festival d'Avanguardia e Nuove Tendenze에 이름을 Mia Martini로 바꾸고 La Macchina라는 그룹과 함께 참가했다. 데뷔 앨범에 실려 있기도 한 (Padre Davvero)라는 곡으로 출전했던 그녀는 자신의 실력있는 가창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함께 참 가했던 Osanna, Banco, PFM을 제치고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이 당시 그녀를 주의 깊게 관찰했던 이 태리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대부이자 Piper 클럽의 창시자인 Alberigo Crocetta에 의해 발탁되기에 이 른다. 그는 Patty Pravo라는 이태리 최고의 여성싱어를 데뷔시킨 인물이기도 했다. 그로인해 그녀는 71년 RCA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데뷔곡인 (Oltre La Collina)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나지막한 나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첫 곡 (Tesoro Ma E' Vero)는 그녀가 처음 작사해 데뷔했던 곡으로 잔잔한 오케스트레이션에 이어 그녀의 힘있는 보컬이 완급을 조절하며 지속된다. 절제되어 있 는 듯 하지만 그녀만의 공간을 폭넓게 보여주는 곡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뛰어나며 71년에 열렸던 페스티벌에 참가해 그녀에게 우승의 열광을 안겨다준 (Padre Davvero)가 등장한다. 반세속적인 신성 을 박탈하는 내용이 담겨 혹평을 받기도 했던 이 곡은 그녀의 열정적인 삶이 느껴질 정도로 혼신을 다해 부르는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한다. (Padre Davvero)와 함께 데뷔작에서 손꼽히 는 또 하나의 명곡 (Gesu Caro Fratello)는 지금은 이태리를 대표하는 남성 깐쪼네 가수이지만 당시 무명의 서러움을 달래야만 했던 Claudio Baglioni의 곡으로 중간 부분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현악기에 의해 진행되는 오케스트레이션, 점점 고조되는 구성 등이 그녀의 보컬을 한층 더 빛나게 하고 있다. 이 곡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잔잔한 감동으로 눈가에 눈물이 적셔진다. 그녀만의 목소 리에서 느껴지는 恨이랄까? Claudio는 이 곡말고도 (Lacrime Di Marzo)에서 자신의 작곡 실력을 한 번 더 발휘한다. 바그너의 "대학 축전 서곡"의 합창으로 시작되는 , Cat Stevens의 곡인 (Into White)를 편곡한 (Nel Rosa), Nina Hunt의 곡 (Taking Off)를 번안한 (Ossessioni), 영화 "야성의 엘자"의 주제곡이자 전세계 히트곡인 (The Lion Sleeps Tonight), Patty Pravo의 동료이자 뮤지션이기도 했던 Gordon Fraggetter가 가세한 그녀의 그룹 Macchina와 함께 Cantagiro 페스티벌에 출전해 불렀던 (Amore… Amore… Un Corno) 등 한 여인으로서 그리고 아티스트로서 사고하고 존 재하는 그녀 내면의 방식으로 승화된 영혼과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곡들로 채워져 있다. Mina-Fosse Vero(미나-포세 베로) 본명은 Anna Mina Mazzini로 1940년 3훨 25일 이태리 바레사지방의 Busto Arsizo라는 지역에서 태어난 Mina 는 이태리의 다른 많은 여가수들과 마찬가지로 예쁜 용모와 가창력을 겸비한 영화배우겸 가수로서 1958년에 데뷔하여 1978년에 은퇴하기까지 가수로서의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주었으며 많은 영회에도 출연하였다. 그녀 역시 엘비스 프레슬리로 대표되는 미 국의 흥겨운 Rockn' Roll을 듣기 시작하면서 음악계에 뛰아들었다. 1958년 Boby Gate라는 가명으로 그룹 Happy Boys를 결성, 활동하던중 레코드 회사의 제작자인 David Mataion에 의 해 발탁되어 싱글 (When Be bop a Iula)로 데뷔한후 이름을 Mina로 바꾼다. 1959년에 공개었던 싱글 (Tintarella di luna)로 히트차트 상위에 오르면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며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Lucio Battisti, Mogol외에 유능한 작사, 작걱가들과 함께 많은 히트곡들을 만들어냈다. 그녀는 다른 가수들과는 달리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산레모가요제와는 별 인연이 없는 듯 본 가요제에서는 1960년과 61년에 가각 참가하여 61년에(Le Mille Bolle Blu)로 4위에 입상하였다. 귀에 익은 스탠다드 팝 넘버들. 경쾌하고 분위기의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댄스풍의 깐쪼네 , 블루스 향취가 짙은 이태리 의 올드팝등은 흑백시절의 향수와 추억의 실마리를 열아줄 것이다. IRENE GRANDI-La tua ragazza sempre(Sanremo2000-3위곡)(이레네 그란디-라 뚜아 라가자 셈쁘레) 이레네 그란디 록 스타일의 깐쪼네를 부르는 가수. 섹시한 외모와 대비되는 강렬한 보컬이 인기 비결. 2000년 산레모 가요제 2위 입상.


출처 : http://kr.club.yahoo.com/musicsalon/
 

Posted by 겨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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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hotgirls2008.net/go/blonde-man-old-young BlogIcon blonde man old young 2008.03.13 05: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좋은 위치 나는 그것을 감사 좋아한다!

MINA - L'oro Di M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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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E BOP A LULA(2:49)
2. IO SONG IL VENTO(2:12)
3. PERSONALITA'(2:27)
4. STESSA SPIAGGIA SPIAGGIA
STESSO NARE(2:03)
5. LE MILLE BOLLE BLU(3:52)
6. LA RAGAZZA DELL'OMBRELLONE ACCANTO(2:25)
7. CUBETTI DI GHIACCIO(2:30)
8. STRINGIMI FORTE I POLSI(2:30)
9. SUMMERTIME(4:03)
10. UNA ZEBRA A POIS(3:22)
11. VENUS(2:43)
12. NESSUNO(2:13)
13. JUST LET ME CRY(2:16)
14. CHEGA DE SAUDADE(2:45)


MINA, 그녀의 영화와도 같은 추억의 시간들...
80년대로 넘어오면서 비디오가 라디오의 스타들을 사라지게 했다는 팝송이 유행되고 각 가정의 안방극장에서는 흑백시 대가 물러가고 칼라시대가 도래했다. 바야흐로 우리의 생활감각은 다양하고도 본격적인 칼라시대로 들어서면서 흑백 에서 칼라로 대체된 것이다. 어디 이것뿐일까 ? 빠른 정보와 고도의 첨단 문명사회인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네 생활에서 과거의 그것들과 비교해서 달라진 것들을 찾으려 한다는... 그래서일까 웬지 흑백시절의 그것들에 대해 아련한 향수를 갖게되는 것 은, 오늘날의 시각에서 촌스럽고 서툴러 보일지는 몰라도 그 자체가 하나의 매력이고 그것이 특유의 향기였음을... 그래서인지 어느때부터인가 흑백영화를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첨단 과학기술에 의해 제작되어진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화제의 영화들이 많은 관객들을 동원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흑백영화에 애착을 갗게 것은 이러한 이유때 문이리라......

흑백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하디보니 지금 소개하는 Mina 앨범과의 미묘한 분위기가 느겨진다. 앨범을 듣고 았으면 마치 '시네마천국' 이라는 이태리 영회의 마지막 장면처럼 일련의 흑백 영화의 한장면 한장면을 감상한는 듯히다. 본작은 그녀의 노래 인생에 있어서 황금같은 시절의 대표곡 편집앨범으로 50 년대말에서 6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태릭 팝음악의 전형적인 사운드 를들준다. 곡을 계속 듣고 잇노라면 흔히 흑백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에디슨이 발명한 달팽이 모양의 측음기에서 돌아가는 레코드 음악에 맞추어 댄스파티에서 맘보나 트위스트라도 추어야할 것같은 착각까지 불러 일으킨다.

본명은 Anna Mina Mazzini로 1940년 3훨 25일 이태리 바레사지방의 Busto Arsizo라는 지역에서 태어난 Mina 는 이태리의 다른 많은 여가수들과 마찬가지로 예쁜 용모와 가창력을 겸비한 영화배우겸 가수로서 1958년에 데뷔하여 1978년에 은퇴하기까지 가수로서의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주었으며 많은 영회에도 출연하였다. 그녀 역시 엘비스 프레슬리로 대표되는 미 국의 흥겨운 Rockn' Roll을 듣기 시작하면서 음악계에 뛰아들었다.
1958년 Boby Gate라는 가명으로 그룹 Happy Boys를 결성, 활동하던중 레코드 회사의 제작자인 David Mataion에 의 해 발탁되어 싱글 (When Be bop a Iula)로 데뷔한후 이름을 Mina로 바꾼다. 1959년에 공개었던 싱글 (Tintarella di luna)로 히트차트 상위에 오르면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며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Lucio Battisti, Mogol외에 유능한 작사, 작곡가들과 함께 많은 히트곡들을 만들어냈다.

그녀는 다른 가수들과는 달리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산레모가요제와는 별 인연이 없는 듯 본 가요제에서는 1960년과 61년에 가각 참가하여 61년에(Le Mille Bolle Blu)로 4위에 입상하였다. 귀에 익은 스탠다드 팝 넘버들. 경쾌하고 분위기의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 댄스풍의 깐쪼네 , 블루스 향취가 짙은 이태리 의 올드팝등은 흑백시절의 향수와 추억의 실마리를 열아줄 것이다.

미나 오피셜 웹사이트

http://www.minamazzini.com/news/


미나에 대한 자세한설명

http://blog.naver.com/negrim?Redirect=Log&logNo=40003434072

그녀의 영화에 대해 알고 싶다면 아래 사이트를 방문해보길 바란다
더있을거 같은데 귀찮아서 안찾았다

http://blog.naver.com/jaygunkim?Redirect=Log&logNo=100015961931 가방을 든여인

http://blog.daum.net/roseblog/7163422  1년간의사랑

http://blog.daum.net/peterpjk/3972088 푸른파도여 언제까지나

Posted by 겨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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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esturlsite.info/h/ BlogIcon estate real sheboygan wi 2007.07.22 2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치에 중대한 일은 그것을 좋아했다!

Canzone 장르
 
Canzone 이탈리아 대중가요. 이탈리아어로 가요라는 뜻이며, 그 가운데에는 예로부터 각지에 전해져 온 민요도 있고, 프로 인기작곡가에 의한 작품도 있다. 서정적 가곡으로부터 재즈나 록의 영향을 받은 것까지 다양하지만, 전체적인 특징은 멜로디가 맑고 아름다워 누구나 부르기 쉽다는 것이다. 내용도 비교적 단순하며, 솔직한 표현의 사랑노래가 많다. 곡 구성은 대개 2마디·4마디·8마디 등 규칙적으로 진행되고, 각 절마다 리토르넬로(ritornello)라는 후렴이 있어 곡조를 북돋워 흥미를 끌도록 구성되었다. 이에 비해 곡 첫머리의 이야기에 해당되는 부분을 스트로파(strofa)라고 한다. 칸초네 중에서 일찍부터 세계에 알려진 것은 칸초네 나폴리타 또는 간단히 나폴리타나라는 것이다. 그 명칭대로 항구도시 나폴리에서 발달되어 다른 칸초네와는 달리 독특한 특징이 있다. 즉 가사가 나폴리 사투리로 쓰였고, 멜로디나 곡조에도 이국적인 외래음악의 영향이 엿보인다. 오늘날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나폴리타나는 12세기 초 《태양이 떠오른다》라는 노래이다. 그 온상이 된 것은 15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피에디그로타 노래축제였다. 본래 나폴리 어부들이 성모상에게 노래와 춤을 바쳐 큰 고기를 낚고 안전하게 돌아오도록 축원하며 감사의 뜻을 봉헌한 축제였으나, 후에 시 전체가 동원되는 음악제로 바뀌었고, 1860년 이탈리아 통일 뒤 나폴리가 상업 중심지로 번영함과 동시에 한층 더 활기를 띠게 되었다. 출품된 신곡을 심사해 우승을 겨루는 음악경연대회 형식이 91년부터 제도화되고 《오 솔레미오(1898)》 《돌아오라 소렌토로(1902)》 등 유명한 노래가 세상에 나왔다. 1930년대 북이탈리아 밀라노에 주도권을 빼앗긴 나폴리가 사양화함에 따라 나폴리타나도 쇠퇴하였으나, 음악제 전통만은 지켜야 한다는 이념 아래 52년부터 나폴리음악제가 발족되었다. 제 2 차세계대전 뒤 칸초네계의 주도권을 잡게 된 것은 1951년에 시작한 산레모음악제이다. 처음 목적은 철이 지난 관광객 유치였으나, 58년 《볼라레》, 59년 《치오치오 밤비나》라는 D. 모두뇨의 작품이 2년 연속 우승함으로서 큰 성공을 거두어 산레모시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칸초네 전체가 국제적 스타일을 지니게 되었다. 모두뇨를 비롯한 새로운 형태의 칸타우토레(cantautore;작곡가 겸 가수)가 배출되고, 미나 등 록조의 칸초네가수도 등장하였다. 그리하여 60년대 전반에는 밀바·G. 칭퀘티 등 인기가수도 나타나 칸초네는 크게 유행되어 황금시대를 맞았다. 한편 비틀스의 대성공에 자극받은 그룹이 잇따라 결성되어 66년 무렵부터 그룹사운드 붐이 일어났다. 그러나 너무 난해한 칸타우토레나 지나친 전위적 그룹은 오히려 대중으로부터 멀어져 70년대에는 활동이 꽤 저조해졌다. 그 뒤 칸초네 본래의 은근한 정취를 존중한 부드럽고 친밀해지기 쉬운 노래가 다시 유행하게 되었다. 축제를 즐기는 국민성을 반영해 이탈리아에서는 나폴리음악제·산레모음악제 외에도 많은 음악제가 열렸다. 즉 1959년부터 볼로냐에서 열린 <제키노 돌로>는 아이들을 위한 음악제로, 《검은 고양이의 경단》 등으로 성공하였다. <여름의 디스크축제>는 휴가철에 레코드 판매를 목적으로 열리는 콘테스트이며, <페스티벌바르>도 마찬가지로 여름 피서지의 주크박스(juke box;동전을 넣어 좋아하는 곡의 레코드를 트는 자동전축)에 참가곡을 넣고 신청된 횟수로 겨루어 상위권 가수를 모아 결선대회를 여는 방식으로 이러한 경연대회는 64년부터 시작되었다. 65년에는 베네치아음악제가 개시되었다. 또한 <칸초니시마>는 1956년 라디오로 시작하여 58년 텔레비전으로 옮겨가 해마다 방법을 바꾸었으며, 한때 토토칼치오를 채용해 인기를 끌었다. 이 모든 음악제가 절정에 이른 65년 전후에는 이탈리아 전국에서 콘테스트가 119번 개최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칸초네는 음악제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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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을 기반으로 정통 깐쪼네를 계승, 멜로딕 팝그룹 알룬니 델 솔레의 베스트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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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pinksexo.com/sel/girl-riding-sybian BlogIcon girl riding sybian 2007.10.18 04: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위치는 그것 찾아본 즐겼다!

  2. Favicon of http://hotwomen2008.net/cat/bi-rain-lyric BlogIcon bi rain lyric 2008.03.13 05: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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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아름다운 웹사이트가 있는다!